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굽

구두 뒷굽이 닳아 그믐달처럼
한 쪽으로 기울러졌다
수선집 주인이 뒷굽을 뜯어내어
참 오래도 신으셨네요 하는 말이
참 오래도 사시네요 하는 말로 들렸다가
참 오래도 기울어지셨네요 하는
말로 바뀌어 들렸다
수선집 주인이 좌빨이네요 할까봐 겁났고
우빨이네요 할까봐 더 겁났다

구두 뒷굽을 새로 갈 때마다 나는
돌고 도는 지구의 모퉁이만 밟고
살아가는 게 아닌지 순수의 영혼이
한쪽으로만 쏠리는 건 아닌지
한사코 한 쪽으로만 비스듬히
닳아 기울어가는
그 이유가 그지없이 궁금하다
         -저자 허형만 시 [뒷굽] 전문-

신발은 우리 몸을 싣고 다니면서 도달하려고 하는 지점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주는 배이다. 몸의 최하위에서 지렛대와도 같이 꼿꼿이 서있게 하는 발, 발을 잘 보호해야 하는 것이 곧 답이다.

처음 인간은 발을 보호하기 위해 나뭇잎으로 감싸고 다니다가 짚신과 고무신을 만들었고 중세기 초기부터 구두를 신기 시작했다. 가죽으로 만들었으며 딱딱하고 두꺼운 밑창과 굽이 있다. 처음엔 모카신 형태로 만들어 신다가 발목 주위를 버클이나 끈으로 죄여 신었으며 끝이 뾰족하게 길어졌다가 뭉툭해져 오리주둥이처럼 납작하게 모양이 다양해졌다.

1760년대에야 미국 매사추세츠에 구두 공장이 생기면서 대량생산이 시작되었고 재봉틀 같은 근대적인 기계로 인해 대중화 되었다고 한다. 요즘 여러 형태의 구두가 보편화 된 세상에 살지만 나도 구두 굽을 갈아 본 경험이 여러 번이다. 발에 편한 구두는 겉모양이 낡아도 버릴 수가 없다.

오랜만에 장만한 신발이 편하지 않을 때 다시 헌 구두를 다시 찾아 수선하여 신게 된다. 길을 걸을 때도 물위에서 노를 젓는 것처럼 한 발 한 발 신중하게 내 딛어야 한다. 서둘다 엇박자에 걸려 넘어지면 크게 다친다. 올 여름 나는 길을 걷다 왼쪽 발이 뒤둥그러져 무릎과 발목을 크게 다쳤다. 추슬러 일어나 약속 장소에 가긴했지만 두어 시간 지나자 발목 발등이 소복이 물찬 것처럼 부어올랐다.

나이 들면 모양보다는 편한 신발이 좋다. 소소한 물건도 오래 같이 했던 것이 더 애착이 간다. 손에 눈에 마음에 익는 나의 곁에 오래 있었던 것들이 좋다. 친구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정옥임 시인｜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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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옥임 시인은
1996년 ‘문학21’로 등단, 황진이문학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현대시 영문번역에 남다른 열정을 쏟아온 시인은 ‘시 읽는 사회를 위하여 나는 시를 읽고 시를 쓴다’ 등 시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