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노경민 수필가] 전화 받고 온 사이 일어난 일이다.

저녁상에 오랜만에 비싼 굴비를 올려놓고 만찬을 즐길 참이었는데 전화가 울렸다. 모임 장소며 시간을 정하느라 잠깐 지체하며 통화를 마치고 돌아보니 굴비 살은 온데간데없이 앙상한 뼈만 남았다. 어찌나 알뜰히 발라먹었는지 몸통을 빗으로 써도 되겠다.

“얘! 말도 마라. 피자 시키면 가운데 토핑은 다 챙겨 먹고 가장자리 두툼한 빵 덩어리는 날 준다. 음식도 먹다가 다 못 먹으면 ‘음식 버리면 죄’라면서 나더러 먹으란다.”

어릴 적 할머니와 어머니가 귀한 자식이라고 그 입 먼저 넣어 주었더니 남편은 평생을 그리 살려고 한다. 아들을 저 따위로 키운 시어머니 탓을 했지. 나도 멍청했지. 그러면서 그렇게 따라주어야 잘 사는 줄 알고 내 입보다 먼저 챙겼으니, 그렇게 길이 든 것을 누구 탓을 하느냐고. 나한테 울화가 치민다.

연애할 때는 그래도 좋았다. 근사한 레스토랑에 가 칼질도 하며 장미꽃다발도 심심찮게 받아보았고, 생일이며 기념일도 잘 챙겨주었다. 어디 그뿐인가. 결혼하기도 전에 처가에 절한다고, 장모님께도 동생들에게도 선심이 후했다. 결혼하고 나더니 잡은 물고기에게 미끼 주는 거 봤냐며 오히려 당당하다.

“어이구, 말이나 말지. 모임에 가서는 배포 큰 남자는 저 하나지. 호기 좋게 명절 연휴에 해외여행 가자고 바람 잡아놓고선 집에 오더니 다른 말하는 거야. 명절에 어딜 가냐고, 부모님은 허쩌냐고 하면서 적반하장인 거야. 말을 말든가.”

‘아’ 다르고 ‘어’다르다고. 해외여행을 보내 달라는 것도 아니고, 더구나 명절에 떠난다는 건 생각조차도 없는데, 일은 벌여놓고 나 몰라라 하는 위인을 매번 겪고 사는 내 인생이 고달플 뿐이다.

남자라서 그런다고 자신을 달래보다가 갑질인 것 같아 허망해져 혼자 삐친다. 혼자 삐친들 남편이 알기나 하면 다행이다. 일주일을 아무 말 없어도 모른다. 불편하지도 않다. 아니 툭하면 삐진다고 ‘삐지기 대마왕’이라 놀리기까지 한다. 마누라가 왜 토라졌는지 원인을 알려 들지 않고 관심도 없다. 아니 그저 화해하자며 미안하다고 툭 던지는 말. 그리고 잠자리에서 마누라 기쁘게 해주는 자신감으로 넘어간다. 이제 그도 자신 없어지면 어찌할 건가.

나도 굴비 몸통 먹을 줄 알고 해외여행 다닐 만큼 근력도 있을 때 가고 싶다. 짜장면이 싫은 게 아니고 탕수육보다 더 맛 나는 요리도 잘 먹는다고.

노경민 수필가｜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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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민 수필가는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스마트폰 전자책문학 ‘파란풍경마을’ 시낭송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며, 간결한 문체의 정갈한 수필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