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일기

손녀손자들의 육아일기를 7년간 썼다. 커가는 어린 것들의 모습이 너무 신기하여 다녀갈 때마다 일기장에 기록해 놨다. 외손녀 김지민 9세까지 최영준 8세까지 최석준 5세까지 9권을 서재 책장에 보관해오다 각자 나누어 줬다.

세 살 터울 영준이 석준이는 형제이다. 둘은 잘 놀다가도 결국은 다툼으로 동생 석준은 항상 눈물을 흘러야만했다. 엄마아빠는 약자편이 될 수밖에. 그러나 동생 앞에서 형을 꾸짖는 일은 어긋난 교육이 아닌가! 동생 석준이는 형한테 지지 않으려는 오기가 대단한 아이였다. 울음만 터트리면 자기편이 되어주니 석준이의 울음은 하나의 무기였다. 어떠한 경우에도 형을 이기려는 석준, 또한 형 체면에 동생에게 지지 않으려고 주먹질하는 영준, 때론 영준이의 울적한 표정에 나는 몹시 괴로웠다. 녀석들의 싸움을 막기 위해 그간에 여러모로 시도해보았지만 모두가 헛일이었고 아들 며느리 역시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그러던 중 할머니한테 일기 노트를 받아간 지 일주일 만에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편지 한 장씩 써왔다.

형 영준이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잘 보살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로 이제 보답해 드린다고 어깨도 주물러 드리고 일도 도와드리며 동생과 사이좋게 잘 지내겠다고 써왔다. 동생 석준이는 할머니 일기에 쓴 ‘됨’을 절대 잊지 않겠다는 결심과 어릴 때 일이 궁금했었는데 할머니가 일기를 보고 궁금증이 확 풀렸다는 이야기였다. ‘됨’은 석준이 나름대로의 암호였던 것이었다. “그럼 이제부턴 형한테 대들지 않고 사이좋게 지내겠다는 말인가? 석준이는 큰 소리로 네라고 대답했다.

앞서 석준이게서 받은 편지를 저녁 식사하면서 가족들 앞에서 낭독을 하며 많은 칭찬을 해 주었다. 저번에 이어 오늘도 눈물을 흘리지 않고 형과 사이좋게 놀다 갔다. 얼마 후에 며느리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이들 사이가 어떠냐?”

“사이좋게 잘 지내고 있어요. 100% 달라졌어요. 그리하여 일기장을 가져간 지 3개월 동안 지켜본 달라진 모습에 월드컵 축구공 선물을 했다. 오랜 세월 써온 육아일기가 효과를 낼 줄이야, 부디 할아버지와 할머니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손자가 되어다오.
       -저자 정기숙 에세이 [육아일기] 일부-

대부분의 글쟁이들은 일기를 쓴다. 그것이 어떤 형태의 글이든 써서 모은다. 시를 쓰는 사람은 시 일기를 수필가는 일상일기. 소설가는 체험일기. 정기숙 선생님은 수필가이고 시인이며 성악가이다. 그리고 베스트 드레서이시다.

센스 있는 옷차림이 젊은이들 못지않으시다. 언제 어느 장소에서나 선생님이 나타나시면 새로운 신선한 바람이 인다. 훤칠한 키에 넉넉하고 멋이 깃든 옷차림이 돋보이시는 선생님이 육아일기를 쓰셨다니 믿기지 않았다.

아이를 기르면서 돌보면서 쓰는 게 육아일기인 것으로 알았었다. 그러나 주말에 한 번 와서 지내다 가는 아이들을 관찰하면서 사이좋은 형제로 자라기를 바라는 소망으로 가득 찬 사랑의 일기이다. 사랑은 관심이다. 함께 있지 않아도 항상 마음을 기우리는 사이. 그리운 사이, 안 보면 보고 싶은 사이, 그게 사랑이다.

선생님은 나에게도 좋은 인생 본이시기도하다. 건강하시어 글이나 또는 얼굴 마주하며 오래오래 만나 뵙기를 마음을 다하여 희망한다.

정옥임 시인｜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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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옥임 시인은
1996년 ‘문학21’로 등단, 황진이문학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현대시 영문번역에 남다른 열정을 쏟아온 시인은 ‘시 읽는 사회를 위하여 나는 시를 읽고 시를 쓴다’ 등 시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