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정병국 작가] 유난히 엄지발톱 사고가 많았습니다.
이런저런 운동으로, 책장의 두툼한 책으로, 달랑 배낭 하나만 메고 떠난 무전여행 등으로 양발의 엄지발톱이 빠지는 고통을 어지간히 겪었습니다. 십대 후반에서 군에서 제대한 이십대 중반까지의 혈기왕성할 때라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50여 년이 흐른 칠십 중반의 지금은 아닙니다. 항암제복용과 항암주사의 후유증으로 양발의 엄지발톱이 까맣게 죽더니 힘없이 빠지고 말았습니다. 마치 부식된 양철조각 같은 발톱에서 본 것은 ‘절망’과 ‘죽음’이었습니다.

아! 결국 이렇게 죽고 말 터인데…….
2019년 1월 30일 암이 재발한 췌장을 또 40% 절제한 후 전이된 위와 십이지장, 담낭은 모두 잘라냈습니다. 여기에 림프선까지 암이 전이 되어 긴 여정의 항암치료가 시작됐습니다. 항암치료는 정말 견디기 어려운 온갖 고통을 동반했습니다.

엄지발톱부터 시작된 발톱 빠짐은 보행에 치명타였습니다. 거기에다가 팅팅 부은 양발이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전기에 감전된 듯 찌르르 터지는 통증은 등골까지 오싹오싹하게 했습니다. 참고, 인내하고, 견디다 못해 병원을 찾았습니다.

피부전문의는 발톱이 자연스럽게 빠지게 두는 것이 좋다며 수술 요구를 거절했습니다. 항암치료 주치의는 항암치료의 통관의례라며 덧붙였습니다. 발톱은 새로 자랄 테니 걱정 없고, 통증과 부기는 항암치료가 끝난 1년 후까지 지속될 거라고 했습니다.

하나는 정확했고, 하나는 오살지게 틀렸습니다.
걸을 때마다 터지는 발의 통증과 부기는 항암치료가 끝난 지 2년이 넘었으나 여전히 지속입니다. 쉽게 가시지 않을 거라 아예 포기했습니다. 그러나 새로 돋은 발톱, 특히 엄지발톱은 볼 때마다 두려움이었습니다. 뭐랄까? 내일의 제 육신과 영혼 같았습니다.

제 몸이 엄지발톱으로 변하면서 까맣게 썩다가 푸르르 먼지처럼 사라지는 악몽에 시달렸습니다. 그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라 밤잠을 설쳤습니다. 정신과 진료를 고려할 무렵 문득 떠오른 아버지의 말씀이 ‘절망’과 ‘죽음’, 그 두려움이 ‘용기’와 ‘희망’으로 바뀌었습니다.

“이 두 발톱이 참 고맙구나.”
일반 손톱깎이로는 도저히 엄지발톱을 자를 수 없어 소 발톱도 거뜬히 자를 커다란 것을 사다가 문득 떠오른 아버지의 말씀에 진저리쳤습니다. 아버지의 엄지발톱은 시커먼 기암괴석이었습니다.

괴물 같은 발톱이 보행의 기둥이라니……이해하지 못했던 그때가 한없이 부끄러웠습니다. 겉모습에만 집착해 절망과 죽음의 악몽으로 시달렸던 가슴이 고동쳤습니다. 비록 볼품사나운 모습으로 재생한 엄지발톱이지만, 그것은 분명 새 생명이었습니다.

오늘도 못생긴 엄지발톱으로 산책에 나섭니다.
봄기운 가득 안고 돌아오면 제일 먼저 온수에 두 발을, 발톱을 담글 것입니다.

두 엄지발톱 / 정병국

하룻밤
천리 길도 내닫던
발

엄지 두 발톱의 등이
불꽃 없이 검게 타 버리더니

살짝 건드려도
툭 떨어질
낙엽 같은 발톱 목숨

차마
떠날 수 없는 한(恨) 있음인가
두 발가락에 매달려
간절히 몸부림치는 엄지발톱

내일도
함께 문을 나설 수 있을까
미소의 걸음으로

소설가 정병국은
도서출판 지식과사람들 대표, 문예계간 시와수상문학 발행인, 한국문협 회원으로 월간 현대양계에 콩트 연재중이다. 시집 ‘새 생명의 동행’, 소설집 ‘제3의 결혼’ 외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