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영꽃다발을 들고 있는 장영우 교수 부부

[골프타임즈=이상일 파리 특파원] 한국 최고의 지성 ‘만해 문학상’에 빛나는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장영우 교수가 그의 트레이드마크 같은 백발을 휘날리며 파리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앞에 나타났다. 이번에는 흰 수염 까지 달고…

필자는 바쁘게 살아오면서도 인간의 연(緣)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해본 편이다. 수십 년이 지났지만 잊어지지 않은 어느 불자 모임 법회에서 법사가 말씀하신 ‘인연론’.

‘전생 윤회’라는…글귀가 생소해 처음엔 많이 어색했지만. 그 말이 엄청나게 좋아 필자도 각종 행사 때마다 몇 번이나 인사말로 써먹었더니 이제는 그 글귀가 필자가 만들어낸 문장같이 느껴질 정도다.

내용인즉 부부의 연을 ‘전생 8천생’, 부모와 자식 간의 연을 ‘전생 6천생’, 한 엄마의 배를 통해 나온 형제의 연을 ‘전생 4천생’으로 하고, 같은 직장에서 식구처럼 밥을 같이 먹는 인연도 전생 ‘3천생’은 돼야 된다’는….

해서 필자는 사람을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늘 그 만남의 귀함을 ‘연의 논리’로 펴나가며 인연을 넓혀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내가 당신을 오늘 여기에서 만나려고 50년을 기다렸다면 다들 무슨 말인가 해서 의아해한다. 되물으면 그침 없이 답을 던져 주었다. 세계 인구가 70억 명. 한국이 7,500만 명. 당신은 저 남도 끝자락에서 태어났고 나는 경상도 한구석에서 태어나지 않았는가. 한날한시에 나온 것도 아니고 생각해봐라, 어떻게 그렇게 떨어진 곳에서 태어나 50년이 지나도록 단 한 번의 만남도 없었는데… 그런데 오늘 이곳에서 이렇게 서로 만날 수가 있었을까? 생각을 한번 해보셨나 하면서…

당신은 바로 오늘 나와 만나려고 전생 윤회를 ‘3천생’을 같이 한 귀한 ‘전생인연’을 가진 사이였다고…주변사람들이 허허 웃고 자리를 넘기기도 했지만, 필자의 말에 의미를 부여하여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때 만남의 초심을 버리지 않고 연을 엮어가는 사람도 제법 된다.

오월 초 필자가 파리에서 몇 달간 장기 체류를 하고 있을 때 마침 ‘스승의 날’이 돌아와 사제시간으로 연을 맺은 몇 분의 스승님께 ‘그동안 자주 연락을 드리지 못하여 죄송하다’며 ‘오늘 스승의 날에 강건하심을 원(願) 드린다’는 인사말을 카톡이나 메시지로 소식을 전하며 필자가 ‘현재 파리에 머물며 빠리장들과 정을 나누고 있다’고 했다. 스승님 한 분이 반갑다며 답신을 주셨다. 현재 유럽을 여행 중인데 이틀 뒤 ‘파리’에 들린다며 자신의 여행일정을 알려주신다. 얼마나 반가웠던지… 그분은 동국대학원 문예창작학과 과장님이자 국내서 문학 평론으로 아주 유명하신 교수다.

그분과의 인연은 필자가 시를 좀 더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어 대학원 ‘석사과정’에 입학을 하게 됐는데 그때 필자에게 많은 지도 편달을 해 주신 분이다. 문학 평론이 전공이라 후에 ‘만해 문학상’도 수상하셨지만, 강의 시 그 특유의 체계적인 논리나 재치가 넘쳐나는 논평은 늘 강의실을 초만원으로 만들었고 사석에서도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어 동년배인 필자도 속 깊이 존경심을 가지고 수업에 임했던 기억이 아직도 가슴 가득하다.

그 스승님께서 파리에 오신단다. 어떤 연이 있었기에 허구한 장소 다 놔두고 먼 이국땅 유럽 파리에서 만날 수가… 지금 로마에 계신단다. 안식년으로 1년 정도 쉬시는데, 뒤에 제자들에게 들었지만, 집에서 여행이나 하고 그동안 못 본 책이라도 보면서 다 던져버리고 그야말로 푹- 쉬려고 하셨단다. 그런데 그 명성이 그분을 그냥 집에 쉬게 두지를 않았단다.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유명대학에서 초빙을 했다. 처음 몇 번 고사를 했지만 추천한 학교의 체면 때문에 제의를 받아들이고 현지로 날아가 눈 색깔이 이상한 새로운 제자들과 어울려 한국 문학사를 강의하고 토론도 하며 지내고 있다는 전갈이다.

그러다 하반기 귀국 일정이 잡혀 귀국하기 전 유럽여행을 계획하게 됐고 주변 인근 나라를 돌다 파리까지 오게 됐다는 것.

▲ 사모 교수 필자-집사람이 교수부부에게 파리 입성 환영 꽃다발을 증정했다

파리에선 며칠 계실 것이며 관광은 어떤 성향으로 계획하고 있는지를 필자가 여쭈었다. 그러자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볼 계획이며 3박을 파리에서 하고 ‘터키’로 돌아갈 여정이라고 했다. 도착하면 먼저 ‘오르세’ ‘루브르’를 관람하고 다음 날 오후 3시경 로댕 박물관 앞 ‘생각하는 사람’ 동상 앞에서 만나자고 안내를 했다. 쾌히 일정 조율이 됐고 교수님 도착 다음 날 필자는 집사람과 같이 미리 약속 장소로 나가서 존경하는 스승님을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동상 밑에서 한참을 더 생각하다 뵈었다. 그래선지 더 커다란 환희심을 얻을 수가 있었다.

역시 외모도 멋지다. 새로운 ‘천자문’을 지난밤에 지었는지 머리칼은 올-화이트. 거기다 하얀 수염까지 더 하니, 마치 신선이 나타난 것 같다. 이곳 유럽 ‘파리 로댕 미술관’에서.

“로댕의 진품은 저 건물 안 전시실에 있습니다. 다들 간과하고 지나가는데 이 작품은 그것을 확대하여 동상으로 제작해 세운 것입니다” 필자가 좀 아는 체하며 작품 설명에 들어가자 다른 말을 하신다. 한국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릴케(오스트리아-라이너마리아릴케-1875~1926)가 로댕의 조수, 비서였다는 말을 하며 시인 백석(1912~1996)과 윤동주(1917~1945)를 거론한다. 두 시인이 똑같이 흠모할 정도로 릴케를 좋아했다 고… 암울한 그 시대 천재 시인들이 좋아하던 릴케를 찾아보고 싶었지만 이번 여행 일정과는 너무 떨어져있어 엄두를 못 냈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릴케와 인연을 맺은 로댕의 생가라고도 할 수 있는 이곳에 오게 되어 매우 감회가 새롭다는 말을 전했다.

그러면서 한마디 더 건네신다. 릴케가 시작(詩作)을 하며 좌절하고 힘들어할 때 로댕은 크게 소리쳤다. ‘릴케! 힘내라’고 하면서. 릴케는 어려울 때마다 그의 스승 같기도 한 로댕의 말을 생각하며 많은 노력 끝에 유명한 시인으로 올라서게 됐다는 말을 하면서 필자에게도 힘을 주겠다며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힘내라고”하며 말을 던진다.

이후 저녁 일정이 없으시다기에 필자의 집으로 모셔 파리 아파트의 내부구조를 보여드리고 인근에 있는 미리 예약 해 둔 ‘참새와 방앗간’이라는 한국인이 경영하는 한국 식당으로 가서 쇠고기 등심구이와 맥주로 만찬을 겸하여 파리 입성 환영 파티를 하며 교수 부부의 객고를 달래드렸다.

만찬을 마치고 교수 부부를 전철로 바래드리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동행한 집사람이 필자에게 말을 건넨다.

“전 깜짝 놀랐어요” 뭔 소리냐는 듯 쳐다보니

“사모님이 대단한 분이네요. 명색이 서울에 있는 명문대 정교수 부인인데 저렇게 검소 할 수는 없는 거 아닌가요?” 어째서라는 표정을 보이니

“우리나라에서는 교수 부인은 대단해요. 제 아틀리에도 몇 명이나 나오는데 다들 만만찮아요”

“오늘 담소를 나눠보고 많이 검소하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어제 밤 숙소에 가보고 참 많은 것을 느꼈다. 아니 배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당신이 숙소로 가자기에 숙소가 샹젤리제 같은 중심가에 있는 5성 호텔 인가했었는데 민박을 하시더라구요. 너무 의외 였어요.”

“교수님은 교육자니까 그럴 수가 있다고 쳐도 사모님은 아니죠. 아니 저라도 처음 파리에 와서 설레는 마음을 고급호텔 테라스에서 번쩍이는 에펠탑을 보며 와인 한 잔을 기울이고 싶었을 텐데……. 몸에 베인 검소함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저는 봐요. 당신은 참 귀한 분과 연을 맺으셨네요.”

그 말이 단줄 알았는데 한마디 더 걸친다. 이번에는 나까지 끌어들인다.

“곁에서 보고 느꼈는데 두 분이 사제 간인데도 상당히 정감어린 정을 나누시더군요. 학교 다닐 때 교수님께 미움은 받지 않으셨나 봐요”

칭찬인지 평소의 나를 정말 잘 알아서 걱정해 준 늙수레 학생의 헛발질을 알고 하는 우려 섞인 소리인지는 몰라도 그 말을 듣고 한쪽 가슴이 잠깐 ‘뜨끔’ 했던 것만은 사실이었다.

언젠가 본 경행록 한 구절이 생각난다.

恩意廣施 人生何處 不相逢
讐怨莫結 路逢狹處 難回避

은의광시 인생하처 불상봉
수원막결 노봉협처 난회피

누구와도 인연을 잘 맺어놓아라 살다보면 어디에서 어떻게 만날지도 모른다.

만약 원수진 이를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면… 그 어려움을 어떻게 헤쳐 갈거나

물론 해석은 내 식대로 알기 쉽게 써서 올린 것이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제 간의 연이 됐지만 그 연이 끊어지지 않았기에 이 먼 타국에서 이렇게 반갑게 만나 정을 나눌 수가 있고. 또 그 모습이 집사람에게도 아름답게 비쳤다하니…

가히 그 인연. ‘3천생’ 전생 인연이 아니라고 누가 부인할 것인가.

▲ 장영우 교수와 필자

도담 이상일 파리 특파원｜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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