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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골프역사 4회] 대한민국 골프 140년의 발자취를 추적한다

우리 골프의 창세기 ‘원산코스’ 접근...서양 선교사가 만든 골프 코스 정노천 기자l승인2021.02.24l수정2021.02.24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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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0년도 원산 시가지

[골프타임즈=정노천 골프칼럼니스트] 인간이 사는 어느 시대든 놀이는 자연발생적으로 탄생하며 진행돼 왔다. 놀이는 소통과 공감의 자유의지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인간의 삶이든 놀이 없이는 공동체 영위나 삶의 질을 쉽게 상승시키지 못한다. 놀이 행위는 소속감과 자아 정체성을 확보하는 동시 삶과 인간관계 형성을 꾀하는 유대감으로 승화된다.

서양 선교사가 만든 그들만의 골프 코스들
당시 한국에 체류하던 영국인을 비롯한 서양인들은 테니스, 골프, 크로케 등을 일상 속에서 즐기고 있었다. 그 중 야구, 테니스 그리고 특별히 골프에 조예가 깊었던 로스 박사가 있다.

여기서 우리는 이들 서양인 선교사나 외교관, 사업가들과 밀접한 교류를 하고 있던 일부 한국인들이 서구 스포츠를 접할 기회나 가능성이 컷을 것이라는 점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1899년 1월에 윤치호는 덕원감리 겸 덕원부윤에 임명되어 봄부터 원산에 내려와 있었다. 그는 3월 7일 원산 감리 집무실에 도착해서 급한 대로 업무를 파악하는데, 그가 남긴 그 날 일기에 '이 지역 행정 중심지에는 대략 100여 가구가 살고 있다. 덕원군은 5개의 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공식 통계에 따르면 덕원군에는 2,075가구가 있다. 하지만 실제 가구 수는 공식 통계의 3배 정도로 추정된다. 덕원군에서 가장 큰 마을은 원산이고, 적어도 2,000가구가 살고 있다. 하지만 공식 통계치는 497가구'라고 적고 있다. 그는 캐릭터 상으로 서구 문물에 대한 자유롭고 개방적인 태도를 보여주듯, 원산지방 관료시절 내내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했다고 한다. 1899년부터 윤치호는 여러 해 동안 원산에 체류하면서 현지 외국인들과 만남을 가졌고 자주 그들을 방문하여 친분을 쌓아 갔다.

일찍이 1888년 윤치호는 미국 유학길에 올라 동부 테네시주 밴더빌스대학과 조지아주 에모리대학에서 수학했고, 줄곧 현지 감리교회 예배에 정기적으로 참석했다. 자주 미국 교회나 기독교 단체로부터 강연 요청받아 방학 때면 미국 여러 도시를 순회하기도 했다. 귀국 후에 그는 한국에 남감리교 선교회 파견을 요청했으며, 상해로부터 헨드릭스(E.R.Hendrix), 리드(C.F.Reid), 콜리어(C.T.Collyer)등이 파송됐다. 윤치호의 호소로 1896년 한국선교를 시작한 미국 남감리교는 서울, 송도, 원산을 중심으로 선교사업을 전개했다. 그는 원산에 체류하기 직전까지 서울에서 독립신문 주필을 맡기도 했다. 그런 그가 세관원들과의 교류도 눈여겨 볼 일이다.

당시 원산에 있던 외국인 공동체를 대략 살펴보면, 캐나다에서 온 선교사들 6명, 게일을 포함한 미국인 4명, 독일인 4명, 영국인 2명, 프랑스인 1명, 덴마크인 1명, 노르웨이인 1명으로 구성됐다. 원산에 거류한 외국인들 가운데 특히 우리의 눈길을 끄는 사람들은 캐나다 선교사들인 듯하다. 1898년에 선교회들 간의 지역분할 협정으로 함경도 지역이 캐나다인들에게 할당됐기 때문에 원산에서 사역한 게일(J.S.Gale) 박사, 하디(R.F.Hardie)박사, 에비슨(O.R.Avison) 박사, 홀(R.S.Hall) 목사, 펜윅(M.C.Fenwick) 목사 등 초기 선교사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캐나다인이었다는 사실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원산에서 조선인들의 흔적
원산에서 선교하는 일에는 한국인들도 활발히 참여했는데, 1906년 선교 지방회에서 전도사로 임명받은 정춘수가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원산상리교회에서 초기 선교활동에 큰 역할을 했다.

우리는 원산해관 골프코스에서 최초로 영국인들이 골프를 즐겼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것도 갈마반도 외인촌 골프코스에서 남감리교 로스 박사가 골프를 했을 것이라는 주장도 사실상 자료가 아직 충분하지 못하다. 또한 외국물 먹기 어렵던 시절에 남다르게 일찍 미국 유학을 했던 윤치호나 대한제국 개항장이던 원산에서 기독교 선교에 헌신한 정춘수 전도사 같은 인물들이 골프코스 또는 골프를 접했을 것이라고 추정할 근거도 부족할지 모르겠다. 다만 합리적인 추론만이 가능할 뿐이다.

또 1883부터1894까지 10년 넘게 근무한 덕원부사(德源府使) 정현석(鄭顯奭)이 원산해관의 책임자인 감리(監理)도 겸직했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학교이며, 근대 최초의 민립 학교인 원산학사를 설립했다. 설립 기금은 덕원·원산의 주민들, 원산상회소(元山商會所), 서부경략사인 어윤중과 원산항의 통상을 담당하던 통리기무아문의 주사 정헌시 그리고 원산감리서에 고용된 외국군인 등으로 부터 모았다. 1883년 8월에 학교 설립을 정부에 보고하여 정식으로 승인을 받았다.

각국의 골프사를 보면 당시 세계로 퍼져 나갔던 영국인들이 상주했던 외국의 어느 곳이든 골프코스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원산에 근무했고 전용주택을 갖고 있던 영국인들 또한 당연히 골프코스를 만들었으리라고 보이며 흔적이 남아 있지 않으나 한국골프의 효시는 기록상으로 원산코스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1900년대 원산코스는 조선인들과 서양인들이 친선이나 비즈니스 측면에서 함께 이용했을 가능성을 조심스레 제기하면서 우리나라 골프의 효시로 지목될 만하다.

앞에 나열한 것처럼 당시 지역민들의 구전이라든지 그 외 여러 가지 정황을 살펴볼 때 영국인들에 의해 들어온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증명되고 있다. 그러니 이는 한국골프의 시원(始原)으로 오늘날 한국골프의 뿌리를 찾고 내일의 골프문화를 수립하는 토대가 돼야 한다. 1900년대 원산코스는 우리에게서는 골프의 첫 상륙으로 지목될 만하다.

‘원산 해관에서 해안을 따라 무성한 잡목림의 산중턱에 철조망으로 울타리 쳐진 그들 영국세관 관리의 주택이 있었다’고 원산해관을 묘사한 내용이 있지만 당시 원산에 골프장이 있었다는 사실은 이곳 해관 주변에 거주하고 있던 그 지역민들의 구전(口傳)에 의해 전해졌을 뿐 상세한 내용이나 확실한 기록은 향후 발굴해내야 할 후대의 몫으로 남겨졌다. 

정노천 기자  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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