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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옥임의 시詩산책 86회] 유다의 은전 삼십

정옥임 시인l승인2020.10.21l수정2020.10.21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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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의 은전 삼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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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에 처음 가져 본 신형 ‘소나타3’ 짙은 코발트색의 옷을 입은 모습은 멋졌다. 함께 긴 세월을 보내리란 확신이 들었다. 초보운전 시절에는 두렵기도 했지만 온 세상이 환희로 충만해 행복했다. 녀석은 내 재산목록 1호였다. 둘도 없는 나의 친구! 든든한 다리! 어느 곳 보다도 아늑한 안식처이고 위로자고 큰 행복 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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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를 아프게 한 어이없는 일도 있었다. 처음으로 새 차를 사서 신부님께 축성을 받는 날이었다. 조심조심 주차하다 재활용 냉장고를 들이받았다. 거금을 들여 수리를 했다. 그 후로는 작은 상처는 입혔지만 큰 사고 없이 23년을 동행했다.

그와 함께하는 일이 점점 버거워졌다. 녹슨 열쇠 구멍은 문을 여는데 애를 먹이는가 하면, 방전이 심하여 애니콜이 와야 해결하는 일도 잦았다. 내가 보낸 세월만큼 그도 나이 든 탓인가. 이런저런 아픔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나와 얽힌 수많은 날들이 되새김이 되어 마음 결정이 어려웠다. 두세 밤을 더 고민했다. 녀석의 뒷모습은 의연했다. 때를 알고 보내는 아픈 내 마음을 이해하는지…….

애마를 내 마음대로 훌쩍 보낸 후, 가슴이 허전하고 서운하면 버릇처럼 놈이 서 있던 곳을 찾아 눈물을 찔끔거리곤 했다, 근래에는 이용도 잘 못했는데 녀석이 없으니 필요한 일이 심심치 않게 생겼다 많이 불편하고 아쉬웠다. 오래도록 함께 하기로 한 철석같은 약속을 어기고 떠밀 듯이 보낸 게 죄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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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이별 후. 양심에 호소하는 자기변호를 자주 뇌었다. 사람은 의학적으로 치유할 수 없는 지경이면 자연사로 이 세상을 대개는 떠난다. 차는 주인의 의사로 처리 할 수 있다는 게 다행이라고 나를 합리화시켜 갔다. 그래도 편치 않았다. 마지막 그가 서 있던 곳에 작은 꽃 몇 송이를 놓고 마음속으로 용서를 빌었다. 소용없는 일이겠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나를 면죄할 수 있을 것만 같아서였다.

그를 보내고 반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마음이 편치가 않다. 녀석이 간 후 삼일 째 되는 날, 정부에서 적은 액수의 보상금이 도착했다. 나에게 그리도 충직했던 애마를 팔아넘긴 것 같아 많이 괴로웠다.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넘기고 받은 ‘은전 삼십’이 떠올랐다.
      -저자 김현순 수필 [내 걸음은 연둣빛] 일부-

고희를 맞으며 시와 수필로 등단했다. 작가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새 글을 쓰기 위한 내 인생의 시작! 칙칙한 삶은 싫다. 내 걸음은 연둣빛이다.’ 어쩌면 세상을 향한 약속이 아닐까. 첫 수필집도 그렇지만 세상을 살만큼 사신 어르신의 농익은 글들이 마음을 붙잡는다.

일상 체험 속에서 새겨둘 만한 어록도 여럿 있다. ‘20일의 곡기를 끊고 한마디 말을 못하고 누워 있던 남편이 눈을 떴다. “나 가거든 어느 녀석하고도 살지 마!” “누구 하고도 살지 말라고요? 큰 아들 작은 아들?” 백번 공감하는 말이다. <마지막 한마디>에서

’늙음과 낡음은 한 획의 차이지만 품은 뜻은 사뭇 다르다. 낡음은 스스로를 포기하여 죽음을 향해가는 행위이다.‘ <내 걸음은 연둣빛>에서 그렇다. 늙음은 마음을 쉼 없이 갈고 닦아가며 가치 있게 낡아갈 때 원숙한 연둣빛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이런 고운 세계의 경지로 들어가기 위해 저자는 매일 식단을 짜듯 공부에 몰입했다.

더 늦기 전에 더 배우고 싶어 다니던 공부방들, 그 동안 얼마나 행복한 생활을 살았는지…. 코로나 바이러스여, 어서 떠나라. 돌리도, 돌리도. <돌리도>에서

<유다의 은전 삼십>은 요즘 반려동물 장례식이 유행처럼 퍼지고 있다는데 그보다 더 끈끈할지 모른다는 생각이다. 추모하는 마음으로 늘 서 있는 곳에 꽃을 헌화하는 장면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나도 집에 들어가고 나올 때 집안의 모든 아직은 내 것(죽으면 내 것 아닌 것들)인 사물들에게 인사한다. 모두들 잘 있어. 이따 보자. 돌아와서는 잘들 지내줘서 고마워! 나는 또 <시방세존 지혜무애> 마치 부적처럼 걸려 있는 초서로 갈겨 쓴 저 세상에 있는 남편이 얻어온 몇 글자에 절을 하며 “거기서 보기 딱하지! 내려다보기 깝깝하지! 선근으로 돌아봐줘! 자기랑 살면서 난 날마다 눈물이었다.” 이런 말들을 한다. 20년 동안 장롱 속에 구겨 있던 종이를 펼쳐 의미를 통한 것이 불과 몇 달 전이다. 그 후 기분인지 모르지만 맘먹은 대로 일상이 순탄하게 풀려간다. 남편이 “용서해줘!” 변호하는 듯하다.

정옥임 시인
1996년 ‘문학21’로 등단, 황진이문학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현대시 영문번역에 남다른 열정을 쏟아온 시인은 ‘시 읽는 사회를 위하여 나는 시를 읽고 시를 쓴다’ 등 시집이 있다.

정옥임 시인  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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