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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길의 막전막후] “누가 거짓을 만드는가?” 연극 ‘페이크’

거짓뉴스에 담긴 희노애락...심신이 편안한 삶은 말을 삼가는 것 ‘언부중리 불여불언’ 윤상길 칼럼니스트l승인2019.10.24l수정2019.10.24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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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타임즈=윤상길 칼럼니스트] 고전이란 과거 인류가 남긴 유산 중 가장 빛나는 것들만 모아 둔, 일종의 보물창고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갈무리된 보물들은 그야말로 너무나 값지고 단단한 것들이어서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고 오히려 더욱 강렬한 빛과 열기를 발산한다. 따라서 고전에 대한 믿음은 단순히 옛것을 존중하다는 차원을 넘어, 시시각각 변화하는 지금의 삶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준비가 될 수 있다.

중국에서 정사(正史)로 인정받는 역사서는 이십사사(二十四史)로 불리는 24종의 책이다. 그 가운데 한 책인 ‘전당서’(全唐書)는 현대인의 필독서로 꼽힌다. 당나라의 역사를 담은 이 고전의 ‘설시편’(舌詩編)에는 후대의 정치가들이 금과옥조로 삼는 명문장이 담겨 있다. 바로 후당 때의 재상 풍도(馮道)의 오언절구(五言絶句)이다.

“口是禍之門 구시화지문 :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요 / 舌是斬身刀 설시참신도 : 혀는 제 몸을 베는 칼이로다 / 閉口深藏舌 폐구심장설 : 입을 다물고 혀를 깊이 감추어 두면 / 安身處處牢 안신처처뇌 : 가는 곳마다 몸이 편안 하리라”- 괴로운 고통으로 끝나면 다행이지만 목숨까지 잃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던 당시 정치 상황에 던지는 경고문이었다. 오늘의 현실도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자신의 목숨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목숨까지 앗아가는 요즈음이다.

입을 조심하고 혀를 조심하고 말을 삼가라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유구한 진리이다. 풍도 이후 천년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혀를 함부로 놀리고, 거짓말을 쏟아내는 작태는 여전하다. 오히려 그 정도가 지나치다. 오죽하면 ‘가짜뉴스’란 합성단어가 백과사전에 등재됐을까. 다음백과는 ‘가짜뉴스’를 ‘뉴스 형태로 된 거짓 정보’라고 정의하고 있다. 뉴스는 인간의 삶을 바른 길로 인도하고, 그로 인해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가짜뉴스’를 만들고 유포하는 일은 약국에서 ‘독약’을 파는 행위와 비슷하다.

‘가짜뉴스’는 SNS 공간에서 많이 만들어진다. 대중의 저급한 흥미에 영합하거나, 집단 이기주의에 매몰된 사람들이 죄 의식 없이 쏟아낸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는 일부 미디어에서도 질세라 ‘가짜뉴스 생산 전달 공장’으로 전락한 현실이다. 이를 바로 잡으려는 ‘가짜뉴스 수사대’의 발걸음도 바빠졌다. 인생궤도를 바로 잡기 위함이다. 극단 민예도 연극 ‘페이크’(FAKE)로 이 대열에 동참했다.

연극 ‘페이크’는 “가짜가 판치는 세상, 누가 거짓을 만드는 것일까?”란 질문으로 시작된다. 그 대답은 관객의 몫이다. 서울의 대학로 ‘극장 동국’에서 10월 23일~11월 3일까지 김성환 연출이 이끄는 극단 민예의 김시원, 박인아, 홍광표, 송정아, 이동환, 심민희 등 노련한 배우들의 열정적 연기를 통해 ‘가짜뉴스’의 껍질이 벗겨지고 있다. 무대에서는 가짜뉴스의 생성에서 전파, 부작용, 깨달음, 근절대책까지 민낯이 공개되고 관객의 동의를 구한다.

극단 측은 ‘만델라 효과’ (Mandela Effect)를 극의 기둥으로 삼고 있다. 가짜 뉴스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잘못된 기억을 가지게 되는 ‘만델라 효과’를 이끄는 집단적 동의를 만들어내고, 어떤 이는 진실이 무엇인지 확인하려 하지 않고 그냥 맹목적으로 믿는 것은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진실로 받아들이는 탈진실(Post-Truth) 시대의 산물이라고 말하고 있다.

가짜뉴스와 청년실업을 한 플레임에 가둔 시도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고액 알바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는 오늘의 청춘이 역사 속 가짜뉴스와 만나면서 현대의 ‘가짜뉴스’가 얼마나 세상과 사람들을 미혹시키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과거 광해군 시대, 관리들에게 함부로 말하지 말라며 ‘신언패’(愼言牌)를 목에 걸고 다니도록 해 진실을 말하지 못하도록 입을 막기도 했던 사례도 등장한다.

연극 ‘페이크’는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현대에는 말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아무 말이나 하는 것이 문제이다. 그렇다면 누가 거짓을 만드는 것일까?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아이들에게 마(麻)를 주며 서동요를 부르게 하여 신라의 선화공주와 결혼했다는 백제 무왕의 이야기, 조선 중종 22년 세자를 저주하는 방서(謗書)를 동궁의 은행나무에 걸어 정적을 죽였던 '작서의 변' 등 거짓으로 꾸민 이야기는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다.”라며 역시 옛 이야기를 화두로 올렸다.

김성환 연출은 “연극 ‘페이크’는 이러한 거짓 뉴스에 담긴 희로애락을 그려보고자 한다. 역사는 지속적으로 반복되기에 뒤돌아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연출자의 의도 그대로 심신이 편안한 삶은 말을 삼가는 것이다. 이 연극의 “한 번 쏟아지면 담을 수 없는 물처럼 삼가 경계하여 나를 살피고 타인을 배려함이 사회를 아름답게 만들고 인류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란 메시지에 동의한다.

다시 고전으로 돌아가면, 연극 ‘페이크’의 더욱 분명한 메시지가 보인다. 유회(劉會)는 중국 남북조시대 남조(南朝) 제나라의 문장가로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유회의 말이다. “말이 이치에 맞지 않으면(言不中理 언부중리) 말을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不如不言 불여불언)”. 차라리 말을 하지 않는 편이 더 낫다는 그의 훈계는 거꾸로 뒤집어 해석하면 “말을 하게 되면 반드시 이치에 맞는 말을 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거짓의 세계와 인간들을 향한 연극 ‘페이크’의 절규도 이와 다름 아니다.

윤상길 컬럼니스트|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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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윤상길
부산일보ㆍ국민일보 기자, 시사저널 기획위원을 역임하고 스포츠투데이 편집위원으로 있다. 장군의 딸들, 질투, 청개구리합창 등 소설과 희곡 등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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