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문정호 기자] 한국 골프의 중심지가 된 경성골프구락부는 1930년대를 넘으면서 골프를 활성화하려고 활발하게 움직였다.
다른 지방에 골프장이 건설될 수 있도록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일본 프로골퍼들을 초청해 시범경기를 가지거나 골프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더욱이 일본 골퍼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던 것을 한국의 골퍼들을 육성해 대체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대두된 것도 이 무렵이었다. 골프대회에 참여하는 선수는 물론 골프장 설계에 이르기까지 일본 프로골퍼에게 의존해야 했을 당시의 실정에 비춰볼 때 어쩌면 당연한 움직임이었다.
경성골프구락부에서 골프를 배우던 연덕춘은 일본 골프 유학도 골프장의 배려로 이뤄졌다. 한국골퍼가 처음으로 해외에 골프유학을 떠난 것이다.
연덕춘은 1934년 겨울에 일본으로 골프 유학을 떠났다. 당시 그의 나이 18세. 후지사와골프장의 나카무라 가네키치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골프 수업을 받았다. 나카무라의 문하생은 연덕춘 외에도 나카무라 도라키치, 이가와 에초, 사사키 요시 등이 있었다. 후일 이들 모두가 훌륭한 골퍼로 성장했다.
골프 수업을 받기 시작한 지 3개월째 되던 1935년 2월 연덕춘은 일본 관동프로골프협회에서 프로자격증을 획득해 한국인 가운데 최초로 프로골퍼가 됐다.
프로골퍼가 된 그에게 관동프로월례경기에 출전할 수 있는 자격이 자동적으로 부여되면서 모든 대회에 참가할 수 있었다. 처음 출전한 공식 대회는 그 해 2월에 동경에서 개최된 관동프로월례경기였다.
이 대회에서 한 홀에서만 무려 6개의 오버파를 기록하며 고전을 면치 못하는 뼈아픈 경험을 하기도 했다. 1936년 4월 귀국하기 전까지 연덕춘은 꾸준히 관동프로월례경기에 출전했지만 기록은 별로 좋지 않았다.
한국에서 유일한 프로골퍼인 그는 귀국 후 경성골프 코스의 전속 프로로 근무했다. 한동안 회원들의 레슨을 맡았고 지방에 위치한 골프구락부(현, 컨트리클럽)의 초청을 받아 시범경기를 가지기도 했다.
일본의 프로골퍼들을 초청해 레슨을 받거나 시범경기를 가졌던 조선의 골프계에 변화의 기운이 점차 조성되기 시작했다. 연덕춘은 1937년 일본오픈골프선수권대회에 출전하여 8위라는 좋은 성적을 거뒀다. 이듬해인 1938년 6월 후지사와골프장에서 열린 일본오픈골프선수권에서 전년도 우승자인 진청수와 함께 공동 5위를 차지하며 점차 자신의 이름을 부각시켰다.
린만뿌쿠가 우승한 이 대회는 토다, 미야모토, 나카무라 토라키치 등 일본 최고의 골퍼들이 근소한 차이로 접전을 벌였다. 1938년 9월22일부터 다카라츠카골프장에서 열린 일본프로골프선수권대회에서는 3위를 기록했다. 1939년 1월에 필리핀오픈에 참가했지만 기록이 저조했고 그 해 9월에 일본프로골프선수권대회에서 다시 3위를 차지했다.
그로부터 2년 후 1941년 5월 호소가와골프장에서 열린 일본오픈골프선수권대회에 참가하여 라운드 합계 290타를 기록해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인 프로골퍼의 일본오픈 첫 재패였다. 이 대회는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마지막으로 열린 일본오픈골프선수권대회(제2차 세계대전으로 1950년까지 대회 열리지 못함)가 됐다.
그 후 연덕춘은 제2차 세계대전 전에 열린 최후의 대회가 된 전일본프로골프선수권대회에서 결승까지 진출했으나 진청수에게 우승을 넘겨주고 준우승에 머무르는 아쉬움을 남겼다.
선만프로경기는 조선과 만주를 순회하며 1년에 3회 정도 열려
선만프로경기는 1940년경부터 시작된 조선과 만주 프로골퍼들의 연례 친선경기였다. 조선과 만주를 순회하며 1년에 3회 정도 치러졌는데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인 1942년부터 열리지 못했다.
당시 경성골프구락부 전속 프로였던 연덕춘에게 골프를 배운 심종현은 보조 프로로 최재형은 만주의 안동골프장 전속 프로로 근무했다.
선만프로경기가 열린 골프장과 이 경기에 출전한 프로골퍼들은 경성골프코스-연덕춘, 부산골프코스-산다(일본인), 안동골프장(만주)-최재형, 장춘골프장(만주)-이다 킨사쿠, 안산골프장(만주)-칸타, 동릉골프장(만주)-우치다 요시오, 무순골프장(만주)-요시다 미요시, 대운골프장-나카무라 가네키치 등이다.
선만프로경기가 열리면 상당수의 갤러리가 모였다. 당시 일본에는 프로골프선수권대회가 열렸지만 조선과 만주는 프로골프대회가 없었기에 선만프로경기는 갤러리들의 관심이 클 수밖에 없었다. 조선의 많은 골퍼들이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모였다는 것은 골프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많았다는 증거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1943년 3월 일본이 모든 골프장(조선, 만주도 포함)을 폐쇄할 때까지 우리나라 프로골퍼의 계보는 연덕춘, 최재형, 심종현, 신봉식으로 이어졌다.
최재형, 심종현, 신봉식은 프로골퍼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지만 사실상 프로 역할을 했으며 선만프로경기에 최재형과 심종현은 프로골퍼의 자격으로 출전하기도 했다. 그런데 신봉식은 연덕춘에게 골프 수업을 받다 늑막염으로 도중하차해 수년이 지난 후에야 골프에 다시 복귀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문정호 기자｜karam@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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