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필, 김영삼에게 골프 권해...김종필의 내각제 외면하고 김영삼 1992년 민자당의 대선 후보가 되어 대통령 당선

[골프타임즈=안문석 작가] 김영삼이 대통령이 된 것은 1990년 1월 22일 3당 합당 덕이었다. 당시 여당인 민주정의당과 야당인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이 하나의 당이 되어 민주자유당을 만들어 김영삼이 대표가 되었다. 그 바람에 1992년 여당의 대선후보가 되었고, 대선에서 이겼다.

당시 합당은 민정당 총재였던 대통령 노태우와 민주당 총재 김영삼, 공화당 총재 김종필의 이해가 맞아떨어져 이루어질 수 있었다. 민정당은 1988년 13대 총선에서 크게 졌다. 원내 의석 299석 중 125석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 5공 청산에 대한 국민의 열망이 높아 특히 호남에서 전멸한 탓이었다. 대통령이 된지 얼마 안 된 노태우로서는 살 길을 마련해야 했다. 평민당에 합당을 제안했다. 5·18 문제 해결에 대한 전권을 주겠다고 했다. 호남 민심을 얻고, 국회 과반수도 채울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김대중은 답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합당의 파트너를 민주당과 공화당으로 옮겼다.

민주당은 13대 총선에서 득표율 2위를 기록했지만 원내 의석은 59석에 그쳐 원내 70석의 평화민주당에도 밀리고 있었다. 김영삼은 이런 구도로 가다가는 대선에서 평화민주당 총재 김대중에게 패할 것을 염려했다. 그래서 여당의 합당 제의에 응해 합당 논의를 하게 되었다. 공화당도 총선에서 35석에 그쳤다. 충청 27석 가운데 15석밖에 얻지 못했다. 김종필은 그 상태로는 대권의 꿈을 꾸기는 어렵다고 보고 내각제를 기대하고 합당 논의에 참여했다.

그래서 1989년 합당 논의가 본격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김영삼과 김종필은 골프 회동을 네 번 했다. 당시만 해도 김영삼은 골프를 쳤다. 당시 자료 화면을 보니 김영삼과 김종필이 골프 시작 전에 기자들을 만났는데, 김영삼이 이런 이야기를 한다.

“나는 좋으면 앉는 습관이 있는데 오늘은 절대 안 앉을 겁니다. 퍼터도 너무 좋은 퍼터 들어가면 앉습니다.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요.”

여기에 김종필이 맞장구를 친다.

“프로들도 그런 사람 있습니다. 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좋아서.”

이러고는 골프를 했다. 그렇게 네 차례나 만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정과 소신’으로 합당을 추진해나간다는 합의가 이루어져 결국 합당까지 하게 되었다. 두 사람은 이력이나 생각 어느 것 하나 비슷한 것이 없는 이질적인 존재였다. 하지만 만나고, 골프하고,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합당까지 하게 된 것이다. 당시의 핵심 쟁점이 내각제였다. 김종필은 내각제를 하자고 했다. 김영삼은 물론 하기 싫어했다. 이런 문제에 대한 해결 방법도 골프를 하는 과정에서 일부 찾은 것으로 보인다.

젊은 시절 김영삼에게 골프를 처음 권한 사람이 김종필이다. 외무위원회에서 함께 활동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김종필이 권해서 시작했다. 그래서 김영삼은 김종필처럼 양손에 장갑을 끼고 골프를 했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오른손에 끼는 골프장갑을 구하기 힘들었다. 김종필이 일본에 가면 양손 골프장갑을 몇 켤레 사서 김영삼에게 보내주곤 했다. 김영삼이 골프를 끊은 것도 엉덩방아를 찧은 김종필과의 골프 때문이다.

그런 골프 회동의 과정을 통해 생긴 민자당은 1990년 5월 9일 첫 전당대회를 갖고 공식 출범했다. 전당대회 직전에는 내각제를 하기로 각서까지 썼다. 노태우, 김영삼, 김종필 3인이 서명한 합의문이었다. 하지만 김영삼은 이걸 지킬 의사가 없었다. 전당대회가 있은 지 한 달 남짓 지나 김영삼은 정무1장관 박철언을 불러 “나하고 당신, 노 대통령이 힘을 합하면 못할 일이 없다”라며 대선에서 자신을 밀어주면 그다음은 박철언 차례라고 언급했다.

내각제 각서 지키지 말자는 이야기였다. 1990년 10월에는 내각제 각서가 중앙일보를 통해서 공개되었다. 김영삼은 이를 공작 정치로 몰아붙이며 야당으로 돌아갈 듯 협박했다. 노태우는 여기에 굴복해 내각제를 포기하기로 했다. 그런 과정을 거쳐 김영삼은 1992년 민자당의 대선 후보가 되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끼리끼리 모여서 패거리를 만들어 정치를 하는 모습은 어느 나라에서나 볼 수 있지만 우리나라가 유독 심하다. 구파, 신파 등 일반적인 용어로 계파가 나뉘다가 진산(유진산)계, 운경(이재형)계 등 보스들의 호를 따서 나누어졌다. 그러다가 동교동계 상도동계 등 보스들이 사는 지역 이름을 쓰기도 했다.

이제는 친박계, 친노계, 비박계, 비노계 등 보스의 성으로 계파를 나누고 있다. 과거 일본이 그런 식이었다. 후쿠다파, 다나카파, 나카소네파 등 보스의 성을 따라 파벌이 생겼다. 하지만 그것도 2000년대 초 고이즈미 총리의 등장 이후 사라졌다. 우리만 여전히 후진적이고 퇴행적인 정치 행태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사회 전체의 수준을 전혀 따라가지 못하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이기도 하다.

이런 계파들은 과거 요정에서 어울렸다. ‘요정정치’다. 하지만 요즈음에는 골프장에서 모인다. ‘골프정치’다. 사업하는 사람들도 골프장에서 만나 친목을 다지기도 하고 중요한 거래를 성시키기도 하는데, 정치도 골프장에서 하는 부분이 많은 것이다. 골프를 하면서 친목을 다지고, 이해의 접점을 넓히고, 결속을 다진다. 중요한 결정도 여기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누구를 어느 자리에 앉힐지, 주요 이슈에 대해서 어떤 입장을 취할지 등이 비공식적인 골프모임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비공식 모임의 공식화가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공식적인 의사 결정 체계는 무력화된다. 토론이 없어진다. 토론에 참여하기보다는 골프 모임에 참여하려 한다. 이런 현상이 심화되면 결국 체계적인 여론 수렴, 체계적인 과정을 통한 정책 수립이라는 정당의 본래적 기능은 사라지게 된다.

안문석 작가｜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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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대통령과 골프에서 발췌, 저자 안문석 / 도서출판 인물과사상사 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