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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곡 김성곤3, 골프장 쇄신과 발전에 앞장...골프계 영향력 행사

1969년 서울건트리클럽 이사장으로 만장일치 선출 정노천 기자l승인2020.04.27l수정2020.04.27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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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타임즈=정노천 기자] 1953년 18명의 설립동의자가 모여 재 창립한 서울컨트리클럽은 15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장족의 발전을 거듭해 회원 수가 1023명으로 증가했다.

당시 골프장 회원 수가 이처럼 증가한 원인에는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안정을 누린 탓도 있지만 성곡의 공로도 빼놓을 수 없었다.

성곡은 1969년 4월 27일 서울컨트리클럽 제15기 정기총회 및 29일에 있은 제1회 이사회에서 이사장으로 선출됐다. 이날의 선출 방식은 투표가 아닌 구두 호칭으로 인한 만장일치 박수로 추대했다.

새로 출범한 진용은 다음과 같다. 부이사장에는 이병두, 박용학, 운영위원장 함성용, 경기위원장 박건석, 룰위원장 김치렬, 재정위원장 최용관, 핸디캡 위원장 김정렬, 캐디위원장 성상영, 후생위원장 권철현, 이밖에 이사에는 구인회, 허정구, 박종규, 민관식 등 18명으로 구성 됐었다.

성곡이 이사장으로 추대된 직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비한 점이 많은 저를 이사장으로 선출하여 주신데 대해 책임의 중압감을 느끼는 동시에 전임 부이사장 두 분이 계시어 업무를 수행하는데 한결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지금 시중에는 우리 클럽이 나쁘다는 평이 있는데 제가 이사장으로 있는 날까지 클럽 발전을 위해 밤중이나 언제라도 이사회에 나오겠으니 여러 이사들께서도 회의가 있을 때는 꼭 참석해 주실 길 부탁드리며 옛날보다 좀 더 나은 기풍이 잡히도록 노력하는데 있어 각 분과위원장들께서 잘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성곡의 인사말에서 골프장의 쇄신과 발전을 위해 전력을 기울이겠다고 다짐 그가 남달리 골프장 경영에 깊은 애착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성곡은 이사장에 취임한 후 1차적 사업으로 클럽하우스 재건 공사였다. 성곡은 “클럽하우스 건설기금 모금에 동참해 주는 법인에게는 특혜를 주어야 한다”는 민관식 이사의 제안을 받아 들였다.

이에 따라 이사회에서 500만원 이상을 기부하는 법인은 회원권 한 장을 발급해 주기로 하고, 그 액수에 50만~100만원의 돈을 더 내면 두 장을 주기로 했으며, 개인 입회금도 150만원으로 상향 조정하는 등 클럽하우스를 건설하는 묘를 짜내기도 했다.

당시 500만원 이상을 기부한 법인은 (주)한국나이론, 대한농산(주), 일신산업(주), 연합철강(주), 기아산업, 현대건설 등 11개 사에 이르렀다.

그러나 서울컨트리클럽의 운영은 성곡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가장 큰 애로점은 용지불하를 받기 위한 대금 마련이었다. 사실 이 문제는 김종락 이사장 때부터 거론된 것으로 총 10억500만원의 불하대금 마련에 필요한 구체적 계획이 세워지지 않았다.

성곡은 이사장에 취임하자 서울컨트리클럽의 불하 문제를 원활히 해결하기 위해 회원 1인당 10만원씩을 내도록 그 특유의 불도저 성격으로 밀어 붙여 주변의 반대도 있었지만 끝내 뜻을 관철시켰다. 그러나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서 이사장을 사퇴 하는 등 진통도 적지 않았다.

이병두 부이사장은 당시 토지 불하 문제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사회에서 “서울컨트리클럽은 클럽하우스 재건 모금을 하면 또 토지불하 문제가 있고 회원에게 부담이 가지 않게 하기 위해 다른 방향으로 결정 하자니 클럽 운영이 힘들 것 같다”며 “현 이사진은 이를 해결할 수 없으니 모두 사퇴하자”고 제안 결국 이사진이 총사퇴했는데 임시 총회에서 성곡을 이사장으로 재추대 했다. 성곡이 이사장에 취임한지 6개월 만에 사퇴했지만 총회에선 다시 성곡이 추대되면서 회원들이 1인당 10만원씩 내는 데 동의를 얻었다.

1970년경 서울컨트리클럽은 정상운영을 해가고 있는 가운데 그 해 12월초 동아일보 사회면에는 2단 크기로 ‘서울컨트리클럽에 어린이 대공원이 들어선다’는 제하의 기사가 보도됐다. 새 용지를 불허 받고 골프장 운영이 활기를 띨 즈음 이 같은 찬물을 끼얹는 기사로 인해 골프장은 소용돌이에 빠졌다.

클럽 부지 어린이대공원으로 전용
1970년 12월 15일 골프장 용지 공원 부지 신문보도에 대한 긴급 이사회가 열렸다.

“신문 보도로 인해 서울컨트리클럽 자리에 어린이 대공원이 들어선다는 사실을 알았는데 놀랍다. 진위 여부를 파악하겠지만 한 가지 의심스러운 것은 신문에 보도되기 전 서울시청 관리과장이 클럽을 조사해 갔다는 점이다”라고 사안의 심각성을 성곡이 말하자. 허정구 이사는 “회원들 사이에서도 이 같은 소문이 이미 나돌았는데 신문에 보도 되고 보니 사실인 것 같다.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은가.”라고 응수했다.

“이 문제는 이사회에서 논의 할 문제가 아니라 임시총회를 소집해 논의하자.”고 성곡은 말하고 이사회는 좀 더 진위를 파악한 뒤 임시 총회에서 이 문제를 다루기로 하고 회의를 마쳤다. 후에 회원들은 서울컨트리클럽 이전에 반대를 했지만 박정희 대통령은 성곡에게 “클럽 자리는 도심에 있어 주변 사람들의 원성도 있고 해서 골프장을 더 넓은 시외로 옮기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설득을 시켰다.

이렇게 해서 서울컨트리클럽은 역사와 추억을 간직한 채 군자리 시대를 마감하고 1972년 8월 고양군 원당에 위치한 한양컨트리클럽으로 옮겨가면서 두 클럽 회원들이 같은 코스와 클럽하우스를 이용하게 됐다.

성곡은 비록 짧게나마 9대, 10대 서울컨트리클럽 이사장으로 재임했지만 그가 경제인으로 한국골프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매우 컸다. 성곡은 이 보다 앞서 1969년 한국골프협회(대한골프협회 전신) 회장직도 3개월간 역임하는 등 국내 정치인이자 경제인 중 가장 골프 발전을 위해 이바지한 사람으로 평가 받았다.

성곡은 서울컨트리클럽 이사장에 있으면서 지배인이 집이 없음을 알자 사재로 집을 지어 지배인에게 주는 등 클럽 직원들을 친 자식 이상으로 소중히 여겼다.

그런 성곡은 1975년 2월 25일 아침에 갑자기 졸도 순천향병원으로 옮겼지만 계속 의식 불명인 채 저녁 8시 50분 63세로 홀연히 세상을 떠났다. 마침 그날은 자신의 모교인 고려대학교 졸업식이 있는 날이어서 교우회장으로 축사를 마무리 손질하면서 아침상을 받을 때였다.

그 전날 이승에서 마지막 날, 성곡은 지금의 교보빌딩이 있는 자리 ‘라일구’에서 고흥문 의원과 김기택 씨 등과 술잔을 돌리며 2차에는 신영수 씨가 가세했는데 신영수 씨는 장기영 씨와 함께 둘도 없는 성곡의 골프 친구였다.

이들과 마지막 이승의 밤이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이제 봄이 오니 골프장에 슬슬 나가 볼까…” 그는 술자리에서 이 한마디를 던지고 영영 지키지 못할 라운드 약속을 하고 그 다음날 눈을 감았다.

정노천 기자|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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