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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연극 ‘아침이 온다’를 보고나서

아침이 오면 또 길거리로 나가야지 그날 그때의 우리처럼 정노천 기자l승인2020.12.03l수정2020.12.03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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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타임즈=정노천 기자] 1960년 4월 19일.

탕- 탕! 탕! 날카로운 총소리가 울렸다.

자유, 민주, 정의를 외치는 시민들에게 경찰들이 총을 쏘았다. 사람들이 쓰러졌다.
그리고 그들 속에서 쓰러진 작은 아이 하나. 서울 수송국민학교 6학년 전한승 군이 4,19 시위대로 향해 발사하는 총알에 맞아 최연소 희생자가 된 것이다. 무엇 때문일까. 무슨 정치적 이념이나 있었을까 그런 친구의 죽음을 접한 아이들은 거리로 뛰쳐나왔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오직 용기! 사랑하는 부모 형제에게 총부리를 들이대지 말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을 했다. 가족의 죽음도 자신과의 관련 있는 죽음도 아닌데도 저렇게 분노를 일으키는 감정의 근저는 무엇일까? 누가 나가자고 했을까? 총구 앞에 무섭진 않았을까? 그 시위 현장의 총구 앞으로 나가게 한 그 힘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을 찾고 싶었다. 부조리에 항거하는 용기? 그건 어른들이 몫이었고 생명에 대한 존엄? 그것이었을까?

공분?

‘진실의 총부리를 바꿀 수 있는 이는 힘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 기자가 진실을 말하지 않아도 먹고 살아야 해, 난 부끄럽지 않다’고 말하는 기자 용덕(김성수 분)의 토로가 더 짠해진다. 당하는 자는 나약한 한 개인이고 가해자는 조직적인 세력이니 감당할 수 있겠는가.

초인간적인 힘을 갈구하면서 인간의 양심, 정의, 상식에 호소하지만 이 천박해진 인간 세상에 먹힐 수 있는가? 그래서 함께 뛰어나가고 공분하는 것인가? 이 작품은 이런 질문들에 대해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찾으면 찾을수록 질문은 계속 되고, 답도 오리무중이다.

4.19라는 것은 이미 끝나버린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여전히 우리 삶으로 흘러들어오고 스며드는 현재 진행형 사건이기 때문이다. 신문에서 찢은 한 장의 사진에서 시작된 이 이야기를 한 편의 연극에 담기에는 너무 뜨거운 이야기라고 연출가는 고백한다.

극단 예술공동체 ‘단디’가 제작한 연극 <아침이 온다(작/연출 박근화)>가 지난 11월 25일부터 29일까지 혜화동 시온아트홀에서 4ㆍ19혁명 60주년 기억작품으로 공연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0 아르코청년예술가 지원 선정작으로 제작된 이 연극이 호황을 누렸으면 하는 개인적 기대감을 갖지만 연극시장의 영세함과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롱런을 못하는 상황이라 안타깝다.

***

한 편의 연극이 던지는 질문은 항시 당돌하다. 그게 연극의 존재 이유다. 탕-탕! 탕! 60년 전의 총소리를 현시점에 끌어내어 '아침이 오면 또 길거리로 나가야지, 그날 그때의 우리처럼' 이 한마디를 재생하고 있다.

‘무녀 4남’으로 등장인물이 품어내는 대사는 관객들에게 숨 돌릴 틈도 주지 않으면서 밀도 있고 속도감 있게 끌어가고 있다. 자칫 관념적인 호기로만 흐를 수 있는 주제를 종극까지 구체성으로 풀어가는 입담이 폐부를 찔렀다.

시점은 과거 1960년 4,19가 일어날 때 초등학생시절과 성인으로 자란 현재로 왔다 갔다 하면서 무거운 주제를 비교적 객관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그것도 별다른 장면이동도 없이 하나의 교실이란 공간에서 암전으로만 시간대를 이동하는 단순한 무대 설정이다. 이 한 공간에서 무게감 있는 주제를 적나라하게 채우고 끌고가는 것은 대단한 이야기꾼이라는 저력을 보여준다.

탕, 탕, 탕 총소리의 초두 효과가 온 객석을 메우고 관객을 그 날로 순간 이동을 시키면서 연극은 시작되는데 그들이 표출해 내는 질문의 핵심은 인간이 불의를 당할 때 어떻게 살아야 하는 방법론적인 문제에 비중을 두고 펼쳐가는 고민들이었다.

과거 호흡이 척척 맞던 초등학생 친구 4명의 천진난만하고 순수했던 어린 시절의 동화(同化)와 훌쩍 자라버린 지금의 시간 소위말해서 머리가 커지고 나름대로의 가정을 꾸려야 할 다른 생활방식의 갈등양상이 주제의식과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성인이 된 친구들이 모여 갈등양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두 세계가 오버랩 되면서 숨 돌릴 틈없이 빠르게 극을 끌고 간다.

그들은 성장하면서 각자도생의 터널을 통과하는데 그 가치관이 서로 달라 격렬하게 부딪힌다. 불의를 보고 공분하는 그 핵심 키워드인 4,19는 우리 삶 도처에서 수시로 부딪히고 수렴하고 혹은 저항하면서 각자 공식으로 살아낸 삶을 일종의 성인의식처럼 풀어놓고 자신이 살아온 삶의 방식을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한 각자도생의 생존방식을 통해 만난 이들의 갈등양상에서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부조리를 여실히 드러내 주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침이 오길 기다리는 것이다. 밤은 삶의 구조적인 비극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아침이 오면 일신한 아침의 은유가 돼야 하는데 또 ‘아침이 오면 또 길거리로 나가야지. 그날 그때의 우리처럼!’ 이란 참 슬픈 현실을 시사하고 있으니 말이다.

4명의 남자 배우들이 무대를 장악하고 꾸려가는 이들 삶의 방식, 방관하고, 배우고, 알고, 실천하는 4방식의 길이 있다면 나는 두만(송승규 분)의 방식으로 굴러가는 건 아닌지 생각하면 아찔하기도 하다. 사회의 밑바닥에서 위로 쳐다보며 가족의 안일을 생각하고 되는대로 살다가 궁극엔 자살까지 생각하는 방관의 자세

그리고 사회구조의 상부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개선의 의지를 행동하다 짧게 가버린 규석(김이담 분)의 삶. 곁가지에서 툭툭 불거져 들어오는 종래(이길원 분)의 좌절만큼은 인식하며 살고자 하지만 부조리한 이 사회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주어진 현실에 아주 안주해버리거나, 생각만 하거나, 행동의 길로 가느냐하는 인간으로서 사는 길을 한번 반추해보는 시간이 됐다. 결국은 그 4명 모두가 내 삶의 편린 같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 세상에서 진실을 모두 긁어 내야해, 그래서 인간들이 모두 행복해진다면 굳이 불편한 진실을 찾을 필요가 없을 듯, 진실을 다 제거해야해, 탕탕탕 탕 총 4발이면 다 진실은 없어질까? 역설이 더 살기 쉬운 세상이 아닐까?’ 세상 물정도 모르고 주어진 대로 살다가 결국 아들까지 잃어버린 두만의 절규가 폐부를 찌른다. 그날 총 맞아 죽어버린 같은 반 친구 규석의 환영에게 처절하게 하소연한다. “대장 니 말은 항상 옳았잖아 네가 대답 좀 해봐!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지를?”

옳다는 것, 정의라는 것, 민주라는 것, 자유라는 것이 뒤범벅이 돼버린 세상 내 삶에서 배신해버린 이 무거운 적(?)들을 오직 ‘용기’라는 무기 하나로 해결할 수 있을까? 미봉책일 뿐일 텐데. 연극은 전부 질문 투성이다. 어차피 ‘인생이란 연극'은 답을 요구하는 건 아니지 않는가. 그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 위무 받을 수 있는 모성성인데… 모두 날선 이성의 치열성만 강조하는 사내들에게 감성적이고도 치유의 역할도 필요한 시대인데 우스갯말로 여성 배우가 출연치 않은 몰남성의 날선 입담만 무대를 가득 메웠다. 기승전결의 연극문법에서 기승의 단계가 아닌지 다음 편을 기대하게 한다.

그리고 직설적인 어법이 전체적으로 많아 우리 사회의 시대적 환부라는 환유는 달성했지만 예술이 주는 깊은 맛, 녹진한 은유를 배제한 것 같아 아쉬움이 남긴 한다. 다만 극단 예술공동체 ‘단디’ 단원들의 노련한 연기로 이런 점을 보완해 나간 점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연출가의 말처럼 끊임없는 질문을 계속하면서 코로나19처럼 팬데믹의 역량이 될 정도의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아침이 온다’는 이 연극이 트윈팬디믹의 위력으로 인간의 부조리한 삶이 개선되는 변화를 불러오기를 기대해 본다. 분명 아침은 온다. 아니 조금씩 변화를 보이면서 시나브로 올 것이라 믿는다.

인간이 모여 사는 사회에 던지는 질문이나 답이 획일적이지 않고 다양해지는 것이 자유로운 세상이다. 하지만 그 어떤 신념이나 돈, 권력, 이념, 사상. 종교든 생명을 앞서는 가치를 가진 것은 없다.

이 사유가 우리 선조가 말한 '부도'의 세계이며 '천부'의 세상인 것이다.

정노천 기자  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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