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정병국 작가] 형태만 석불이었다.

눈 코 입은 더듬어도 손끝에 닿지 않았다. 조금 물러서서 인자한 얼굴을 툭툭 새겨나가다가 죄송한 마음에 어설픈 합장으로 용서를 구했다. 시멘트로 된 받침대와 주위 땅바닥에 동전이 널려 있었다. 주머니를 다 뒤졌으나 동전이 한 닢도 없어 돌아서려는데 여인이 다가왔다.

“빌려드려요?”

백 원과 오백 원짜리 동전을 손바닥에 올린 여인의 미소가 무거웠다. 소리 없이 살짝 웃었는데 그 뒤에 숨어 있는 울음 같은 게 보였다. 소원을 빌라고 친절 베푸는 낯선 여인에게서 울음소리가 들리다니 당황스러웠다. 애써 내색하지 않고 백 원짜리 동전을 집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조심스럽게 석불 받침대에 동전을 던졌다. 석불 밑 부분에 부딪힌 동전은 땅바닥으로 튕겨 나갔다. 민망한 표정으로 자리를 비켜주자 여인은 고개를 저었다.

“소원, 안 빌어요?”

“예! 그런 거 없어요.”

여인의 서슴없는 대답에 이번에는 황당했다. 삼십 대 중반쯤 싶은 나이에 소원이 없다니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쳐다보다가 돌아섰다. 극락전 쪽이었다. 가끔 찾는 절이지만, 극락전은 한 번도 자세히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극락전의 문이 늘 열려 있어 안의 풍경을 먼발치에서도 바라볼 수 있었다. 죽은 사람들의 위패 대신에 켜놓은 작은 등잔의 전등 불꽃이 무서웠다. 극락전을 가득 채운 저마다의 불꽃이 마치 억울하게 죽은 영혼의 눈빛 같아 다가갈 수 없었다.

“저 영혼들도 소원이 있을까요?”

극락전 안을 기웃거리며 여인이 물었다.

“아마 있을 거예요. 아주 많이…….”

여인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아마 많이 있을 거라더니 이내 죽었는데 무슨 소원이겠냐고 부정하며 목까지 길게 빼 극락전 안을 살폈다. 그녀 뒤에서 극락전의 훼손된 현판만 쳐다보다가 석불 앞을 지나 대웅전으로 갔다. 대웅전 앞문의 좌우 양쪽 문을 이용하라는 작은 안내문 앞으로 다가갔다. 기도하는 신자들이 있으니 조용히 출입해달라는 당부도 있어 들어가지 않고 돌아섰다.

“불교 신자 아니세요?”

어느새 따라왔는지 여인이 돌계단을 내려서며 물었다.

“그쪽은……?”

“저도 아니에요.”

“아! 예…….”

불교신자가 아니라는 말이 왠지 반가웠다. 뭐랄까? 두 사람 다 구경꾼으로 절을 찾았다는 공통점 때문일까. 갑자기 거리감이 사라지면서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다는 생각에 칠성각을 마주 보고 있는 범종 쪽을 가리켰다.

“저 범종 소리 들어봤어요?”

고개를 저은 여인이 앞장섰다. 징검다리처럼 놓은 사각형 보도블록을 차례차례 밟는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범종 옆의 큰 북은 투명한 비닐로 덮어놓았는데 보기가 흉했다. 그 옆에 역시 커다란 어구가 매달려 있었는데 왠지 범종과 북에 어울리지 않았다. 어구를 장식한 원색 중 유난히 짙은 빨간색이 얼굴을 찡그리게 했다.

“저 범종도 에밀레종 그 소리와 같을까요?”

여인은 북과 어구를 차례차례 가리키며 ‘여기, 여기에서도 에밀레종 소리가 날까요?’라고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들어본 적이 없어 모르겠다고 하자 그녀는 공깃돌보다 작을 돌 몇 개를 주워왔다.

“귀 기울이세요.”

말릴 틈 없이 여인은 범종을 향해 돌을 던졌다. 무엇인가 부딪는 소리가 났지만, 종소리는 아니었다. 또 하나를 던졌지만, 역시 마찬가지였다.

“벙어리 종인가 봐요.”

여인은 이번에는 천장에 매달린 어구를 향해 던지려다가 포기한 채 한참동안 쳐다봤다. 무표정한, 그러나 무엇인가 아픔이 묻어나는 눈빛은 어느새 눈물로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어떤 연유의 눈물인지 모르지만, 그녀의 감정을 깨지 않게 조용히 돌아섰다.

“아까 석불에게 무슨 소원 빌었어요?”

칠성각으로 가려는 첫걸음을 떼기도 전에 여인이 불쑥 물었다.

소원? 아무것도 빌지 않았다. 그냥 석불의 받침대 위에 동전이 얹히기를 바라며 던졌을 뿐이었다. 칠성각으로 가려던 걸음을 돌려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어구에 던지려다 만 돌을 내게 내밀며 어느새 눈물이 가신 눈으로 눈짓했다.

“힘껏 던지세요.”

두 눈이 유난히 크게 그려진 어구를 쳐다봤다.

여인의 재촉에 정말 어구를 향해 힘껏 던질 생각으로 돌을 받아 겨냥했다가 포기했다. 속이 텅 빈 어구가 진짜 물고기로 보여 던질 수가 없었다. 뱃속의 장기가 하나도 없지만, 지금이라도 넓고 깊은 바다로 돌려보내면 살 수 있을 거라는 엉뚱한 생각에 피식 웃었다. 돌을 그녀에게 돌려주려다가 숲속으로 던졌다. 바람 소리도 없었던 숲에서 새 한 마리가 날아올랐다. 아주 작은 새였다.

“참새죠?”

여인이 물었다.

“아마 그럴 겁니다.”

“콩새일 수도 있잖아요?”

“산비둘기일 수도 있고요.”

여인이 쿡쿡 소리까지 내며 웃었다.

“손톱만 한 비둘기도 있어요?”

“예! 돌연변이 변종이거든요.”

여인이 다시 쿡쿡 웃었다. 변종이라는 기막힌 변명이 무척 마음에 든다며 활짝 웃었다. 인간 변종은 끔찍한데 새는 신기하면서도 귀엽게 느껴진다. 산속으로 날아간 새가 참새가 아니라 정말 너무 앙증맞아 깨물어주고 싶은 비둘기였으면 좋겠다고 했다. 두 마리였으면 좋았을 텐데, 라고 덧붙인 그녀의 눈빛이 다시 촉촉이 젖었다.

문득 처음 보는 남자 앞에서도 감정을 감추지 않는 여인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평범한 검은색 바지에다가 짙은 밤색 티셔츠 위에 얇은 점퍼를 걸친 모습만으로는 어떤 여자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긴 머리를 둘둘 말아 쪽찌듯 질끈 묶고 화장기 없는 얼굴만 본다면 남편 때문에 속 썩는 주부 같기도 했다. 그러나 말투와 행동에는 주부의 냄새가 조금도 없었다. 오히려 만사가 귀찮은, 그러면서도 무엇인가 정리되지 않은 자신에게 실망해 어찌할 바를 모르는, 아직 결혼하지 않은 여자란 느낌에 무게가 실렸다.

“또 살피세요?”

경사가 제법 진 절 입구를 벗어나며 슬그머니 표정을 살피자 낮은 목소리로 항의했다. 대답하지 않으려다가 차라리 잘 됐다 싶어 노골적으로 물었다.

“뭐 하는 분입니까?”

“뭐 하는 여자냐고요?”

“그래요. 뭐 하는 여잡니까?”

“뭐하긴요? 그냥 맥 빠진 여자죠.”

여인의 망설임 없는 대답이 되레 나를 맥 빠지게 했다. 속으로는 뭐 이런 대답이 다 있어, 하면서도 내색하지 않고 또 물었다.

“얼마나 빠졌어요?”

“뼛속 혼까지 다 빠져서 몰라요.”

여인은 웃지도 않고 여전히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산기슭의 숲을 바라보며 천천히 걷는 그녀를 힐끔 쳐다보는 순간 가슴이 아려왔다. 여인의 농담 같은 대답에 나도 말꼬리 잡기 장난처럼 물었는데 그게 묘하게 가슴 저림으로 밀려왔다. 한숨을 길게 쉬며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신경 쓰지 마요. 그냥 참 희한한 여자도 다 있다, 그렇게 넘어가세요.”

여인은 이쪽 마음을 훤히 들여다보듯 말했다.

“저 먼저 갈게요.”

여인은 멈춰 서 있는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걸음을 빨리했다. 점차 멀어지는 그녀가 가슴 저림의 상처로 남을 것 같은 예감에 고개를 저었다. 겨우 한 시간 정도 쓸데없는 이야기만 주고받은 여자에게 마음을 내어주다니 어이가 없었다.

모처럼 여유 시간을 즐기려 찾은 절이었다. 우연히 석불 앞에서 동전 백 원으로 닿은 인연이었지만, 그녀의 말대로 무심히 넘길 수 없었다. 그녀는 소원이 없다고 했었다. 나 역시 동전을 석불 받침대 위로 던지며 빈 소원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바람이 하나 생겼다. 봄이 끝나기 전 어느 날 석불 앞에서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그녀도 나와 같은 바람으로 절을 찾아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고개를 들었다.

여인은 어느새 도로 건널목을 건너가고 있었다.

정병국 작가｜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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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병국은
도서출판 ‘지식과사람들’ 대표와 문예계간 ‘시와 수상문학’ 발행인. ‘문예창작아카데미’와 스마트폰 전자책문학 ‘파란풍경마을’을 운영하며 월간 현대양계에 콩트를 연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