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전미야 작가] 한번 다녀가라는 K의 말에 이러저런 핑계를 들어 미루기만 하던 그동안과는 달리 선뜻 그러마고 했다. 막상 그쯤 대답하고 나자 더 이상 망설일 이유도 없어져 청바지차림에 간단히 꾸린 캐리어만 달랑 끌고 집을 나섰다. 그래도 오후에야 한 출발이어서 서울에 도착하고 보니 밤 아홉 시가 훨씬 넘은 시각이었다.

차를 가지고 마중을 나온 K는 나를 태우고 다시 경기도 광주로 향했는데, 가는 도중 보여줄 곳이 있다고 하더니 방향을 틀어 한적한 길로 들어섰다. 엉뚱한 구석이 있어서 만나면 사람을 곧잘 긴장시키곤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차가 멈춘 곳은 뜻밖에도 ‘청남 영생관리소’라는 곳이었다. 말이 영생관리소지 화장터가 아닌가. 낮도 아닌 밤 열 시가 넘은 시각에 그런 곳을 찾은 것이다.

그러나, 황당해하고 얼굴빛조차 펴지 못하는 나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K는 유들유들 웃으며 자살로 생을 마감한 최진실이 여기 와서 화장됐고, 그 밖의 유명한 사람들이 그렇게 한 줌 재가 되었다며 몇몇 이름들을 열거하는 것이었다. 가끔씩 이곳을 찾고, 자기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이곳을 보여준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엉뚱한 구석이 있어도 그렇지 이 무슨 악취미인가? 세상에 널리고 널린 게 예쁘고 아름다운 것들인데 하필 화장터를 구경시키다니. 하지만 뜨악해하는 내게 K는 여유로운 표정인 채 여기 오면 자신이 보인다고 했다. 그러니까 삶을 느끼고 살아 있음을 확인하기 위함이라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야 비로소 뭔가 수긍이 가며 고개가 끄덕여졌다.

죽음이라는 것. 그것은 삶의 일부이고 삶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 아닌가. 그렇다. 삶의 또 다른 면이 바로 그 죽음이고, 그 죽음은 또한 늘 우리 곁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개념적으로 서로 대척점에 있는 것을 통해 어떤 현상을 인지한다. 그러니까 살아 있음을 통해 죽음을 보고 죽음을 통해 살아 있음을 보게 되는 것이다. 사람은 그림자나 물에 비치는 모습 등 다른 것을 통하지 않고는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그리하여 만들어진 게 거울이다.

거울이나 사진을 통해서만 사람들은 제 얼굴을 볼 수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물리적인 겉모습에 한정된다. 그러니까 그와 같은 이치에서 내면의 어떤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대척 개념에 비춰봐야 하는 것인데, 그렇다면 살아 있음을 보기 위해서는 죽음을 보아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가. 그리고 그 죽음을 통해서 비로소 삶을 느낄 수가 있는 것이고 말이다.

‘나’를 보기 위해 자주 그곳을 찾는다는 K의 말. 다소 엉뚱하긴 해도 전혀 허술하지 않다. 산다는 것은 늘 죽음과 함께인지도 모른다. 새삼 돌아보니 K는 그저 잠잠한 모습이다. 그러면서도 입가에 엷은 웃음이 물려 있는 것도 같다. 문득 살갗을 스쳐 지나는 바람소리가 깊다.

그림=김태원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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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야 작가는
한국문인협회, 국제펜클럽, 한국소설가협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문학예술의 다재다능한 작가로서 시, 수필, 소설 등을 집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