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국 4千字소설 제29화] 모녀 인생

엄마는 엄마 인생 살고, 난 내 인생 살자 정병국 작가l승인2018.07.12l수정2018.07.12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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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타임즈=정병국 작가] 딸의 원룸 문 앞에서 돌아섰다.

며칠째 통화를 거부하는데 불쑥 들어간다면 은아는 반대로 원룸을 나갈 것이 뻔했다. 독립하기 전 단둘이 살 때에도 다툼이 일어나면 집을 나갔다. 언제부터 가출로 충돌을 피했는지 정확하게 모르지만, 그것은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이틀 혹은 일주일 후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집으로 돌아와 밥을 챙겨 먹는 모습에 기가 찼지만, 또 나갈까 두려워 입을 다물곤 했다.

카페의 창가에 앉았다. 안에서는 원룸 건물의 출입문이 보였지만, 밖에서는 대형 화분에 가려 이쪽을 볼 수 없는 자리였다. 숨어서 은아를 기다리는 꼴에 피식 웃으며 소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원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아파트에 사는 친구가 금세 나타났다.

“또야?”

“그래. 전화도 안 받는다.”

“이번 전쟁은 뭔데? 너 남자 생겼니?”

“내가 아니라 은아다. 은아!”

소영은 은아에게 남자가 생겼다는 말에 모녀의 전쟁을 추리했다. 은아는 남자가 좋다. 마음에 든다. 그러나 너는 영 아니다. 삼십도 안 된 년이 뭐가 급하다고 말도 안 되는 놈과 연애질이냐고 쏴붙였다. 그러자 딸은 내 인생 내가 알아서 살 테니 신경 끊으라고 맞대응했다. 이미 품 안의 자식이 아닌 독립해 나간 딸년이니 당장 동거라도 할까 봐 전전긍긍하는 게 아니냐며 키득거렸다.

“넌 이 상황이 그렇게 재미있니? 난 속 터져 죽을 지경인데.”

“죽긴? 오히려 잘 된 거 아니니?”

이참에 너도 연애해라. 넌 이제 겨우 오십을 넘겼어. 그 소중한 제2의 인생을 딸년 연애 막는 거로 탕진할래? 억울하지도 않니? 이것아!

“그러니까 내 말은 이제 딸을 놓아줘. 품으려 하지 마.”

소영이의 잔소리를 귓등으로 흘리며 원룸 출입문을 지켜보다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원룸으로 들어가는 한 쌍의 남녀가 딸년으로 보여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밖으로 뛰쳐나가려는 순간 두 남녀가 되돌아 나왔다. 은아와 은아의 남자친구가 아니었다. 한순간 맥이 빠지면서 의자에 무너졌다.

은아가 대학교 이학년 때였다. 어느 날 남자친구를 집으로 데려왔다. 교제가 아닌 말 그대로 학교 친구이려니 스스럼없이 반겨주었다가 황당한 일을 겪었다. 몇 차례 집을 들락거리더니 남자아이가 결혼하고 싶다고 거리낌 없이 말했다. 은아가 한술 더 떴다. 곧 여름방학이니 그때 결혼식을 올린 후 신혼여행은 유럽 배낭여행으로 대체하자. 유럽을 돌아다니다가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거기에 아예 눌러 살자. 남자친구에게 헤살 거리며 말하더니 엄마는 당연히 찬성일 거라며 허리를 껴안았다.

그날 딸에게 처음 손찌검을 했다. 군밤 한 대 쥐어박은 적도 없었는데 뺨을 호되게 때렸다.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분노의 사건이었다. 은아는 너무도 놀란 나머지 멍하니 서 있다가 제방으로 들어갔고, 남자아이는 줄행랑을 쳤다. 그 후 은아는 가슴을 닫았다. 모녀라는 형식적인 핏줄 관계만 유지되다가 다시 옛날로 돌아간 것은 유방암 수술 덕이었다. 처음에는 엄마가 죽을지 모른다는 말에도 노려만 보더니 암 병동에 입원하자 눈물을 보였다. 퇴원 후 엄마의 식사를 챙기면서 무관심의 공격이 사라졌다.

은아가 룸으로 독립한 것은 취업 이듬해였다. 자립할 능력이 생겼으니 스스로 살아보겠다는 청을 받아들였다. 대학 이학년 때처럼 철부지 생각 같은 것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에 쾌히 승낙했다.

“정말, 나 독립해도 돼?”

“그럼! 왜 붙잡지 않으니까 서운하니?”

“서운하다기보다 기분 묘하네. 뭐랄까? 꼭 버려지는 느낌이야. 엄마!”

딸아이의 버려지는 느낌이란 말에 옛날을 떠올렸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만한 혼처가 없다며 맞선 본 그달에 결혼시켰다.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모르다가 정신 차라니 시댁이었다. 맞선 한 번으로 결혼한 신랑은 공사 현장에서 보내는 날이 태반이었다. 시부모 두 분도 지물포 일로 밤늦게 귀가했다. 한 살 터울의 고등학생 시동생과 시누이도 학원에서 밤 열 시가 넘어야 돌아왔다. 마당이 너른 큰 집에 온종일 혼자 있다가 신혼 방으로 들어와도 독수공방이었다.

결혼을 행복의 시작으로 알았던 가슴 설렘은 외로움부터 배웠다. 밖으로 마음 놓고 나돌아다닐 수 없는 시댁은 절해고도였다. 친정에서는 쫓아내듯이 시집보냈고, 시댁에서는 꿰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늘 혼자였다. 한 달에 한두 번 들어오는 신랑에게 투정조차 부릴 수 없어 아무도 모르게 울기만 했었다.

“은아야! 너 여자의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

그날 독립을 승낙하며 은아에게 묻고 대답해 준 말이 떠올라 쿡쿡 웃었다. 소영의 커피를 내 컵에다가 따르며 이번에는 한숨을 길게 토했다.

“뭐야? 그 웃음과 한숨은.”

의아한 표정의 소영 얼굴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의미였지만, 재차 물어 딸에게 했던 질문과 대답을 들려주자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면박했다.

“여자의 행복은 가족 속에 있다?”

소영은 그렇게 잘 아는 년이 딸의 교제를 감시하느냐며 원룸 건물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사람들의 출입이 뜸한 원룸 건물은 하얀색이었고 정면 벽에 커다란 걸개가 걸려 있었다. ‘한지붕의 45가족 사랑합시다!’ 걸개 표어를 소리 내어 읽은 소영은 컵을 들었다가 내려놓으며 물었다.

“계속 감시할 거니?”

대답 대신에 커피를 더 가져와 소영이의 컵에 반쯤 따라주었다.

“은아가 너 때문에 독립했다는 생각 안 해 봤어?”

“나 때문에?”

“그래. 너 재혼하라고 나갔다면 어떻게 할래?”

소영의 뚱딴지같은 말에 피식 웃었다. 언젠가 은아가 지나가는 말처럼 물은 적이 있었다. 엄마는 재혼할 생각 없어? 그때 한다, 안 한다고 가부간의 대답을 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두 번 다시 묻지 않았다. 나 역시 그 문제로 고민한 적이 없었다. 은아가 결혼하면 외손녀이든 외손자든 돌보면서 여생을 보낼 생각이었다. 녀석들이 성큼성큼 자라 시집 장가갈 때 많지 않은 재산이지만, 뚝뚝 떼어줄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런 내게 소영의 추측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은아가 그러더라. 엄마가 불쌍하다고.”

얼마 전에 네 딸이랑 저녁을 먹었다. 우연히 명동에서 마주쳤는데 저녁 사달라며 응석 부리더라. 얘가 무슨 할 이야기가 있나 싶어 눈에 띄는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산나물비빔밥을 주문하자마자 은아가 한숨부터 푹 쉬더라. 엄마 때문에 미치겠다고.

“걔가 정말 그렇게 말했어? 나 때문에 미치겠다고?”

“그뿐인 줄 알아? 은아가 말이야.”

말을 멈추고 밖으로 고개 돌리는 소영의 표정이 어둡게 변했다. 엄마가 불쌍하다면서 왜 미치겠다는 거지? 또 그뿐인 줄 아느냐며 무슨 말인가 하려다가 입을 다물자 불안했다. 소영은 말을 가리거나 감추는 성격이 아니었다. 앞뒤 생각 없이 쏟아놓아 자리를 민망하게 만들기 예사였다.

“그뿐 아니면 또 뭔데?”

소영은 팔짱 꼈다가 풀며 커피를 마셨다. 여전히 망설이는 눈치였다. 도대체 은아가 무슨 말을 했기에 소영이가 저러나 싶어 더욱 불안해졌다.

“은아가 말이야. 곧 한국을 떠날 모양이더라.”

“은아가 한국을 떠나?”

“그래. 그것도 순전히 너 때문에.”

은아가 나 때문에 외국으로 나간다? 헛웃음이 삐져나왔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비록 티격태격하는 모녀이지만, 오히려 그 반대의 행동을 할 딸이었다. 어느 나라에 살던 내가 부르면 모든 걸 버리고 돌아올 아이였다.

“말도 안 돼. 소영이 너 헛소리 할래? 주책없이.”

소영은 주책없는 거 인정해. 그러나 한 번 더 주책없는 여자가 되겠다며 빠르게 말한 후 일어섰다. 남편이 돌아올 시간이라며 밖으로 나가는 소영이를 바라보던 눈앞에 짙은 안개가 밀려왔다. 그 속에서 소영이가 전해준 은아의 목소리가 계속 밀려왔다.

-엄마는 엄마 인생 살고, 난 내 인생 살자. 우리 그렇게 살자.

정병국 작가|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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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병국
도서출판 ‘지식과사람들’ 대표와 문예계간 ‘시와 수상문학’ 발행인. ‘문예창작아카데미’와 스마트폰 전자책문학 ‘파란풍경마을’을 운영하며 월간 현대양계에 콩트를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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