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김기은 소설가] 그 뒤로도 올케는 엄마의 물건들을 하나하나 버렸다. 엄마를 모셔간다는 핑계로 덮던 이불이며, 큰 맘 먹고 산 의료기인 쑥뜸기며 이런 저런 엄마가 아끼던 것들을 먼지 한 톨 만큼의 망설임도 없이 버리고, 엄마의 통장 돈도 다 찾아버리고 도장도 버렸다.

오빠는 엄마의 유품이 타는 걸 보고 싶지 않은지 안 가겠다고 정원에 앉아있었고, 여자들만 소각장으로 갔다.

올케는 보따리를 끌러 옷들을 꺼내 불구덩이 속에 하나씩 던져 넣었다. 먼저 엄마의 속옷들이 던져졌고, 블라우스며 티셔츠 등이 나오고, 봄에 내가 사준 앙고라 털스웨터도 나왔다. 보라색 털이 아직도 새것처럼 복슬복슬 했다.

"그것도 넣게?"

"고모 니가 입을래? 저번에 병원 갈 때 한 번 입고 안 입은 거라 아깝다."

"됐어"

이번엔 밍크코트를 집어 들었다.

"하이고, 시집 올 때 예단으로 밍크코트 해오라 카더니, 아깝어서 입지도 못하고 이십 년을 옷장에서 썩었네. 저승 가선 이제 마 아끼지 말고 실컷 입으소. 그리고 내 미워했던 마음도 다 푸소. 내도 사는 게 어렵으니까 그랬구마. "

정인보의 시가 다시 떠올랐다

'두둑이 다 입히시고 겨울이면 엷은 옷을, 솜치마 좋다시더니 보공되고 말아라'

엄마는 시장 포목점에서 손님이 맞추고 간 일감을 받아와 한복을 만들었다. 그것도 말하자면 하청이다. 올케의 말마따나 당신 옷은 못 해 입었다. 바빠서, 귀찮아서, 돈이 안 돼서. 시간 나면 당신 죽을 때 입을 수의나 만들어 놔야겠다고 입이 닳도록 얘기하더니, 그조차 미루고 미루다 아파 누워버려 끝내 못 만들었다.

"한복장이가 어디 나갈 때 입을 옷 한 벌이 없다. 그러게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잖아. "

엄마는 어디 외출 할 때면 늘 그러고 푸념을 했다. 제 머리는 못 깎았지만 아들 며느리 손녀는 그래도 챙겼다. 남은 자투리 천들로 만든 한복이며 블라우스 반바지 등을 만들어 주었다. 명절이면 우리는 모두 한복을 말끔히 차려 입고 세배를 했고, 여름엔 좋은 솜씨로 우리 여자들에게 블라우스며 원피스며 핫팬츠를 만들어 주어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게 했다. 일이 없을 때면 천 조각들을 이어 붙여 이불 껍데기, 내 도시락 가방까지, 솜씨 좋게 만들어냈다. 늘 맞춤옷처럼 입성 좋게 하고 다녀 학교에선 친구들이 나를 부잣집 딸로 오인했을 정도다. 그 덕에 나의 가난을 철저히 숨길 수 있었다. 사람들은 몰랐지만 자세히 보면 블라우스는 팔뚝과 몸통, 칼라, 리본의 천이 조금씩 달랐다. 그 이유를 우리는 알고 있었다. 바느질하고 남은 자투리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옷보다는 라벨이 붙은 비싼 옷을 입고 싶었다.

보자기에서 마지막으로 이불패드가 나왔다. 돌돌 말려있는 그걸 보니 올케가 했다던 말이 떠올랐다. 바짝 말라 자그만 해진 몸을 그 위에 새우처럼 웅크리고 누워있었다. 등이 아프다고 늘 그렇게 옆으로만 누워 지내던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안에서 불덩이 같은 것이 치밀어 올라왔다.

엄마한테 올케가 “그 위에서 나오지 말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엄마가 좀 이상해졌다고 생각했다. 며느리가 둘이 있을 때만 그렇게 험악하게 굴고 구박을 한다니, 혹시 엄마가 치매기가 있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기억이며 말씨는 또렷했다.

"이불은 그것만 돌돌 말아서 가져온 거야?"

멍하니 불길을 바라보고 있는 올케한테 내가 비꼬듯 한마디 했다.

"그래, 이거 만 버리면 되잖아. 하나만 버려야지 아깝잖나. 죽은 사람 깔고 덮던 거 무섭어서 어예 까노."

“엄마, 할머니 덮던 이불은?”

큰 조카가 물었다.

“그건 시집올 때 해온 목화솜이라 놔뒀다. 솜틀집 갖다 주면 솜 타서 껍데기까지 새로 싹 만들어 준다.”

자기가 한 짓을 자랑이라도 되는 듯이 떠들어대는 통에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돌아가시기 전에 몇 달 동안 하루에도 몇 번씩 물똥을 싸서 기저귀차고 있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자꾸 묻혀 놓으니 미치겠더라. 니야 어무이 대소변 안가리 봤으니 알겠나? 비위 약하다고 어무이 요강 하나도 못 비우면서 그런 걸 할 수나 있나. 욕은 만날 내 혼자 다 처먹어도, 느그 엄마 병 치다꺼리 하는 년은 내말고 없다. 느그 오빠도 입으로는 세상에 둘도 없는 효자인척 하면서도 기저귀한번 안 갈아줬다. 그래도 만날 내만 못됐지. 내가 말이라도 그리 안 하면 스트레스 받아서 못산다. 벌써 암 걸려 죽었다. 그렇다고 느그 오빠가 돈이나 제대로 벌어오나. 허구한 날 사업 한다고, 말아나 먹지, 내 혼자 그래 바둥거려 봐야 어무이가 말 한 번 따스하게 하는 줄 아나. 이북사람 지독스럽고 쌀쌀맞다고는 카더구만, 진짜 뱀같이 차갑다."

올케가 쉬지 않고 쏟아냈다. 입이 열 개라도 대꾸할 말이 없었다.

뱀같이 차가운 엄마가 벗어놓은 허물들은 뜨거운 불길 속에서 잘도 탔다. 알맹이 몸뚱이가 탔듯이 껍데기도 그렇게 탔다. ‘참 인생이란 게 엿 같네.’하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바람이 불자 소각장의 재들이 이리저리 날아올랐다.

엄마의 혼이 타고 있는가, 재가 되어 허공을 날아, 사막으로 가려는가. 나도 사막으로 가고 싶었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누워 나를 태워 생각조차 바스라 지면, 서걱거리며 일어서 부서지는 바람이 되고, 휘몰아치는 모래가 되고 싶었다. 사막에 가고 싶다던 엄마의 마음을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계속>

김기은 소설가｜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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