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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국의 췌장-림프 등 6종 암투병기 33회] “아들아! 며느리 밥 좀 먹자”

아들의 결혼 막은 암 투병, 그냥 자격지심일까요? 정병국 작가l승인2021.05.04l수정2021.05.04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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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타임즈=정병국 작가] 날씨가 꾸물거립니다.
베란다에서 쳐다보는 하늘은 아무래도 종일 비를 질척거리게 할 것 같습니다. 날씨에 민감한 중증암환자의 몸과 마음은 어김없이 무기력증과 통증으로 무너지며 ‘생과 사’에서 방황합니다.

과연 얼마나 더 살까?
-살면 몇 년?
이러다가 결국 죽을 텐데?
-언제……?

‘답’ 없는 자문(自問)을 끝없이 잇다가 혼절의 잠속으로 침몰합니다. 오늘도 또 그럴 것 같아 장바구니 핸드카트를 끌고 아파트를 나섭니다. 비가 올 것 같아 챙긴 우산을 펼쳤다가 접으며 허허 웃습니다.

그렇게 살고 싶으신가?
생의 욕망을 마치 못된 짓으로 탄식하는 헛웃음입니다만, 그 실체는 ‘그래! 살고 싶어. 집필중인 소설까지는 끝내자’는 아픔입니다. 근래 들어 자꾸만 암 투병이 허욕으로 다가와 의지를 부셔버리곤 합니다. 지난 3월 출판하려다가 포기한 산문집도 바로 의지가 꺾인 탓입니다.

평일인데도 손님들로 북적거립니다. 없는 거 빼고 다 있는 먹거리 마트에 들어서면 힘이 납니다. 중증암환자가 아닌 건강한 노인의 식탐이 발동합니다. 한 시간 넘게 장을 본, 터질 것 같은 장바구니 핸드카트를 끌고 중앙공원으로 들어섭니다.

핸드카트 무게에 영수증의 구매물품 목록을 살펴보다가 허허 웃습니다. 이번 웃음은 탄식이 아니라 감탄입니다. 하! 참 많이도 샀다. 그게 다 항암식단용이라 이거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오이든 느타리버섯이든 최소 포장이었고 종류도 다양했습니다.

부추, 가지, 오이와 오이고추, 애호박, 파프리카, 브로콜리, 새송이버섯, 달래, 마늘쫑, 감자, 고구마, 두부, 쪽파, 알배기배추, 무, 쌈 채소, 호박순, 깻잎, 콩나물, 어묵에 도토리묵 팩도 있었습니다. 뭐랄까? 아예 채소구멍가게를 능가해 웃음이 터졌습니다.

공원의 충혼탑 앞에서 멈추어섭니다. 어린 두 딸과 깔깔거리며 사진 찍는 젊은 부부를 바라보다가 외면합니다. 사십을 훌쩍 넘겨서도 결혼하지 않은 아들에게 안타까움보다 화가 납니다. 췌장과 림프 등 여러 암 투병을 하필이면 아들의 결혼 적령기에 시작해 오늘까지 지속하다니 감내하기 어렵습니다.

아들의 결혼까지 가로막은 암 투병, 그냥 못난 아비라는 자격지심으로 외면해야 할까요? 먹거리를 가득 채운 카트를 패대기치고 싶다면 늙은이의 얄궂은 심통일까요? 그도 저도 아니면 아들의 팔자라고 혀만 찰까요?

기도합니다.
아들이 하루속히 결혼할 수 있기를. 아들아! 며느리 밥 좀 먹자, 채근할 그 날을 위해 오늘도 세상의 모든 신에게 기도합니다.

아들의 마지막 연인 / 정병국

췌장암의 오랜 투병
기적에 감사하며 여러 권의 소설집
문예계간 ‘시와수상문학’지를 발간하며
문예창작아카데미로 노탐을 채웠는데

2019년 7월 30일 오후 5시
제8차 항암주사를 맞는다
위 담낭 십이지장은 다 드러냈고
췌장도 또 40% 잘라낸 후 소장에 이식했다

췌장암 재발 환자는
수술해도 몇 개월 못 넘긴다는데
오늘의 나는 45kg 몸으로
아들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

세 시간의 항암주사
통증 부위를 따뜻한 물수건으로
달래주는 아들

떠나지도
보내지 않아도 되는
마지막 연인 더 늦기 전 만나기를
세상의 모든 신에게 애간장으로 기도한다

소설가 정병국
도서출판 지식과사람들 대표, 문예계간 시와수상문학 발행인, 한국문협 회원으로 월간 현대양계에 콩트 연재중이다. 시집 ‘새 생명의 동행’, 소설집 ‘제3의 결혼’ 외 다수가 있다.

정병국 작가  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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