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정노천 기자]최근 한편의 영화가 나를 강타했다. 어디에도 매임 없이 거친 들판을 거침없이 질주하는 야생마와 같은 삶을 그려낸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 니코스 카잔자키스(Nikos Kazantzakis 1883-1957)의 일대기를 그린 전기 영화 ‘카잔자키스’.

그의 삶을 압축한 묘비명은 단 세 줄로 요약돼 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

불교성향이 상당히 깊이 파고들었다. 그는 호메로스와 베르그송, 니체를 거쳐 불교, 가톨릭, 기독교 등 다양한 철학과 종교를 섭렵했다.

“결국 당신은 내가 인간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이겁니다.”

“인간이라니, 무슨 뜻이죠?”

“자유라는 거지.” 결국 인간의 속성을 자유의지로 결론을 내고 만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는 자유인의 초상을 그린 작품이다.

전 세계인들이 손꼽는 스테디셀러 <그리스인 조르바>를 써낸 20세기 그리스의 가장 위대한 작가 ‘니코스 카잔자키스’ 그가 꿈꾸던 자유, 우정, 사랑에 대한 삶의 기행! 그래서 지배와 억압이 행해지는 세계의 어느 곳에서나 조르바는 스타였다.

격랑 속에 휩쓸리며 살고 있는 나는 이 묘비명에서 상당한 위안을 받게 됐다. 앞이 꽉 막힌 참혹한 현재를 살아 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바람처럼 막힘없는 조르바는 고통과 좌절을 위로하는 멘토였다.

작가 니코스 카잔자키스는 나치스 점령 하의 그리스에서 50만 명이 아사한 폭압의 시절을 견디기 위해 자전적인 내용으로 <그리스인 조르바>란 작품을 썼다고 한다.

작가는 탄광 사업차 실존 인물 ‘조르바’를 만났고, 소설의 내용처럼 둘이서 갈탄 채굴 사업을 벌이기도 했다. 배경이 되는 크레타 섬은 작가의 고향이다. 서양 문명의 출발점인 크레타에서 펼쳐지는 ‘나’와 '조르바'의 합작 사업은 완전한 파산으로 끝난다.

“내가 뜻밖의 해방감을 맛본 것은 정확하게 모든 것이 끝난 순간이었다. 마치 어렵고 어두운 필연의 미로 속에 있다가 자유가 구석에서 행복하게 놀고 있는 걸 발견한 것 같았다.”

사업의 파산에서 그는 해방감의 순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반짝이는 지중해와 크레타 섬을 무대로 우정과 악동적인 모험들을 경험하게 된다. 작가는 조르바와의 만남에서 온갖 감정에 직면했고 그동안 쌓았던 삶에 대한 자신의 학문적, 정통적인 접근에 의문을 품게 한 분수령이 됐다. 그러면서 인생이란 과정을 여행 속의 여정으로 설정했다. 관념적으로 쌓은 철학, 이념, 사상, 명예, 종교도 뛰어넘고 현실적인 사업과 정치, 전쟁 등을 버무려 삶과 죽음의 여정을 담담히 녹여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은혜를 베푼 것은 여행과 꿈들이었다. 산 사람이든 죽은 사람이든, 내 삶의 과정에서 도움을 준 사람은 몇 명 되지 않는다.”고 그는 설파했다.

이 영화는 실제 생존했던 니코스 카잔자키스의 일대기다.

그리스 크레타 섬에서 탄생한 작가 니코스 카잔자키스는 영원히 살아 있을 인물 조르바를 탄생시켰고 말년엔 <영혼의 자서전>을 써냈다.

전쟁시기에 작가는 어린 시절을 보낸다.

독립 투쟁의 중심에 아버지가 있었고, 투사들의 시신이 내걸린 곳으로 어린 아들을 끌고가서 발에 입을 맞추라고 강요하는 아버지에게서 공포감을 맛본다. 그때부터 내면의 투쟁, 그 피 흘림의 기록들을 만난다.

그가 성년이 돼서 일어난 독일과의 전쟁 그 폐허와 불안 속에서도 그는 글을 쓰면서 고통을 이겨내며 인간 본연인 자유를 부르짖었다.

그것이 그 공포로부터의 해방감을 주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도피가 아니라 체험을 통한 내면적 극복으로 환원된다.

전쟁은 끝나고 사상도, 이념도 자유 앞에서는 부질없는 부스러기일 뿐이었다.

그는 예수와 부처를 뛰어 넘었고, 결국은 인간의 거대한 명제 죽음까지도 인간본연의 가치인 자유로 극복했다. 죽음이란 명제 앞에선 철학이나 종교나 사회적인 구조와 제약이 얼마나 무모한 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매 순간 죽음을 응시합니다. 죽음을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죠. 하지만 한 번도, 절대로 한 번도 ‘죽어도 좋아’라고 말하지는 않죠.” 그렇다고 죽음에 대한 염세적 성향도 없다.

다만 인간의 영혼을 옭아매는 것들과 부딪혀 현장 체험으로 극복한다. 조르바와의 만남, 조르바의 춤, 파도의 춤 등 문약하고 경직된 사고를 가진 작가의 삶에 조르바를 양념처럼 던져 넣었다. 한마디로 ‘자유로운 영혼’으로 춤춘다.

여러 나라를 편력하기도 한 카잔자키스는 특히 파시즘과 전쟁의 위기 등으로 서구 문명의 한계와 위기감이 높아지면서 1957년에 중국, 일본 등 동양을 여행하며 인류의 새로운 희망을 찾고자 했으나 병을 얻어 결국 생을 마감하고 만다.

노벨상 후보에 9번이나 오를 만큼의 명예도 권력도 버리고 그는 글을 쓰고, 자유를 구가했고 삶의 여정 끝에 죽음을 놓으면서 죽음까지도 뛰어넘는 자유로운 삶을 누렸다.

문약한 작가와 거친 야생마처럼 자유를 마음껏 구가하는 조르바의 관계를 끌고가는 <희랍인 조르바>라는 소설을 내가 처음 접한 건 한창 감수성이 예민하던 고등학교 때다.

남녘의 시골 고등학교 시절, 1972년 창간된 '문학사상'이란 문학잡지를 창간호부터 구독을 했다. 지금도 어떻게 구독을 했는지는 알 수 없는데 2, 3년간 구독한 것으로 알고 있다. 꼽추화가 구본웅이 그린 창간호 표지 그림이 파이프 담배를 물고 있는 시인 이상의 초상화였다.

그때부터 이상이 나를 매혹시켰다. 훗날 대학원 때 이상 문학관련 논문까지 쓰는 계기가 됐다. 그 잡지에 '희랍인 조르바'라는 제목으로 연재가 된 것이 나와 카잔자키스와의 첫 대면이다. 나는 순식간에 조르바에 매료됐고 불안과 저항에 가득한 그 당시 나의 성향인 자유의지를 객관화한 작품이었다. 그 뒤 '그리스인 조르바'는 단행본으로 벌간됐고 또 안소니 퀸 주연의 영화까지 나왔었다. 이어 <영혼의 자서전>까지 구입했으나 아직도 읽다 마다하고 어딘가에 처박혀 있다. 나의 소개로 많은 사람들이 <희랍인 조르바>를 읽었고 심지어 모 문학회 한 여성 회원이 관광루트도 개발되지 않아 가기 힘든 크레타 섬을 일주일 일정으로 혼자 다녀오기도 했다. 그녀는 말했다.

크레타 섬에 있는 니코스 카잔자키스의 묘소에 항시 생화가 헌화되고 있다고 했다. 그때 한 초로의 여인이 빨간 드레스를 입고 빨간 장미를 들고와서는 니코스 카잔자키스의 묘소에 헌화하고 한참을 앉았다 가던 모습이 너무도 인상적이라고 했다. 그 후부터 나의 꿈도 크레타 섬 방문이 됐다.

국내 작가로는 이상이 있고 해외 작가로는 니코스 카잔자키스를 나의 선호 작가 반열에 올렸다. 실제 작가의 일상이나 작품이 혼연일체가 된 것은 이상이나 니코스 카잔자키스 둘 다 같은 맥락이다.

이번 영화는 시대와 어떻게 타협해야하고 저항하는지, 삶에서 사상과 종교 등의 정신성 그리고 사회적 제도나 제약 등이 혼재된 삶에서 죽음을 어떻게 인식해야하는 문제를 던져주고 있는 영화다.

할리우드 영화기법에 입맛들인 한국인에겐 낯선 영화문법이다. 그 영화를 보고 난 뒤 나는 최근에 번역된 <그리스인 조르바>를 사서는 밑줄을 그으면서 다시 읽고 싶은 책이 됐다.

[감독 : 야니스 즈마라그디스 | 출연 : 오디세즈 파파스필리오풀로스, 마리나 칼로기루, 토도리스 아테리디스, 니코스 카르도니스 외 다수 | 수입/배급 : ㈜마노엔터테인먼트]

정노천 기자｜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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