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탁한 세상에 마음을 풀어줄 열쇠는 유머다. 유머는 날카로운 칼날과 같은 비수 속에서 순간 흐트러지는 여유와 통쾌함...정신을 정화시키는 명상 수행이다

[골프타임즈=이현정 칼럼니스트]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의 처칠 수상(1874-1965)은 여유와 유머로 세상을 즐겼다. 포탄이 쏟아지는 그 포화의 중심 속에서도 낮잠을 즐겼으며 그 속에서 글도 쓰고 그림도 그렸다. 항상 늦잠을 자고 의회출석 날에도 지각을 일삼는 처칠에게 야당 의원들의 질책이 쏟아지자 “전 죽어도 일찍 못 일어납니다. 예쁜 마누라와 같은 침대에서 자 보십시오. 일찍 일어나게 되나. 다음부턴 의회 출석 날 전에는 각방을 쓰겠습니다.”등의 사례는 흔하디흔하다.

자신을 낮추기를 잘하고 그것을 웃음으로 되받는 처칠의 센스가 돋보인다. 키가 작고 뚱뚱한 체구라 그런지 연단에 오를 때 자주 넘어지곤 했다. 그럴 때마다 청중이 웃자 “제가 넘어져 우리 국민이 즐거울 수만 있다면 다시 한 번 넘어지죠.”

혼탁한 세상에 한줄기 웃음을 선사할 줄 아는 능력은 가히 최고다. 유머도 노력이지만 타고난 유머꾼도 있는 듯하다.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항상 전쟁이 끊이질 않았던 터라 우리역사에 과연 유머꾼이 있을까 할 정도로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더구나 전쟁 통에서 유머를 구사하기란 어느 똥배짱도 쉽지 않은 일이다.

선조 때 임진왜란을 겼었지만 평생을 장난과 유머, 재미를 달고 다니는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오성 이항복(1556-1618)이다. 그는 타고난 재치에 장난끼의 잔머리는 왕 앞에서까지 멈추지 않았다. 어릴 때 자기네 집 감나무가 옆집 담장을 넘어갔다고 옆집에 가서 추궁해 결국 감을 가져온 일화는 익히 알려져 있다. 이에 오성의 범상치 않은 면을 보고 사위로 삼은 옆집 어른이 권율 장군이다.

어찌됐든 서로의 얼굴도 모른 채 혼사를 하는 것에 불만인 오성은 얼굴은 좀 보고 장가를 가야하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에게 몽둥이를 나눠주고는 자기를 쫒으며 때리라고 시킨 뒤 도망치는 흉내를 하면서 권율의 딸인 예비신부의 치마폭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에 권율의 딸은 대범하게도 “선을 보려면 얼굴이나 보면 되지 속까지 보시렵니까?” 라고 당돌하게 따져 물었다. 아마도 오성의 장난끼를 익히 알고 단단히 준비해둔 모양이다. 이 정도면 둘 다 천생연분이다.

조선 영·정조 때 이문원(1740-1794)은 공부는 안하고 장난만 엄청 치면서 자랐다. 머리가 천재고 수완이 좋아 그렇게 공부를 안했어도 지금의 장관직인 판서를 무려 7회나 했다. 사실은 공부를 해놓고 놀로 다녔으며 글자를 모른다고 하고 다녔다. 이 또한 장난의 일환이다. 하다못해 과거시험에서도 "臣不文 (신은 글공부를 하지 않았습니다)" 라는 글로 영조의 진노를 사기도 했다.

결국 아버지 이천보가 사도세자로 인한 비극적인 자결에 가책을 느꼈던 영조는 그의 아들이면 틀림이 없을 것이라 하며 과거 급제자의 목록에 넣어주었다. 운도 좋은 인물이다. 그는 관리가 돼서도 자신이 무식하다는 것을 널리 알리고 그것을 이용해 놀리려는 지방관리들을 오히려 호되게 놀려 준 사례는 호호탕탕하다. 더구나 부정부패로 얼룩진 과거시험에서 제대로 계략을 펴 관리들을 시퍼렇게 질리게 한 일은 박수치고 웃을 일이면서도 유쾌‧상쾌‧통쾌를 선사하고 있다.

세상이 어지럽고 각박해질수록 마음을 풀어줄 열쇠는 단연 유머다. 그러나 유머의 힘은 날카로운 칼날과 같은 비수 속에서 순간 흐트러지는 여유도 서려있다. 그리고 사회의 정도를 향하는 올바름이 스며있어 통쾌하다. 정신을 정화시켜주는 호르몬의 역할을 한다. 위의 처칠수상이나 오성 이항복이나 이문원의 장난과 유머는 표피적인 말의 유희가 아닌 진지함과 올바름이 숨어있다. 그래서 더 귀엽고 정감 있다. 내편인 것 같아 포근함까지 전달된다.

전쟁 통에서도 유머감각이 빛이 나기도 어려운 일이지만 자신의 예정된 죽음 앞에서 유머를 날리기는 더욱더 어려운 일이다. 자신이 죽었다는 동영상을 만들어 기사로 내놓고 사망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아트 부크월드(1925-1982)다. 미국의 명 칼럼니스트이며 저명한 유머작가인 그는 자신의 부고를 임종 직전 동영상으로 남겼다. 그것도 전혀 슬프지 않는 부고로 말이다.

“안녕하세요? 아트 부크월드입니다. 제가 조금 전에 사망했습니다.” 이게 시제가 맞나? 의아해할 정도로 당당하고 유머를 잃지 않았다. 그러지 않아도 전 세계 500여개 신문에 그의 칼럼이 실려 1982년 퓰리처상을 수상하기도 한 그는 자신의 투병과정을 유머러스하게 보여준 터였다. 당뇨로 한쪽 다리를 절단해도, 신장투석을 해야만 할 정도여도 여전히 유머를 잃지 않고 의연하게 써내려갔다. “여기 호스피스 시설에선 뭐든지 다 들어준다. 다이어트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까 밀크셰이크, 햄버거 등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어 좋다. 내 생애 최고의 시기다.” 라며 자랑했다.

일찍이 중국 전국시대 장자(莊子)는 아내가 죽자 아내의 관 옆에서 두 다리를 쩍 벌리고 대야를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생명변화의 이치로 보면 그저 생명이 죽음으로 변한 것뿐이라며 이를 축하했다. 그래도 장자는 자신이 아닌 아내의 죽음이었다. 아트 부크월드는 자기 자신의 죽음이니 장자보다 한 수 위다.

공포와 두려움을 유머로 돌릴 수 있는 이러한 기개는 자신을 진정 사랑하는 모습이다. 그것도 용기 있는 사랑이다. 자신이 자신을 힐링하는 자세, 이는 완벽한 명상 수행과 다르지 않다. 어려울 때 일수록 빛나는 유머를 떠올려보자. 다소 어렵겠지만!

이현정 칼럼니스트｜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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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이현정은
정치학박사로, 동양화가로, 스피치커뮤니케이션과 재미있는 다문화 강의 외에 행복‧힐링‧치유 등 대중예술 속 치유커뮤니케이션으로 행복 찾는 일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