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김기은 소설가] 나는 신문 뭉치를 하나씩 들추며 큰 제목을 대충 훑고 버렸다.

‘환경의 역습, 중국의 모래사막이 올 봄 우리나라에 중금속 황사를 몰고 온다.’

‘일본의 독도 침탈 공세에 중국은 이어도 침탈 야욕’

‘북한 인권문제에는 침묵하는 국회, 선거용 선심거리 찾기에 급급’

굳이 더 읽고 싶지 않았다. 그것들이 나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침대에 누워 이어폰을 낀 채 핸드폰으로 라디오 음악방송을 듣다 잠이 들었다.

잠이 쏟아졌다.

사흘이 내리 잤다. 물론 잠깐씩 눈을 뜨긴 했지만 잤다가 깨고, 다시 또 자고 깼다. 먹지도 않고 화장실만 두세 번 갔다 오고는 사흘을 한 자리에 누워서 보낸 것이다. 고열에 시달리며 앓았던 것 같다. 몸에 열기가 아직도 남아있는 듯 했지만, 체온계가 없어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뒤숭숭하게 수도 없이 꿈을 꾸었던 거 같다. 자기 위해 눈을 감는 건지, 꿈을 꾸기 위해 눈을 감는 건지 모를 정도였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꿈을 꾸고 있는지, 생각하고 있는지, 상상하고 있는 건지, 현실인지 꿈인지, 막 헷갈렸다.

명확히 기억은 안 났지만 넓은 사막을 자주 보았던 거 같다.

다시 까무룩 잠이 들었다. 춤을 추고 있었다. 드레스 같기도 하고 현대식 한복 같기도 한 하얀 천에 하얀 수가 놓인 비단 옷을 입고, 맨발로 이사도락처럼 멋들어지고 우아하게 춤을 추었다. 어디선가 발라드 음악이 들렸다. ‘광대를 위한 슬픈 발라드’에 나오던 곡이다.

나는 유골 항아리를 안고 한 줌 한줌 유골을 꺼내 허공을 향해 뿌렸다. 매번 뿌릴 때마다 바람을 타고 날아간 유골이 어느 땐 나비가 되었다가 다시 모래 바람이 되어 모래사막 너머 저 멀리 있는 모래 언덕으로 밀려갔다. 마법 항아리처럼 골분이 끝도 없이 나왔다. 회오리 같은 바람이 불었다. 모래들이 회오리를 타고 일어섰다. 샌드맨이다. 모래인간이 나를 쫓아온다. 눈을 떴다. ‘꿈이네!’ 하고 다시 감았다.

또 사막이었다.

상복을 입은 오빠가 사막을 걸어오고 있었다. 굴건제복을 착용하고, 머리에 수질을 두르고 쓰고 허리에도 요질을 감았다. 짚신을 신고, 작지를 짚으며 타박타박 모래 위를 걷는다. 걸음에 맞춰 버드나무 작지가 모래를 푹푹 찍는다. 아라비아 상인 같다. 아니 사막 위의 방랑자 같다. 모래 색이 굴건 제복색이고, 굴건제복이 모래 색이다.

가까이 다가오는데 얼굴을 보니 굴건제복을 한 사람이 오빠가 아니라 나였다. 내가 나를 쫓아가며 바라보았다. 사막 모래가 뜨거웠다. 햇볕도 뜨겁다. 짚신을 신은 발이 모래 속으로 푹푹 빠져 걸을 수가 없었다. 털어내도 발가락에 자꾸 모래가 껴서 껄끄럽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태양이 작열했다. 목이 탔다. 나는 줄줄 흘러내리는 땀을 손바닥으로 연신 쓸어냈다. 태양이 몸 안에 남아 있는 수분을 탈수기처럼 모두 짜낼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것을 말려 모래가루로 만들어버릴 모양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내가 점점 바스러지며 모래가 되어 사막 위로 흘러내렸다. 손도 녹아부서지고 팔, 발, 다리, 몸... 안 돼!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렸다.

방랑자여 방랑자여 기타를 울려라
방랑자여 방랑자여 노래를 불러라
오늘은 비록 눈물어린 혼자의 길이지만
먼 훗날에 우리 다시 만나리라. 만나리다.

오빠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아니 자세히 보니 그 흰머리 아저씨였다. 아니 셰익스피어였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누구세요?”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

그가 영어로 말했다.

난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가 다시 기타를 치며 헌드레드 마일드를 멋지게 불렀다.

If you miss the train I'm on
You will know that I am gone
You can hear the whistle blow
A hundred miles, a hundred miles
A hundred miles, a hundred miles, a hundred miles
You can hear the whistle blow, a hundred miles

노래가 가슴에서 눈물을 만들어냈다. 눈물 때문에 내 몸이 젖어갔다. 모래처럼 부서지던 몸이 조금씩 다시 살아났다.나는 노래를 들으며 사막 위 언덕을 걸어 올라갔다. 모래에 발이 푹푹 빠지면서 몇 발자국 올라가고 나면 다시 주르르 미끄러져 내려왔다. 노래 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A hundred miles, a hundred miles, a hundred miles
나는 자꾸자꾸 울었다. <계속>

김기은 소설가｜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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