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정병국 작가] “밥 잘 먹다가 뭐 하는 짓이야?”
일요일의 늦은 점심을 먹다가 거실에 큰 대(大) 자로 너부러집니다. 천정의 두 팔 길이의 형광등을 깨버릴 듯 노려보다가 한숨만 토해냅니다. 내자와 아들의 입맛 돋울 임연수어 구이까지 넉넉하게 준비했는데 또 혼자 먹는 식탁에 울화가 치솟았습니다.

“웃겨! 늘 혼자였으면서 웬 유별?”
지독한 자충수, 패착이었습니다. 2008년 2월 중순 처음 암 수술 후 퇴원했을 때처럼 2019년 2월 중순 전이된 주요 소화기관과 췌장암 재발 수술 후에도 식이요법을 혼자 알아서 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아픈 사람, 나 한 사람만 고생한다는 선포이기도 했습니다.

“멋진 영감탱이네. 멋져버려!”
자충수가 아니라 멋지다고? 속 뒤집는 소리 마요. 반찬 20여 첩에 두부 소고기 뭇국이면 뭐해요. 약으로 먹는 식이요법이 아니라 가족과 함께 맛있게 먹으며 왁자지껄 떠들고 싶다고요. 그게 사람 사는 모습이니까요.

“그래? 그럼 말 뒤집어. 홀라당!”
미쳤어요? 내가 사기 치는 정치꾼입니까. 냄새나는 양말처럼 뒤집어 던지게. 하지만 솔직히 그러고 싶습니다. 적어도 하루 한 끼의 밥상을 차려내라. 평일에는 그렇다고 치자. 그러나 주말 하루는 반드시 함께 보내자. 거실 벽에 현수막이라도 붙이고 싶습니다.

“얼쑤! 꽹과리 쳐줄게. 당장 걸어.”
염장 지르는 소리 그만해요. 늘그막에 암으로 마음 아프게 하는 것도 부족해 가족의 몸까지 고달프게 하란 말입니까? 요즘은 암 완치가 아니라 얼마나 더 아프지 않은 듯이 살다가 갈 수 있을까, 세상의 온갖 신에게 물어봅니다.

“아프지 않은 듯 더 산다? 허허 그것참!”
가당치도 않다는 눈빛인데 너무 무안 주지 마요. 혼자 먹는 점심이 싫어 거실에 벌러덩 누웠지만, 요즘 진짜 속 타는 일은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입니다. 갑자기 잦은 악몽이 이 의문에 부채질해 불안과 초조를 견뎌내지 못하고 허둥거립니다.

“이미 오래 살지 않았나? 췌장암 재발이면서.”
하긴 이미 오래 살고 있지요. 췌장암 재발 환자는 수술해도 예후가 나빠 대부분 몇 개월 못 견디고 저세상으로 떠나는데 2년 하고도 한 달을 더 살고 있으니 분명 기적의 늙은이가 맞아요. 맞습니다. 그래도 목숨은 포기할 수 없는 집념 중의 집념이죠.

“불쌍해서 눈물 나려고 해.”
염려 마요. 눈물짓지 마요. 이제 일어나서 다시 식탁에 앉을 테니. 혼자서라도 꾸역꾸역 먹어야 오래도록 살아남죠. 쓰다가 만 소설도 완성해 책으로 엮어야 하고. 쾌차의 기원으로 항암 약초를 보내준 지인에게 손편지도 보내야 하고.

또 많은 암 환자에게 암은 절체절명이 아님을 알려야 하고…

살 수 있을까 / 정병국

위생 비닐 가운에
두 손에 비닐장갑 끼고
하얀 마스크로 숨길조차 막고 나선

일백사십사 미터
복도를 걷는 환자 한 사람도 없다
휴게실 텔레비전은 저 혼자 떠들고
간병인 서넛 잠들어 있다

일주일만인가
격리 입원실 밖으로 나온
미생불명 바이러스 격리 암환자

갑자기 발길마다 차이는
죽음의 두려움
서둘러 돌아온 고도(孤島)
창 밖 산을 바라다본다

짙푸른 소나무가 아닌
소용돌이치는 마른 잡목의 환상과 환청
나 살 수 있을까

소설가 정병국은
도서출판 지식과사람들 대표, 문예계간 시와수상문학 발행인, 한국문협 회원으로 월간 현대양계에 콩트 연재중이다. 시집 ‘새 생명의 동행’, 소설집 ‘제3의 결혼’ 외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