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삽화=임중우)

[골프타임즈=노경민 작가] 설날의 전통 풍경이 사라지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코로나19로 5인 이상 모이지 말라는 데도 서울역 대합실은 귀향 기차표를 사려는 사람들로 긴 줄을 이룬다. 멀리 떠나 있던 가족들이 부모님 품으로 돌아가려고 밤샘을 마다않는 기다림의 줄이다.

까치설에는 ‘해(年) 지킴’ 풍속으로 잠자는 사람은 눈썹이 하얗게 된다며 밤을 새웠다. 새해 아침에는 고운 한복 차림으로 웃어른께 세배를 올리고, 어른들은 덕담과 함께 세뱃돈을 주었다.

“몸도 힘들고, 먹을 사람도 없는데 상 차리지 말아요.”
아들 녀석의 걱정스러운 한 마디다.
아니면 늦잠을 자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명절인데 차례는 올려야지”

푸줏간에서 고기 한 칼 끊어 신문지로 둘둘 말고, 정종 한 병 사오던 설날은 이젠 보기 어렵다. 증조 할머니에게 세배 올리거나 차례를 기다리던 그 많은 식구들도 이제는 없다. 하나 둘 낳기로 단출한 식구가 된 풍경이 쓸쓸하다.

제각기 살기 바쁘다. 아픈 사람은 차례를 차리는 거 아니라며 빠진다. 취직도, 결혼도 못해 잔소리 듣기 싫으니 여행길에 나서기도 한다. 더구나 코로나19로 꼼짝없이 갇힌 사람들은 구태여 핑계를 대지 않아도 된다.

산소도 아닌 콘크리트 건물의 납골당은 더 삭막하다. 양지바른 조상님 묘에 예를 올린 후 햇살 좋은 잔디밭에 앉아 정담을 나누던 풍경은 납골당에서는 언감생심이다.

어려움 속에서도 조상님에게 올릴 음식을 준비하던 정겨운 풍경이 그립다. 나물을 무치고, 노랗게 달걀옷 입혀 부쳐내는 동태전과 육전을 한 점씩 맛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시절이 어제 같은데 마치 먼 추억 같다.

깨끗하게 닦은 제기에 홍동백서로 상 가득 차려내면 가슴 뿌듯했는데 이 역시 그리움이 됐다. 3대가, 4대가 북적거리며 차례를 지낸 후 나눠먹던 음식 맛은 얼마나 좋았던가. 설날 아침, 한바탕 북새통을 치룬 뒤에 제기를 챙기며 올해도 잘 해냈다는 그 성취감을 이제 어디에서 찾을까?

설날이 평일보다 더 한산한 날이 됐다.
그러나 떡국 등 간단한 상차림으로 차례를 대신하며, 조상님께서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보살펴 주십사 소원한다. 모든 일이 평온하도록 도와달라며 신축년 설날의 새해를 연다.

노경민 작가는
시와수상문학 수필부문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인 작가는 현재 문예계간 시와수상문학 운영이사로 순수문예지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