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정노천 기자] 영화 ‘말모이’를 떠올리면 갑자기 ‘닭모이’가 생각나는 것은 언어의 펀이겠지. 어쩌면 ‘닭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이 온다’는 그 무의식의 간섭이 깔려있는 것인지 닭과 연계가 되는 게 우습다.

그렇다고 웃어야할 이야기가 전연 아니다.

딸들이 영화표를 예매해서 가족 4명이 함께 본 영화다. 영화는 일제가 한국을 강점한 ‘대한암흑기’에 살아가는 인간 군상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우리말 사용이 금지된 1940년대 경성, 까막눈 판수(유해진)가 조선어학회 대표 정환(윤계상)을 만나 ‘말모이’라는 사전을 만들기 위해 비밀리에 전국의 우리말과 마음까지 모으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 <말모이>가 전 세대에 걸쳐 호평을 받았다고 본다.

글을 모르는 무지랭이라면 그냥 자신의 의지를 죽이고 엎치락뒤치락 하루하루 살아가면 될 것이다. 하지만 의식을 가진 인간이라면 어떠한 억압이 주어지는지 그 무게를 직접적으로 느끼고 저항 없이 온전한 정신으로 삶을 영위할 수 없을 것이다.

길거리에서 사는 밑바닥 인생으로 나앉은 군상들은 절망의 강도가 덜 할 것이다. 그날그날 생을 연장하는 희망을 갖지 못한 자들의 삶에서부터 해외 유학까지 다녀온 지식인들. 그리고 사업가들이나 직업인들까지 살아가는 각자의 삶의 방식들이 갖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사업을 운영하는 이는 그 사업을 살려가기 위해선 강점한 일제에 빌붙어야 하고 30년 이상이나 강점 속에서 광복은 꿈도 못 꾸고 아예 내선일체에 젖어버린 사람들의 체념의식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지식인이라고 상징되는 사람들은 꽥소리 한 번 지르지 못하고 몰래 숨어서 살아야하는 것. 자기의 철학이나 의지대로 살지 못하는 지식인들의 좌절감이 얼마나 큰지 나라의 주권을 뺏겨본 사람만이 실감할 것이다. 실제 주권을 뺏긴 국민들은 자기 의사대로 주도적인 삶을 살 수 있었던가. 전부 노예일 뿐이었다.

하루의 삶을 연장하기 위한 생존의 삶에서 인생의 목적성보다는 수단적인 삶이 그 시대 삶의 주류가 돼버린 것이 참 안타깝다.

좀 더 인간의 본질적이고 가치적인 것을 추구하고 자유의지를 누리는데 삶을 투자해야 하는데 그 당시엔 그 목적성을 잃고 그걸 수집하고 지키는 수단적인 인생으로 전락했고 이를 위해 소위 지식인이라는 위인들이 몰두하고 있었으니 그를 안타깝게 여기는 점이다.

당시 조국의 미래는 암울하지만 몇몇 지식인들은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한글사전 ‘말모이’를 만든 그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무지랭이 건달이 그들과 함께하면서 글을 깨치고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을 공감하고 민족정신을 갖게 되는 성장이 영화의 중심축을 이르고 있다

역사를 모르는 삶은 짐승의 삶이다.

오랜 역사적인 학습에서 나약해져버리고 나만의 생존 방어기제로 변해버린 우리의 삶. 나만 살고 도망치던 삶에서 다시 ‘우리’라는 의미와 그 가치를 짚어본 것이 이 영화의 대단한 영화적 성과라 할 수 있겠다. 특히 말은 글과 우리의 정신을 담는 그릇이다.

개인적인 성향이 강한 요즘 젊은이인 우리 집 아이들이 입에서 나온 말이 나에게 위안이 됐다. 영화 속에서 변절한 친일 문인들에게 똥물을 투여한 시인의 행동에 동질감을 갖고 이해한다고 했다. 그 시인의 행동을 보고 아빠를 생각했다고 말해주는 데 대해 영화가 주는 영향력에 대해 높이 생각했다.

그리고 자기 가족만 생각해 동료들을 위험에 빠트린 그 한글잡지 기자의 배신에 대해서는 연민보다는 얄밉다는 표현을 할 정도였으니 굳이 내가 애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답을 강요할 필요 없이 아이들이 스스로 균형감각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되면서 아직도 이 나라는 희망이 있구나하는 안도감을 갖는다.

특히 나라를 뺏긴 후에는 지식인에겐 가혹한 비애다.

주권을 뺏긴 나라에서 말과 글을 뺏기고 자기 자유의지대로 살아 갈 수 없는 지식인들에겐 엄청난 억압이 아닐 수 없다. 그게 죽음이다.

‘한국암흑기’에 폐병장이 이상 시인이 화류계의 여자랑 기이한 섹스행각을 벌이는 그의 행각에서 그 동질성의 절망감을 읽는다. 토리노에서 말 대가리를 껴안고 울먹이던 니체에게서도 그런 슬픔을 맛본다.

정노천 기자｜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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