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정병국 작가] 속이 빈 노인입니다.
지인들의 외계인은 어느 별에서 왔느냐는 물음에 아름다운 사성(死星)에서 왔다며 빙그레 웃습니다. ‘사성?’ 뜻은 죽음의 별이지만, 역설적인 표현임을 ‘아름다운’이란 형용사로 암시합니다.

죽음의 별이 아름답다?
정말 인류의 온갖 감탄사가 민망할 만큼 상상할 수 없는 별천지입니다. 그러나 지인들은 사성 초대를 극구 사양합니다. 농담이라도 그런 말은 하는 게 아니라며 화제를 확 바꿉니다. 아직도 이팔청춘이라는 허풍 친구들이 유독 손사래가 강합니다.

소화의 주요 기관 위와 담낭, 십이지장을 다 드러냈습니다. 소장과 대장, 30% 정도 남은 췌장으로 유지하는 식생활은 매끼 외줄타기입니다. 또 항암치료의 후유증으로 상태가 안 좋았던 이가 다 빠져 위아래의 앞니 몇 개만 남아 있습니다.

과연 이런 몸으로 살 수 있을까?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해도 결론은 아니었습니다. 지금의 목숨은 첨단의술과 약기운 덕이지만, 점차 그 효능이 떨어지면서 저세상으로 떠날 것이라 믿었습니다. 달력을 9월, 10월, 11월, 한 장씩 넘기다가 더 이상 넘길 수 없는 12월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천년 산삼이면 되겠나?”
안타깝게도 절벽의 석청을 따다가 잘못된 심마니 친구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는 오십 넘어 산사람이 된 것을 무척 후회했습니다. 이렇게 포근한 자유가 있는 곳을 두고 왜 서울에서 바동바동 살았는지 모르겠다며, 항암에 좋은 산채와 약초를 다 보내준다고 큰소리쳤습니다.

그 친구가 살아있다면……산삼도 더덕도 다 필요 없고 말린 취나물이나 보내라고 했을 겁니다. 재래된장으로 쌈 싸 먹는 취나물은 지금도 먹고 싶으니까요. 달력을 떼어 휴지통에 버리려다가 다시 걸어놓으며 애들처럼 쿡쿡 웃었습니다.

큰 수술 후 방귀 소동을 겪은 며칠 뒤였습니다. 오전 회진의 주치의가 생뚱맞게 변(糞)은 어떠냐고 물었습니다. 변? 그러고 보니 큰일을 치른 기억이 없습니다. 내심 먹은 게 있어야, 밥통(위)이 있어야 배설도 하죠, 목젖까지 올라오는 말을 삼켰습니다.

방귀가 터진 후 물 같은 미음이 조금 진해지더니 죽이 나왔는데 숭늉에 밥풀 몇 알 띄운 거 같았습니다. 하도 기가 막혀 휴대폰으로 사진까지 찍었습니다. 문병 오는 친구들에게 보여주며 내가 이렇게 목숨을 연명한다고 투덜거리려는 심보였습니다.

“꼭 살폈다가 알려줘요.”
마침내 주치의에게 민망한 표정으로 ‘꼭 아기 첫 똥 같다’고 말한 것은 이틀 후였습니다. 그날 주치의의 미소를 처음 봤습니다. 고개까지 끄떡이며 “됐어요. 음식 양을 조금씩 늘려갑시다.” 수행한 인턴과 레지던트, 간호사에게 무엇인가 지시했습니다.

그날 이후 물을 내리기 전에 반드시 ‘변님’의 상태를 살핍니다. 속이 더부룩하거나 통증이 있을 때는 바짝 긴장합니다. 무엇을 먹었지? 식단을 되짚으며 다음 끼는 아예 소식(小食)합니다. 주치의가 또 묻는다면 이제는 주저리주저리 설명할 겁니다.

자칭 ‘변 박사’가 됐으니까요.

똥 소동 / 정병국

변(糞)
똥의 상태를 살피라니
기가 찼다

방귀가 아닌
이번에는 똥 소동

12년 전
그때도 그랬나

당시에는
위 십이지장 담낭이 다 있었지만
지금은 하나도 없다

소장과 대장
겨우 30% 남은 췌장이 전부
분(糞)인들 오죽하랴 싶었는데
제 모습 제 색깔이다

인체 자생력의 신비
화장실에서 고개 저으며 웃던
방귀 뀌며 웃었던
두 얼굴 한자리에서 보았으면

소설가 정병국은
도서출판 지식과사람들 대표, 문예계간 시와수상문학 발행인, 한국문협 회원으로 월간 현대양계에 콩트 연재중이다. 시집 ‘새 생명의 동행’, 소설집 ‘제3의 결혼’ 외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