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늑대

야성을 잃은 지 오래, 
대낮은 두려워 커튼으로 빛을 가리지
어둠이 짙어오면 취기 채우러 밖으로 나가서
송곳니 빠진 늑대들과 무리지어 어슬렁대다가
알코올을 적시는 골목에서
서로 잘났다고 아우우 웅~
지난밤 젊은 여우에게 홀린 늑대는 두 귀 쫑긋 세우고 
불콰해진 코를 만지면서 코맹맹이 소리를 내고
얼마 전 늙은 마누라 여우에게 쫓겨나 노숙자가 된 늑대
훌쩍훌쩍, 이 방 저 방 드나들어도 서방늑대가 제일이라며
얼마나 버티는지 두고 보자, 완샷! 완샷!
왕년에 잘나가지 못한 늑대 어디 있다고,
명문대 졸업 후 아파트 경비원으로
고시텔에서 숨어 산다는 허우대 멀쩡한 늑대, 아직도
예쁜 여우와 팔짱끼고 노래방에 가는 게 소원이라며 와우~~

퇴직연금 꼬박꼬박 챙기는 갈고리 여우에게
밥 한 끼 제대로 얻어먹지 못하는 구박덩어리 늑대
새벽까지 골목을 헤매며 커엉~컹, 컹 컹 짖어대도
늘 배가 고파 서울의 빌딩 숲에서
길 잃은 늑대들이 숨을 곳이 없다는 건 슬픈 일이야
반 쯤 잘려나가 축 처진 꼬랑지 치켜세우고
턱을 높이 쳐들어 보며
기울어가는 달에게 하울링을 해 봐도
허기는 채워지지 않아 낮에는 잠만 자곤 해
이른 새벽까지 어슬렁 골목을 헤매다 
불 꺼진 창으로 새어들고 있는 달빛을 따라
목줄 없이 끌려가는 곳은
늙은 여우가 잠자고 있는 구석진 그늘
      -한상림 시인의 시 [서울 늑대] 전문-

[생각 하나]
서울에도 늑대들이 우글거리다니! 결국 늙은 늑대들의 양상은 시적 늑대로 변용된다. 무성한 수풀 속에서 젊은 날 고고함을 지키던 늑대들은 세월이 가면서 제 삶의 방편으로 삶았던 삶의 방식들에게서 다시 공격 받는다. 세월이 가고 늙어지고 재화를 발생 시키지 못하면서 생은 대우받지 못하고 효용가치가 급락하면서 물량화되고 말았다. 또 젊은 늑대들에게 삶의 방편으로 희생되고 있다.

늙은 늑대는 서울을 헤매고 있다. 그런 늑대들이 양산되는 시대가 됐다. 세상을 바꾼다고 억지스럽게 까다로운 조건을 제시해서 오히려 역효과를 내면서 서민들을 더 궁지에 몰아넣는 꼴이 되고 말았으니. 퇴직 후 임시직이나 들어가서 일할 기회마저 더 좁아져버린 세상이 만들어낸 시대상.

서울에는 득실대는 늑대들이 늘고 있다. 자본의 그늘에서 인간의 존엄성은 사라져버렸다. 개, 돼지보다 못하게 물질화되고 말았다. 참으로 슬픈 일이다. 생명의 존엄성을 끌어 올리지 못하는 사회, 서울천지엔 늑대들만 득실 되겠지.

저자 한상림 시인은 강동구 부녀회장을 맡아서 열심히 사회활동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서 그의 눈에 붙잡힌 사람들 그중에서도 현역에서 벗어난 남자들의 비루해진 양상을 보고 읊은 시라고 한다. 누가, 무엇이 이 시대의 늑대들을 양산하고 또 바깥으로 내 몰았는지 안타까운 기조가 깔린 시이다.

시(詩)를 만지다 보러가기➧시를 만지다

골프타임즈｜master@thegolftimes.co.kr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