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이상일 파리 특파원] 파리는 쾌청한 하늘을 양털로 배를 가리고 있었는데, 비행기를 타고 1시간 10여 분을 날아온 루르드 공항은 무척이나 비가 많이 내린다. 딸애가 콜한 택시를 기다리는 동안 공항 여기저기에 렌즈를 들이 대본다. 우리나라의 김포공항 국내선 터미널 규모로 아담하다.

주변도 프랑스의 농촌 모습을 그대로 깔고 앉은 작은 시골 도시 공항으로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 같다. 연락을 미리 해놓았는데도 택시가 늦장을 부린 탓에 외부로 나와 기다리던 우리는 오월임에도 내리는 비 탓인지 약간의 한기마저 느껴진다. 애를 태우던 택시가 눈앞에 나타났다. 의외로 기사는 우리에게 친절히 대해주며 정중히 차 문을 열고 짐을 받아 챙긴다.

목적지는 30분 정도는 가면 도착할 수 있단다. 처음 파리에서 이곳에 오는 방법에 대하여 많은 검토를 해봤다. 고속열차를 타고 갈 것인지, 차를 몰고 갈 것인지. 고속열차를 타면 루르드 역에 내려 다시 버스를 타고 2시간 30분 정도 가야 기적의 샘물에 도착할 수 있단다.

차를 직접 몰고 가면 편의성은 엄청 좋겠지만 몇 해 전 이곳과는 그리 멀지도 않는, ‘몽테크리스트 백작’이 갇혀 지낸 ‘마르세이유’ ‘이프섬’을 가보겠다며 차를 몰고 다녀 봤기에 쉽게 선택을 할 수가 없었다. 그때도 ‘아비뇽’까지 고속열차를 타고 그곳에서 차를 랜탈하여 프랑스 남부를 다니기는 했지만 초행길이라 제법 고생을 한 기억도 더하여서..

당시 6월의 ‘라벤더’농장을 보겠다며 ‘프로방스’에서 1박을 하고 ‘아를’에서 ‘반고흐’의 발자취를 따라간 것까지는 좋았는데 ‘라벤더’를 찾아 ‘발랑소’로 가는 길에 ‘네비’의 장난으로 두 번을 더 ‘라벤드’ 향에 취해 아찔해 한 기억도 떠오른다. 가다가다, 배가 고파 산을 넘고 물을 건너 급하게 찾은 곳이 ‘마르세이유’ 옆에 있는 ‘까시항’ 이었다는 생각도 난다. 프랑스 남부는 지도로 보면 손바닥 안에 다 덮이지만, 그리 호락호락 하지만도 않다. 결국 최종 선택한 것이 교통비가 조금은 더하겠지만 비행기로 다녀오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에 이르고 아침 일찍 파리 ‘오를리공항’을 출발하여 11시경 ‘루르드공항’에 도착했다.

‘알랭’이라 했다. 택시 기사에게 필자의 이름을 밝히고 이름을 물으니 알랭 뭐라고 했었는데 알랭이라는 소리만 귀에 들어왔다. 해서 내친김에 ‘알랑드롱’과 관련이 있느냐고 했더니 알긴 아는 영화배우라고 했다. 30분이라는 시간적 여유가 있어 계속 수다를 떨었다.

기사는 딸이 둘인데 모두 결혼을 해서 파리에서 살고 있단다. 수첩에서 사진을 꺼내어 예쁘다고 하기에 조금 전 화제(話題)로 삼은 영화배우 ‘브리짓드 바르도’를 닮았다고 했더니 박장대소를 해 댄다. 빗줄기는 계속 차창을 두드리고 그 소리는 그칠 기미도 보이지를 않는다. 딸애에게 하루 가이드로 용차를 하면 어떻겠냐고 물어보게 했다. 시간당 20유로면 가능하다고 했다. 우리도 그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때부터 ‘알랭’은 택시 기사에서 ‘루르드’ 전문 가이드로 변신을 하게 된다.

기사 가이드의 안내로 차에서 내려 보니 토요일 임에도, 구름 같은 인파가 줄을 지어 꼬리를 물듯이 어디론가, 무엇에 끌려가듯 몰려 들어가고 있었다. 우리 가족도 그 무리에 편성을 해 볼 요량이다. 그런데 비가 너무 세차다. 그들도 모두 우산이나 비옷을 입고 있었다. 천기를 내다보는 필자는 비옷을 준비해 왔지만, 딸애와 집사람은 가게에서 비옷을 사서 입고 만반의 준비를 해 본다.

한참을 종종걸음으로 앞서가는 사람을 따라가니 엄청남 규모의 ‘루르드 성당’이 빗속에서도 그 위용을 움츠리지 않고 자랑한다. 그 부지며 형상도 규모를 어디 비교해서 부연설명을 해야 할 만한 곳이 없을 정도다. 우리나라 가평에 있는 통일교 전당의 규모로 보아도 될 것 같다. 초입에 있는 큰 건물이 있어 가보니 그곳이 이곳 성지의 안내소라고 한다. 안내소가 보통의 성당만 하다.

성당의 정면에서 바라보니 그 형세가 절묘하다. 2층의 구조로 지어졌는데, 큰 독수리가 날개를 쫙 펼치고 내려앉은 듯 마치 알을 품듯 대지를 끌어당기고 있는 형세다. 풍수로 치면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으로 성당을 세웠다. 이곳에 연간 400만 명이 넘는 세계 각국의 가톨릭교도들이 순례차 찾는다고 했다.

지하 예배당엔 한 번에 3만 명이 들어가 ‘아베마리아’를 찬미하는 공간이란다. 급한 마음에 앞설세라 뒤 설세라 긴 줄을 따라 기적의 샘물을 찾아 나선다. 임시 유도로를 밧줄을 이용하여 공항 출입국 검색대처럼 엮어 놓았는데 성지에 축복을 받으러 온 사람들이 여기서도 밧줄 밑을 드나들며 사람 냄새를 풍겨준다. 아마 더 빨리 성모님의 은총을 받고 싶어 한 짓이리라 이해를 해 본다. 좀 더 빨리 지금의 고통에서 벗어나고픈 마음에...

프랑스의 ‘루르드의 샘물’은 문헌상 멕시코 ‘트라코테의 물’, ‘독일의 노르데나우의 물’, ‘인도의 나다나의 물’과 더불어 세계 4대 기적의 물로 불린단다.

어떤 치료를 해도 낫지 않던 질병이 물을 마시거나 몸에 바름으로서 완치가 되는 등, 믿기 힘든 일이 벌어지고 사람들을 그것을 기적으로 받아들여 ‘기적의 샘물’로 불리게 되었단다. 이곳이 세간에 알려진 때는 1858년 2월이다. 이 지역에 살던 ‘베르나데타’가 여동생 ‘트와네트’를 데리고 장작을 주우러 나간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들은 근처에 있는 ‘마사비엘 동굴’에서 황금색으로 빛나는 구름이 떠오른 것을 보고, 호기심에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동굴 안에 들어서니 하얀 옷에 파란 띠를 두르고 오른손에 묵주를 든 아름다운 귀부인이 허공에 서 있었다. 그리고 계속 ‘베르나데타’의 발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바닥을 파보라고 했다. ‘베르나데타’는 땅을 팠고 거기서 물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드디어 샘물 가까이 다가가 동굴 옆 바위 앞까지 왔다. 필자는 ‘아베마리아’를 흥얼대며 연신 바위를 타고 내리는 샘물에 손을 훔쳐 얼굴이며 목에 발랐다. 의식을 알아서가 아니라 앞서가는 사람들이 하는 흉내를 그대로...

앞에 기적의 샘물이 졸졸 솟아 나오고 있는 것이 보인다. 유리판으로 가림막을 하여 직접적인 사람들의 물 접촉은 금하고 있었다. 여기까지 오는데 자그마치 1시간 반은 걸린 것 같다. 소원, 그 원을, 성인, 그 존경심,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들의 열정은 다 같은 모양이다. 벌써 수십 년이 지났네, 필자의 고향인 경북 영천에 ‘돌 할머니’라는 소원을 들어주는 ‘기적의 돌’이 있다고 공영방송을 탄 적이 있었다. 전국이 소란스러웠다. 팔공산 갓바위처럼 전국에서 차를 몰고 심지어 전세버스까지 동원하여 소원 참배객 수천 명이 ‘돌 할머니’ 앞으로 모여들었다.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기도 축원금으로 마을은 부자가 되었지만, 소문이 앞서나가 주차장이나 편의시설이 전혀 없는 상태라 주변 농로는 물론이고 경작 중이던 논밭에도 차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한 해 농사를 망쳐버린 농가도 있었다고 했다.

필자도 대구에 있는 누나의 꼬드김(?)에 빠져 토요일 날 대구로 내려갔다. 당시 서울시 말단 공무원으로 있던 시기라 승진에 대한 갈망과 궁금증도 있었기에 저녁 8시에 그곳에 도착하여 밤새 줄을 서 기다리다 ‘돌 할머니’를 손으로 들어본 시간은 아침 6시, 자그마치 10시간이 소요됐다. 어쨌거나 기다림의 덕택으로 ‘돌 할머니’가 소원을 들어주어 서기관까지 하고 공직을 무사히 마친 것은 고마운 ‘돌 할머니’의 가피 덕분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성철스님’이 열반에 들자 수도 없이 많은 불자들이, 스님의 진신사리를 친견하려 합천 해인사로 몰려들었는데 그곳에서도 밤새 줄을 서고 아침 8시가 돼서야 스님의 진신사리를 친견할 수가 있었다.

명소에서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헌금을 하던 몸 보시를 하던 그만한 성의를 보여야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될 것이다. 가이드가 동굴 옆에 있는 샘물을 맛보러 가자고 했다. 그곳에서도 각종 진귀(?)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벽에 수도꼭지를 설치하여 샘물이 나오게 하여 자그마한 병이나 컵으로 조금씩 여러 참배객이 맛보도록 한 시설로 여겨지는데도, 대형 물통을 들고 줄을 서는가 하면 2리터의 커다란 페트병으로 물을 받는 사람도 많이 보인다.

필자는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할 수 없다. 물 한 모금 마시려면 그래도 기다릴 수밖엔, 한참을 더 기다렸지만 비켜나 올 생각을 안 한다. 기다리다 지쳐 물을 받는 앞사람에게 손짓 발짓 다해가며 물 한 모금만이라도 얻어먹자고 했다. 아는 채도 안 한다. 다시 페트병 뚜껑을 가리키며 이곳에 라도 조금 부어주면 고맙겠다고 해도 귀찮다는 듯이 손사래를 친다. 이런 성소에서 축복을 찾아온 사람이 어찌 이리 매정할까?

같은 동양인 행색을 하고 있어 조금은 친근하게 했었건만, 역시 우리 조상들이 말하던 중국 땐 놈 건성이란 말인가? 씁쓰레 한 기분을 애써 달래며 있으니 단체 순례자들인지 일시에 다들 수도꼭지에서 물러나 자리가 빈다. 그러나 난감하긴 매 한 가지다. 물 받을 용기(用器)가 없다. 우선 두 손으로 몇 번 물을 받아 목을 축이긴 했지만 아쉬움이 남았는데 위기대처능력이 남다른 집사람이 들고 온 가방을 뒤적이더니 일회용 비닐장갑을 꺼내 든다. 두 개에 가득 물을 받았다. 그때까지도 하늘은 비를 계속 내뿜고 성당 옆을 지나가는 샛강은 만수(滿水)가 되어 제방 턱면을 핥아 대고 있다.

기사 가이드가 침수하는 곳(이곳에서 ‘기적의 샘물’에 목욕을 하게 해준다고 했다. 가이드가 할 수 있겠느냐, 묻기에 한번 해 보겠다고 용기를 냈다)로 안내를 해준다. 다가갔더니 세차게 흐르는 샛강 다리를 가리키며 건너가서 상류 다리를 다시 건너와 저곳에서 줄을 서라고 하며 위치를 잡아준다. 비는 줄기차게 계속되고, 5월 말 지중해 연안의 기온이 어떤가를 체험하란 듯이 몸에 차가움까지도 더 해준다.

다리를 건너가니 곳곳에 촛불을 밝히는 기도단이 설치돼있다. 그곳에 들어가니 비도 피하고 좋았다. 수많은 촛불로 약간의 온기도 맛볼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은 그곳에서 제일 큰 팔뚝만한 양초를 사서 불을 달아 소원성취를 빌며 촛대에 올리고는 ‘아베마리아’를 염송했다.

안내자가 지정한 곳은 남자들이, 아니 우리 혼성팀을 보더니 누가 침수를 할 것이냐고 물었다. 필자가 한다니 남자들 자리로 안내를 해준 것이다. 다른 한곳에 여자들이 모여앉아 있었는데 그 숫자가 남자보다 열 배는 더 많아 보인다. 이곳도 열성은 여자들인 모양. 암튼 지구상의 아줌마는 대단하다. 남자 줄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알고 보니 이유가 있었다. 오전 침수행사는 끝이 났고 오후는 2시부터 시작한단다. 지금 시간은 12시를 조금 넘기고 있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우선 점심이나 먹고 오후 일정을 얘기하자며 가까운 식당을 찾아갔다. 비는 계속 내리고, 성지 정문을 나오니 조금 건너편에 피자집이 하나 보여 딸애가 그리로 가잔다. 물론 ‘기사 가이드’도 함께 하였는데 여기에서 서울과 다른 음식문화를 느낀 게 있어 적어 본다. 한국에는 맛집에 들어가면 각자 식성에 맞는 메뉴를 주문해도 테이블 위에 나오면 서로 조금씩 들어 주며 맛을 보라하고 서로 자기 것이 맛있다고 깔깔거리는데, 아니 우리 가족도 파리 식당이나 호텔에 가서도 빵 맛이 좋으면 나누어 먹여보곤 하는데, 피자 한 판을 시킨 기사 가이드는 옆 사람에게 한 점 먹어보라는 말도 없이 게 눈 감추듯 순식간에 쟁반을 비워 버린다.

점심을 하고 오후 일정을 바꾸기로 했다. 침수체험은 내일 오후로 하고 오늘은 벨라뎃다(베르나데다 한국식 발음-실제 한국에는 세례명이 ‘벨라뎃다’라는 가톨릭 신자가 많다) 유적지를 보고 호텔로 가기로 했다.

먼저 찾은 곳은 제법 규모가 큰 벨라뎃다 기념관이다. 1850년대 루르드 사람들의 생활하는 사진과 그녀의 일생이 기록된 문헌을 위주로 하여 전시되어 있다. 부모의 사진이며 같은 집에 살았던 다른 가족들의 사진도 전시되고 기적의 샘물 형상도 만들어 한 코너를 채우고 있다.

다음 찾은 곳은 그녀가 태어난 집이다. 빗속을 뚫고 찾아갔더니 우리 앞에 중국서 온 단체순례객이 입구를 막고 또 지체를 면할 수가 없게 됐다. 필자가 일행이 세 명이라며 안내원에게 손가락을 펴 보이며 양해를 구하니 허락을 해준다. 2층 규모로 되어있다. 목조건물로 백년도 더 지나 일부는 개조했을 것으로 보인다. 두 개의 방중 하나에 ‘벨라뎃다’가 태어난 방이라는 안내가 있다.

그녀는 1844년 1월 7일에 태어나고 1월 9일 부모님 결혼기념일에 세례를 받았단다. 다른 방에는 방앗간 가족의 삶, 그들이 보냈던 축제와 장례식 같은 생활 장면과 일하고 기도하는 일상의 장면도 보여주고 있다. 물레방아는 ‘라빠가’의 개울물을 이용하여 돌 멧돌을 돌려 제분을 했다고 한다. 당시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돌 맷돌과 곡물을 밀어 넣는 시설이 당시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다음 찾아간 곳은 ‘벨라뎃다’의 일생을 다룬 밀납 인형 집이다. 필자가 보기엔 기념관이나 물레방앗간처럼 성당에서 관리하는 곳이 아니라 사설 시설물 같았다. 자그마한 우리나라 5층 아파트 같은 곳을 개조하여, ‘밀납 인형관’으로 만든 곳, 해서 입장료도 받았다.

5층까지 구석구석에 인형들을 배치했다. ‘벨라뎃다’의 어린 시절과 죽은모습도 그대로 밀납으로 재현해 놓았다. 마리아가 발현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모습이며 예수가 십자가에 메어 죽어가는 모습, 열두제자와 마지막 만찬을 하는 ‘최후의 만찬’까지도 세세하게 재현되어 있다.

실제 ‘벨라뎃다’는 죽어서도 시신이 부패 되지 않아 이것 또한 기적의 이적으로 기록되고 있는데 이 모습은 지금 수도원에 안치되어있는 ‘벨라뎃다’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란다. 파리 6구에 가면 ‘기적의 메달 성당’이 있다. 그곳에서도 성모가 발현하였는데 그 모습을 본 ‘가타리나 라부레’ 수녀도 시신이 부패 되지 않아 지금도 그 성당에 안치되어있다. 필자도 몇 번이나 가서 친견했는데 피부가 밀랍처럼 고와 도로 밀납 인형 같다는 표현을 쓰고 싶을 정도였다.

오후 일정이 모두 끝났다. 우리는 알랭의 택시를 다시 탔다. 예약된 호텔을 찾아간다. 이제 비는 오락가락, 그 기세도 힘을 잃은 듯하다. 호텔에 가는데 아침에 돌아 나온 루르드 공항이 다시 나타난다. 알고 보니 공항을 사이에 두고 우측엔 성지가 있고 좌측엔 루르드 도시가 자리하고 있었다. 루르드에서 성지까지는 약 1시간 정도 거리로 그 중간에 공항이 있었다.

호텔에 도착하니 시간이 이미 저녁 8시를 넘기고 있어 프랑스 낮 길이가 길기는 하지만 서둘러 인근 차이나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호텔로 와 샤워를 하고는 깊은 숙면에 빠졌다. 잠깐 눈을 떠봐도 아직 두 모녀는 눈에 들어오지를 않는 것으로 보아 어디에선가 아직도 와인 잔을 돌리고 있는가 보다.

다음날 조식을 하고 호텔 측에서 불러준 택시로 다시 성지로 갔다. 하늘은 상큼했다. 카메라 줌을 마음껏 당겼다 밀었다 했다. 독수리 성당을 아래위로 훑고 다니며 그 엄청난 규모에 입을 다물지 못하다가 다시 어제 비를 맞으며 들어갔던 기적의 샘물 곁으로 다가갔다. 오늘이 일요일이라서 그런지 날씨가 좋음에도 사람은 어제보다 좀 한가해 보인다.

다시 한 번 ‘아베마리아’를 부르며 동굴 바위를 쓰다듬고 성모 마리아상 앞에서 두 손을 모아 본다. 샘물로 오늘은 많이 나온다. 바위틈에서 나오는 석간수(石間水)라 어제 내린 많은 비의 영향으로도 보인다. 혹자들은 물속에 게르마늄의 성분이 많다고 하는데 그 말에 의미를 크게 둘 필요는 없어 보인다. 이번에는 미리 준비해간 작은 페트병으로 두 병이나 물을 받을 수가 있었다.

이 샘물을 마시거나 몸에 바르면 각종 질병이 없어진다고 했다. 해서 1862년 교회가 들어서고 1872년부터 순례자들이 모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현재는 한해 400만 명이나 되는 순례자들이 세계각지에서 찾아오고 이곳에서 7천명이 병을 고쳤고 그중 70명이 교황이 인정한 샘물의 기적으로 기록되어 있단다. 주위를 둘러보니 휠체어를 탄 사람들도 정말 많이 보인다. 진정 이곳이 ‘기적의 샘물’이 만든 세계 최고, 최대의 가톨릭 성지가 맞긴 맞는가 보다.

배가 부르도록 물맛을 느끼고는 침수현장으로 다시 같다. 12시가 조금 넘었는데 벌써 수많은 사람들이, 먼저 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침수 시작 시간은 오후 2시부터라니 시작 시간까지 아직 두 시간 가까이 더 기다려야 할 판이다. 그렇다고 대기 줄을 벗어나 나갔다 올 수도 없었다. 세계의 인구전시장 같은 각국의 사람들이 소원을 가지고 와 침수를 기다리는데 자리를 봐 달라는 부탁은 감히 생각도 못 할 분위기였기에 더욱. 그래도 시간은 갔다.

몇 명의 직원들이 필자는 못 알아듣는 소리로 안내를 하는 것 같았다. 다들 자원봉사자라고 했다. 나이가 많은 노인네부터 젊은이도 세계 각국에서 참여를 해주고 시간마다 미사를 집전해 주는 신부들도 각 교구에서 돌아가면서 순례차 와서 봉사를 해 준단다. 2시 10분 전, 신부가 나타나 우리 앞으로 오더니 미사를 집전한다. 4명의 신부가 더 미사를 집전했다. 프랑스, 에스파니아, 영어로 돌아가면서 기도를 했다. 이탈리아 말도 하는 것 같았다.

끝날 즈음 필자가 큰소리로 조수미의 아리아 흉내를 내며 ‘아베마리아~’를 노래했다. 앞에서 신부만 쳐다보며 대기하던 사람들이 깜짝이야 하듯 뒤돌아본다. 웬 동양인의 고성에 약간은 놀란 눈치이기도 하다. 굳게 닫혀있던 문이 열리고 젊은 봉사자들이 나와 침수례(沈水禮) 준비를 한다.

10명씩 커튼 안으로 사라진다. 필자의 위치가 200번 째도 넘어 커튼으로 사라지기도 힘이 든다. 상대적으로 더 궁금했다. 온갖 상상이 다 된다. 옆 사람은 다리를 떨고 있는 지가 오래됐다. 초조, 초조, 궁금, 궁금, 그래도 커튼은 기어이 필자를 흡입해 버렸다. 안으로 들어가니 이건 밖에서의 상황보다 더 못하다. 6개의 방에 여기서도 커튼이 쳐져 있다. 이곳 앞에서 1차 커튼을 통과한 사람들이 20여 명 정도가 여기서도 긴 의자에 앉아 있었다. 멍하게 커튼을 응시하고... 안내자의 설명을 들으니 한 명이 나오면 한 명이 들어가게 된다고 했다.

겨우 내 순서가 되어 2차 커튼 속으로 들어갔다.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여긴 더하다. 1인용 의자가 마주보고 4개씩, 8개가 놓여있었고 옆에는 3차 커튼이 쳐져 있었다. 다들 발가벗고 팬티 차림으로 앉아 있었다. 다리를 떨던 아랍 친구도 내 먼저 들어와 앞 의자에서 다리를 떨고 있다. 커튼 안에선 “아이고” 하는 비명 소리가 ‘첨벙’거리는 물장구 소리와 같이 합하여 아예 합창을, 해 댄다. 필자도 옷을 벗어 뒤에 있는 못으로 밖은 옷걸이에 걸었다. 입은 옷이 너무 많아 겨우 다 벗었는데 다들 쳐다본다. 필자의 팬티가 그들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나? 다들 쫄쫄이 팬티를 입고 있었다.

필자는 답답하다며 항상 트렁크 종류만 입는데 내가 내려다봐도 우스웠다. 고무줄이 늘어나 곧 흘러내릴 형상이었다. 서로 민망한 웃음을 날리며 있던 중 필자는 너무 궁금하다는 듯이 진행자에 물었다. 안에서 나는 엄청난 비명 소리에, 너무 졸았기에 물이 많이 차가우냐고 하니, 아니, 쿨하냐? 핫하냐? 하니 쿨하단다. 웃고 말았지만 쿨이 단지 시원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기에는, 글쎄... 또 하나 더 물었다. 다들 머리카락이 말짱한 것 같아 머리까지 풍덩, 하느냐, 하니 목 까지만 담군단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트렁크 팬티까지 벗고 안경을 쓰고 들어가니 안경을 벗으란다. 벗으면 안 보인다며 우기며 필자는 끝까지 안경을 쓰고 들어갔다. 내부를 상세하게 보아야겠기에...

침례 시설은 일반 석조욕조와 같은 형식이었다. 폭은 1.5m 정도 길이는 2m정도로 로마시대 대리석 공동목욕탕으로 생각해도 될 것 같다. 스텐 난간이 한 쪽에 있고 화강석 계단 2개를 내려가면 목욕탕 바닥이 닿는 정도의 깊이로 되어 있다. 필자는 쫄아서 벌벌거리며 들어가니 아주, 팔 힘이 좋은 젊은 청년 둘이서 손과 팔을 잡고 이끌어 준다. 언어를 뭘 쓰느냐기에 영어만 좀 한댔으니 영어로 한참 설명을 하는 것 같았다. 유추하건데 심장병은 없느냐는 등 찬물에 갑자기 뛰어들면 문제없겠냐는 말로 들렸다.

필자는 겁이 났지만 오케이, 오케이, 하며 빨리 물에 뛰어 들고 싶다고 했다. 욕조 안쪽으로 오라며 양팔을 꽉 잡는다. 갑작스레 뒤로 넘어뜨려 풍덩 빠지는가 싶었는데 바로 오뚜기처럼 벌떡 일으켜 세운다. 끝났다는 사인을 준다. 필자는 “원모타임”을 외쳤다. 손가락을 펴 한 번 더 하겠다고 했다. 한번은 집사람을 위하여 또 한 번은 딸애를 위하여... ‘으아아~~~으아아~~~’ 두 번의 긴 비명을 남기고 필자는 ‘아베마리아’를 부르며 세 번째 커튼을 빠져나왔다.

옷을 입고 2번째 커튼을 나와 첫 번째 마지막 커튼을 빠져나오니 시간은 오후 4시가 넘어있었다. 밖에서 기다리는 모녀는 조급증에 죽을 맛이었다고 했다. 커튼 속으로 사라진 사람이 무려 40분 이상을 소식 두절 된 상태로 있었으니 말이다. 파리 가는 비행기가 오후 6시라 시간이 촉박하여 급히 공항으로 출발했지만 도착해서 보딩 절차를 밟고 보니 두 시간 연착이 된단다. 대충 점심 겸 저녁을 먹고 비행기에 올라타니 멀리 성지가 멀어져가는 것이 보인다.

비행기 엔진의 굉음에 섞여 ‘아베마리아’의 노래가 오랫동안 귀에 잠영되듯 차츰 차츰, 가라앉는다.

마리아 오 마리아 아베마리아
마리아 오 마리아 아베마리아
언제부터 우리는 서로를 애타게
찾아 헤매고 있었던 걸까
영원이라 부르는 시간을 넘어
이 순간 눈을 뜬 거야
어둠 속을 걸어도 언젠가는
운명처럼 만날 거라 믿었어
꿈은 아닐 거야 꼭 잡은
두 손을 놓지 않을 게
꽃이 피고 지는 것은 막을 수 없겠지만
사랑은 영원히 피어나기를 기도할래!
간절한 내 맘이 이 노래가
어딘가에 닿기를 두 손을 모아
마리아 오 마리아 아베마리아
마리아 오 마리아 아베마리아

도담 이상일 파리 특파원｜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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