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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옥임의 시詩산책 34회] 맥문동麥門冬

정옥임 시인l승인2019.09.18l수정2019.09.18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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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출처=네이버블로그 ‘자스민차향기’ 캡처

맥문동麥門冬

겨울이 동동 굴러오는데
가난한 사람들은 응달쯤으로 모여들었다
맹문이
무지렁이
코푸렁이
숙맥들은 끼리끼리 모여 숙어 지냈다
바람도 끼어들지 말라는 듯
꼭꼭 껴안고들 사는 동네
불빛이 돋기 시작했다
매미가 고래고래 우는 동안에만
풀무질 망치질 메질을 감쪽같이 해냈다
보랏빛 횃불들은 곤두서서
꺼질 기미라곤 없이 타오르고 있었다
불똥이 떨어지고 식은 자리마다
몇 섬이나 될까
갈맷빛 진주가 주렁주렁 달렸다
     -저자 오명현 시 [맥문동麥門冬] 전문-

첫 시집 <알몸으로 내리는 비>의 첫 장을 열자 단 여덟 줄의 시인의 말 중에서 ‘서툰 솜씨지만 감히 집 한 채 짓는다 /아무리 치장을 해도 /내 그림자가 드러나고 /속내까지도 드러날 것이다 /시가 입주한 집이지만 /사실은 내가 사는 집인 탓이다 /첫 詩의 집이다.’

이 짧은 글에서 이 세상 모든 시인의 마음, 시를 보살피는 마음,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깃들여 있음을 단박 알아차리고 한권의 시를 몽땅 다 먹어버리기로 마음먹었다.

첫 낱말 서툰 이라는 단어, 이것은 인간이면 누가 일러주지 않아도 사람마다 스스로 서툴다는 걸 안다. 아니 알아야 한다. 완벽을 흉내 내고 신이 되려는 광대도 있긴 하다. 그런 사람은 얼마나 냉정하고 차가울까! 얼마나 외로울까!

어제 칼럼니스트 윤상길 선생님의 글을 읽었다. 연극을 보고 쓰신 글, 서툰 살인이라는 제목을 붙인 글이었다. 한 편의 영화나 연극을 보면 내가 알고 있는 그 만한 사람의 인생 전반을 꿰뚫어 보여주는 것 같아 한편의 소설을 읽고 난 느낌이 들곤 한다.

글에서 동사 서툴다, 형용사 서툰, 명사 서툶. 사람은 서툴기 때문에 실수를 저지르고 살인도 결국 큰 실수로 저지른 서툰 행동이다. 돌아서면 후회하는. 나는 첫 단어를 서툰 솜씨란 말로 시작. 시인의 인생 전반의 고백 같은 말머리도 놀라웠지만 <맥문동> 시를 발견하고 또 놀랐다. 맥문동은 화려한 꽃이 아니고 조잘조잘 핀 꽃. 숙맥들이 모인 자리. 결코 구질하지 않은 맹랑한 좋은 시를 읽고 하루가 즐거웠다.

정옥임 시인|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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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옥임 시인
1996년 ‘문학21’로 등단, 황진이문학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현대시 영문번역에 남다른 열정을 쏟아온 시인은 ‘시 읽는 사회를 위하여 나는 시를 읽고 시를 쓴다’ 등 시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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