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없고, 자원 없고, 인재도 없는 신생 국가의 대통령으로서 미국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었던 이승만의 비애를 여실히 확인할 수 있어...

[골프타임즈=안문석 작가] 이승만은 골프를 치지는 않았다. 하지만 골프를 이용할 줄 알았다. 정부 수립 이후에도 미국의 입김은 강했다. 우리가 많은 경제 원조를 받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미군정이 끝나 미군은 철수하고 있었다. 해방 직후인 1945년 9월 8일 인천을 통해 들어온 주한미군은 3년 동안 남한 지역에서 군정을 실시했다. 당시 미군은 7만 명 정도였다. 1948년 8월 15일 이승만 정부가 수립되자 철수를 시작했다. 철수는 순차적으로 이루어져 1949년 6월말에 완료되었다. 이후 500명의 군사고문단만 남았다. 이 과정에서 이승만은 철수를 저지하려 했다. 우리의 군사력은 미약했고, 북한은 이미 정규군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북한은 일찍이 1946년 초에 ‘보안대대부’라는 이름으로 정규군 창설 작업을 본격화했고, 1946년 8월 15일에는 ‘보안간부훈련소’라는 명칭으로 사실상의 정규군을 갖추었다. 정규군이 아닌 것처럼 보이기 위해 이런 명칭들을 사용했는데, 실제로는 정규군이었고, 이러한 체계를 갖추는 데는 무정과 최용건, 김일, 강건 등의 활약이 있었다. 그러다가 정부 수립 7개월 전인 1948년 2월 8일 조선인민군을 공식적으로 창설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해 철수를 미뤄달라는 것이 이승만의 요청이었다.

이승만은 주한미군의 비위를 맞춰야 할 형편이었다. 정부가 수립되고 1년쯤 된 1949년 어느 날 이승만이 미군 장성들과 만나는 자리가 있었다.

“주말에는 주로 무얼 하세요?”

이승만이 물었다.

“골프를 합니다.”

“골프를 할 만한 곳은 있습니까?”

“없어서 비행기를 타고 일본까지 갔다옵니다.”

미군들은 골프장을 찾아 주말이면 일본 오키나와로 갔던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이승만은 미군 장교들이 주말에 한국을 떠나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했다. 우선 북한의 남침 가능성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미군 장교들이 자리를 비우면 유사시 대응 태세에 심각한 차질이 있을 것으로 보았다. 또한 주한미군의 주둔을 계속 요청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군 장교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생각했다. 자기 땅도 아니고 멀리까지 와서 남의 땅을 지켜주고 있는데 하고 싶은 것도 못하는 부처님 같은 생활을 강요할 수는 없었다. 미군뿐만 아니라 서울에 와 있던 선진국의 외교관들도 주말이면 일본으로 골프를 하러 갔다. 이승만은 이들이 달러를 일본에서 쓰는 것도 못마땅했다. 그래서 골프장 건설을 지시했다. 경기도 고양시 독도면 군자리에 있던 골프장이 복원되었다. 지금의 어린이대공원 자리다. 그게 1950년 5월, 한국전쟁 발발 한 달 전이다.

이승만은 그렇게 골프를 외교적 목적과 연관 지어 생각했다. 골프장을 지었다고 해서 미군이 철수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승만은 미군의 필요를 충족시켜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 힘없고, 자원 없고, 인재도 없는 신생 국가의 대통령으로서 거대 국가 미국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었던 이승만의 비애를 이런 대목에서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한국에 골프가 처음 들어온 것은 1900년이다. 원산만의 세관원이면서 황실의 고문이었던 영국인들이 원산의 세관 구역 내 유목산 중턱에 6홀 규모의 골프장을 만든 것이 처음이다. 이후 1911년에 한 일본인이 서울의 효창공원에 7홀짜리 골프장을 만들었다.

1924년에는 서울 근교 청량리에 18홀 규모의 경성골프장이 문을 열었다. 길이 4,000야드(3,657미터), 파70이었다. 군자리골프장은 1930년에 건설되었다. 고종의 아들 영친왕이 왕가의 땅 약 100만 제곱미터(30만 평)를 내놓아 만들어졌다. 길이 6,200야드(5,669미터), 파72의 제대로 된 골프장이었다.

영친왕은 한국인 최초의 골퍼였다. 1907년 11세 때 일본으로 끌려간 그는 일본에서 골프를 배웠다. 적적함을 달래기 위해 부인 이방자와 함께 골프를 했다. 그렇게 골프를 알았기 때문에 왕가의 땅을 골프장 부지로 내놓을 수 있었다. 1927년 스코틀랜드 여행 중, 한 골프장에서 안경을 낀 중절모 차림으로 무릎까지 올라오는 긴 양말을 신은 채 드라이버를 들고 있는 영친왕의 사진이 지금도 남아 있다. 영친왕의 희사로 건설된 군자리골프장이 제2차 세계대전 동안 폐허가 되었다가 이승만에 의해 1950년 5월 복원된 것이다.

군자리골프장이 복원된 지 한 달 만에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골프장은 다시 폐허가 되었다. 또 다시 복원된 것은 1954년. 역시 이승만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이때도 이승만은 미군들에게 놀이터를 제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골프장 복원을 명했다. 백두진, 손원일, 장기영, 이순용 등 17명이 중심이 되어 복원 사업을 진행했다.

그 중심은 이순용이었다. 이순용은 자기 집의 정원수까지 내놓고 금성방직 사장 김성곤, 동아상사 대표 이한원 등을 설득해 기부를 하도록 했다. 이순용은 원래 이승만이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할 때 함께 활동하던 인물이다. 해방 후 이승만과 함께 귀국해 내무장관, 체신부장관 등을 역임했고, 골프장 복원 사업에 나섰을 당시에는 외자청장을 하고 있었다. 미국에서 활동할 당시 이순용은 골프를 접했다. 그래서 골프장 복원에도 적극 나서게 되었다. 그의 노력으로 골프장은 그럴듯한 모습으로 개장을 했다. 이름은 서울CC. 서울CC는 미군 장교, 서울 주재 외교관, 한국군의 장성, 정부 관료 등의 사교장이 되었다.

서울CC는 5·16 쿠데타 직후 없어질 뻔했다. 국가재건최고회의가 사치 시설로 분류해 갈아엎어 콩밭으로 만들기로 한 것이다. 5·16 쿠데타의 주역인 육사 8기생들이 이런 의견을 냈다. 밭으로 만들어 소작농들에게 나누어 주자고 했다. 빈농 출신 박정희의 생각도 많이 담긴 조치였다. 같은 8기생이지만 김종필은 좀 다르게 생각했다. 이 결정을 할 때 김종필은 지방에 있었다. 서울에 올라와 이 소식을 듣고 김종필은 박정희를 찾아갔다. “자유 진영에 골프장 없는 국가는 없습니다. 서울CC는 한미 간의 친선을 다지는 데도 꼭 필요한 곳입니다” 하면서 존치를 주장했다. 상공인들이 사업을 하는 데 필요하다는 이유도 댔다. 그 결과 결국 골프장을 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비상시국에 골프를 치러 나가는 이들은 없었다. 김종필이 직접 나가 골프를 쳤다. 그때서야 상공인들도 하나둘 골프장을 출입했다.

1972년 서울CC가 이전했고 그 자리는 어린이대공원이 되었다. “어린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곳이 필요하다”는 박정희의 지시에 의한 것이었다. 일설에 의하면 부인 육영수가 “어린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곳이 필요해요”라는 말로 박정희를 계속 설득해 골프장을 어린이공원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군자리 인근이 개발되면서 대통령이 골프를 하기에는 경호상 불편한 점이 많아진 것도 서울CC가 없어진 하나의 원인이었다. 골프장 인근의 농민들이 낫, 곡괭이 같은 흉기를 가끔 골프장으로 던지는 일이 있었다. 쉼 없이 일을 해도 자식들 교육은커녕 먹고살기도 힘든 농민들은 넓은 땅을 한가롭게 걸으면서 골프채를 휘두르는 모습을 보면서 울화통을 터뜨리기도 했을 것이다. 고된 일 끝에 막걸리라도 한잔한 날은 무엇이든 던지고 싶기도 했을 법하다. 이에 박정희는 신변의 위협을 느꼈던 것 같다. 그런 여러 가지 이유로 서울CC는 결국 1964년부터 운영되던 경기도 고양의 한양CC와 합쳐져 서울·한양CC가 되었다.

이승만은 1958년 서울 용산의 미군 주둔지에 골프장을 짓는 것도 허용해줬다.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이 조지 데커George Decker였다. 핸디캡 3의 아마골프 고수였다. 수요일과 토요일은 꼭 골프를 하는 골프광이었다. 1957년 7월에 부임했는데, 이승만을 예방하기도 전에 서울CC 상공을 헬기를 타고 돌아볼 정도였다. 당시 국방장관이던 김정렬도 핸디캡 7의 역시 대단한 골퍼였다. 두 사람은 친근한 골프파트너로서 말이 잘 통했고, 한미 간의 주요 정책도 골프장에서 논의했다. 미군 부대에 골프장을 짓는 일이니 오죽 뜻이 잘 통했겠는가. 둘이서 합세해 이승만에게 강력 요청했다. 그래서 이승만은 남산에 있는 미군 사격장을 이전하고 그 자리에 한국군 아파트를 짓는 조건으로 골프장을 허가했다. 미8군 연병장 인근에 피난민 200여 가구가 사는 국유지가 있었는데, 여기에 골프장을 만들었다.

미군의 요구를 수용하는 형식이었지만, 이승만으로서도 싫지 않은 것이었다. 미군이 원하는 것은 웬만하면 들어주고, 대신 미군의 분명한 안보 공약을 얻고 싶은 것이 이승만의 본심이었다. 골프장을 허용해주고 미군의 서울 주둔을 분명하게 할 수 있다면 이승만으로서는 오히려 좋은 것이었다. 이승만의 이런 내심은 한국전쟁의 정전 상황을 되새겨보면 익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한국전쟁은 1년 정도 공방을 하다가 곧 휴전 협상에 들어갔다. 북한, 중국, 미국 모두 휴전을 원했다. 휴전선을 어디로 할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달랐지만 전쟁을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은 모두 하고 있었다. 그래서 휴전 협상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승만은 아니었다. ‘휴전은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 이번 기회에 북진통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시 휴전되면 북한의 위협에 끝없이 시달릴 것이 걱정되었다. 통일의 기회가 다시 오기 힘들다는 생각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 휴전에 반대했다. 미국이 설득했다.

이승만의 고집은 대단했다. 휴전을 하려면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해달라고 요구했다. 미국이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이승만은 1953년 6월 18일 인민군 포로 가운데 북한 귀환을 원치 않는 반공 포로 2만 7,000여 명을 전격 석방했다. 미국과 세계가 깜짝 놀랐다. ‘전쟁 포로의 대우에 관한 제네바협약’에 따르면 포로는 범죄를 저지른 경우가 아니면 휴전이나 종전 시 본국으로 돌려보내게 되어 있다. 그런데 이승만이 북한으로 돌려보내야 할 포로를 일방적으로 남한에 풀어줬으니 놀랄 만도 했다. 하는 수 없이 미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기로 하고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을 완료했다. 상호방위조약은 10월 1일 체결되었다. 약소국이 죽자하고 덤벼 강대국을 조종하는 ‘약자의 독재tyranny of the weak’였다.

물론 미국과 소련 간의 체제경쟁이 계속되면서 한국의 전략적 가치가 높아져 주한미군의 전략적 필요성은 높아졌다. 특히 지금의 상황에서는 미국과 중국의 경쟁과 갈등이 고조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은 주한미군을 계속 주둔시키고 싶어 한다. 하지만 한국전쟁을 마무리하는 상황에서 미국은 다시 한반도에 군대를 파견하는 것을 원치 않았고, 추후 전쟁에 다시 개입하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지 않으려 했다.

어쨌든 그렇게 억지춘향식으로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미군은 한국전쟁 이후에도 서울에 주둔하게 되었다. 이승만은 이들을 적절히 위무해야 했다. 용산에 골프장을 허가해주는 것은 이승만에게는 오히려 작은 것을 주고 큰 것을 얻는 격이었다. 이 골프장은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다가 1992년 서울 송파구의 성남코스로 자리를 옮겼다. 골프장이 떠난 자리는 가족공원이 되었다.

안문석 작가｜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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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대통령과 골프에서 발췌, 저자 안문석 / 도서출판 인물과사상사 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