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노경민 수필가] 노인은 떠날 날이 언제인지 모른다고 했다.

살 만큼 살았다고 미리 마칠 수도 없고, 선택한다고 가능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누구나 죽는다. 때가 되면…

“내 나이 10살 때 일본놈들이 찾아다녀 항아리에 숨어 해방을 맞았다. 15살엔 전쟁을 치르면서 붉은 완장도 찼고, 17살에 결혼했지. 결혼하여 7년이 되도록 자식을 낳지 못해 시집살이가 여간 아니었지. 24살에 첫딸을 낳은 후 아들 낳고, 딸 낳고, 또 아들 낳고”

그렇게 30년을 살았다. 남편은 오십도 되기 전에 떠났고, 홀로 살아온 세월이 또 30년을 훌쩍 넘었다. 자식들의 제 앞가림 다 시켰더니 이젠 증손자까지 보았다. 손주들과 찾아보는 서대문형무소와 전쟁기념관은 세월을 돌려놓았다.

매일 목욕하며 이 세상 마지막 날처럼 정리한다. 섭섭함도, 억울함도 없고 모든 욕망이 사그라져 없다. 소중했던 시간은 사진첩 속에서 웃는다.

노인 한 명이 숨을 거두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더니, 풀려나오는 실타래는 아직 끝이 보이지 않는데 당신은 다 내려놓으셨단다.

노인의 말을 들으며, 미래의 내 시간은 어떤 모습일까? 지나온 시간은 또 어떻게 기억될까?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나는 무엇을 깨달았을까?

“영감이 떠난 지 얼마 안 되어 꿈에 나타나선 같이 가잔다. 여긴 너무 좋다고. 아직 결혼도 못 시킨 애들이 있는데 어찌 가느냐고 뿌리쳤지. 그 뒤론 아예 안 오시더라. 이젠 가자하면 따라가겠는데.”

낼모레가 칠월칠석이다. 은하수 건너 오작교에서 만나는 견우와 직녀 이야기를 좋아하신다는 노인. 그러나 남편을 만나는 날, 살아온 세월을 등불처럼 밝히고 마중 나가는 날은 비가 아니라 맑은 날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한 남자를 만나 온 세월을 살아오며 헤어짐은 만남이었고, 만남 또한 이별이었으니 다시 만나는 그날은 햇빛 가득한 날이어야 한다. 노인은 오늘도 소망이 하늘에 닿으라고 열심히 기도한단다.

나의 30년 후 모습은 어떨까?

나는 재회를 위한 어떤 기도를 할까?

노경민 수필가｜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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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민 수필가는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스마트폰 전자책문학 ‘파란풍경마을’ 시낭송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며, 간결한 문체의 정갈한 수필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