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전미야 작가] 다시 한 번 읽고 싶은 마음에 서가에서 아주 오래된 책을 한 권 뽑아들었다. 그러면서 어림 헤아려 보니 읽은 지가 얼추 40여 년이나 되는 책이다. 그런데 책을 케이스에서 꺼내는데 모서리가 다 낡아서 바스러져 떨어져 나가는 것이 아닌가?

서가의 한 구석을 차지한 채 그 자리만 지키고 있었는데도 그랬다. 이걸 어찌해야 하나 하다가 그냥 놔두면 안 될 것 같아 아예 수선을 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집안 구석구석을 뒤져 비슷한 색깔의 좀 두껍고도 질긴 종이를 찾아내고, 풀, 가위, 자, 도배용 칼 등을 준비했다.

닫힌 창의 창유리로 볕이 눈부시게 쏟아져 들어오는 겨울의 하오. 그 묘한 적막의 시간 속에서 거실 한쪽에 그것들을 늘어놓고는 자로 재고, 긋고, 재단하여 풀칠해 붙이고 하다 보니 왠지 심오한 기분마저 든다.

한창 그러고 있는데 그 묘한 적막을 깨듯 전화벨이 울린다. 지인으로부터의 전화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던 끝에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자 그가 대뜸 말하는 것이 아닌가.

뭐 하러 그런 궁상을 떨고 있어? 요즘 새로 번역되고, 활자도 크고, 읽기 좋게 나온 책들이 얼마나 많은데. 미처 예상하지도 못했던 그 뜻밖의 말. 전화를 끊고 났는데도 궁상을 떠느냐는 그 말이 한참 동안이나 귀에 남는다.

한껏 자랑삼아 한 이야기에 그런 반응이다 보니 괜히 풀이 죽는 느낌이고 손놀림도 둔해졌지만 하던 작업을 계속해나간다. 예전에 읽었던 작품을 다시 읽고 싶으면 요즘에 나오는 책을 새로 사서 읽는다는 얘기도 더러 듣기는 했다.

요즈음은 옛날처럼 책이 귀한 대접을 받지 못한다. 예전에는 책들을 물려주고, 장서가들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학교나 도서관 등에 기증하고, 그러는 게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자리를 잡아 내려오기도 했었다. 하지만, 요즘은 어디 그런가. 수집가들이나 원할 만한 희귀본이거나 특별한 가치를 지니지 않은 이상 일반 책들은 그저 폐품으로 취급될 뿐이다.

지금 내가 애지중지 아끼는 책들이라고 다를 리 없다. 내가 세상을 떠나고 나면 이것들 역시 폐품으로나 처리될 건 뻔하다. 그렇지만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나의 지난 시간들이 담겨져 있는 이것들을 헐어지면 수선하고, 그렇게 지난 시간들을 복원해 가며 함께하고 싶은 것이다.

남들 보기에는 그게 궁상을 떠는 것일지 몰라도 예전에 읽었던 그 책들을 읽노라면 아련한 옛 꿈에 다시 잠길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한껏 기운 채 창문으로 비쳐 들어와 거실 바닥에서 반사되는 햇빛이 언뜻 눈 시리다.

그림=김태원 화가
전미야 작가｜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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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야 작가는
한국문인협회, 국제펜클럽, 한국소설가협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문학예술의 다재다능한 작가로서 시, 수필, 소설 등을 집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