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김기은 소설가] “우리 스타벅스가요”

식당에서 일어서며 내가 말했다.

“좀 전에 커피 마셨잖아요.”

“또 마셔요.”

“커피 되게 좋아하시나보네.”

“좋아해요”

“스타벅스는 너무 비싸요. 아까처럼 편의점에서 하나 사서 대합실가서 마셔요.”

“싫어요. 비싼데서 손님 대접 받으며 우아하게 마실래요. 제가 살게요.”

식당에서 화가 났던 것을 그렇게라도 풀고 싶었다.

나는 아메라카노를 시켰다. 그리고 주제도 없이 얘기를 하고 또 했다. 문학을 얘기했다가, 정치인을 얘기했다가, 집안 얘기를 했다가, 오빠 얘기를 했다가, 어린 시절 얘기를 했다가, 어떤 아는 사람 얘기를 했다가... 두서도 없이, 얘기를 멈추면 안 되는 것처럼 이 얘기 저 얘기를 하고 또 했다. 정말 할 말을 하기가 두려워서였다.

그는 자신도 힘든 일을 겪었다고 했다. 강사 일을 관두고 누구나 알만한 큰 영어책 출판사를 다녔단다. 실은 나를 맨 처음 만났을 당시는 거기서도 잘렸을 때라고 했다. 긴 얘기 하고 싶지 않아 강사직 얘기만 했단다.

공무원 공부도 해봤다고 했다. 그러는 동안 아내랑 이혼하고, 중학생 고등학생 아들 둘은 엄마가 키운다고도 했다. 남자는 그냥 돈 버는 기계에요. 요즘은 돈 없으면 바로 이혼이에요. 그래도 오빠가 경제력이 그렇게 없던 거 치고는 그쪽 새언니는 많이 참은 거예요.”

“그래요?”

“저는 돈 벌 때도 기러기로 살았어요. 출판사 다닐 때 영업직이라 월급 괜찮았어요. 그때는 집사람이 애들 교육에 욕심을 내더라고요. 애들 데리고 미국에 사는 언니 집으로 가는 바람에 5년 넘게 혼자 있었어요. 그러다 내가 직장 잃으면서 다 돌아왔죠. 내가 완전히 죄인이더라고요. 날 대하는 게 무슨 파렴치범 같아요. 진짜 그렇더라니까요. 내가 죄 지은 거예요? 아니잖아요. 그 사람, 오너들이 죄지은 거예요. 형제끼리 싸우다가 망해 먹은 거예요. 그런데 죄인은 내가 되는 거예요. 그 오너들이야 여기저기 땅도 있고, 먹고 사는 데야 뭔 걱정 있겠어요. 김우중 봐요. 병이 걸렸든 어쨌든 해외로 다니며 팔자 좋게 잘살잖아요. 기업이 망했다고 그 집안 식구들이 굶어 죽는 건 아니잖아요.”

얘기를 듣는 동안 나는 다음에 내가 할 얘기를 미리 떠올렸다. 얘기가 끝나고 더 이상 할 얘기가 없어지면 마치 샤리아르 왕 앞에 앉아있는 샤라자드처럼 죽임이라도 당할 것처럼 초조했다. 잠시라도 침묵이 돌라치면 이상하게 심장이 뛰고 불안했다.

그의 아버지. 그것이 불안의 원인이었다. 그러나 나는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아니 말하지 않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화제는 문학 얘기로 넘어갔다. 작품, 등단 얘기, 신춘문예...

“그런데, 제가 가장 훌륭한 작가를 누구라고 생각하는지 아세요?”

“셰익스피어잖아요.”

“어 어떻게 알았어요? 귀신이다.”

정말 어이가 없었다. 지난번 자신의 입으로 셰익스피어를 그렇게 찬사해놓고는. 이래서 나이든 사람하고 얘기하면 피곤한 거다. 자기가 뱉은 말로 돌아서면 잊어버린다.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한 자리에 6시간이 넘도록 앉아있었다. 잘못하다가 미국의 맥도널드 노인처럼 쫓겨나게 되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종업원이 와서 “죄송합니다 손님, 영업시간이 열시까진 데요.”하고 말했다.

속으로는 얼마나 욕을 했을 것이고, 저희들 끼리 저쪽에서 실컷 욕하고 왔을 터인데, 허리를 구 십도로 꺾고는 절을 몇 번이나 하며 엄청나게 죄송한 표정을 짓는다. 가증스러워라. 사람이 돈으로 보이면 그렇다. 5천 원짜리 싸구려 돈가스를 팔 때는 ‘네가 퍼먹어’, ‘음식 쓰레기 남기지 말고 다 처먹어.’하지 않나.

우리는 배운 사람답게 고개를 끄덕이고 교양 있게 “괜찮습니다, 저희가 죄송하죠” 하고 식- 웃으며 일어섰다.

조카가 레스토랑 알바를 오래 해서 나는 그런 곳의 실상을 잘 알고 있었다. 집에 오면 그 애는 온갖 꼴불견 손님들의 실태를 내게 얘기해 주곤 했었다.

“언니, 아니 참 고모, 내가 오늘 얼마나 졸라 열 받은 줄 알아.”

큰 조카는 흥분하면 고모한테 언니라는 말이 툭 튀어나왔다. 고모가 어려서 자꾸 언니 같다고 했다.

“기집 애 둘이 들어 와서 말이야, 오렌지 주스 한잔 시켜놓고 5시간이 넘게 앉아서, 물 달라 그러고, 리필 해 달라 그러고, 오렌지 주스를 누가 리필을 해줘. 뭐?, 커피는 되면서 더 비싼 주스는 왜 안 되네, ‘무식한 년, 원가가 비싸니까 안 되지 이년아. 커피는 물이야 물.’ 그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걸 참았다니까. 거기다 완전 골촌 거 있지. 그러고도 갈 생각을 안 하고 재떨일 비워 달래. 아! 내가 진짜...”

나는 조카의 말을 떠올리며 웃었다. 우린 비싼 커피 마신 값을 하느라 좀 오래 앉아있었을 뿐 그 정도는 아니니까.

달리 갈 곳도 없었다.

이제 마지막 열차까지 다 출발해버리고 끝이었다.

“오늘은 도로 들어가야겠네요, 오빠 집에 어디에요.”

그가 물었다. <계속>

김기은 소설가｜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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