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노경민 수필가] 설국열차는 떠났다.

봄바람은 불고 산자락엔 진달래 아련하게 피어나는 봄날, 마음도 함께 떠돈다.

“얘! 어제 봤니? 아무리 봐도 너무 멋져! 밤새 설레어서 잠이 안 오더라.”

그윽한 눈빛이며 섬세한 손길. 낮은 음성까지 멋지단다. 그 어깨에 기대보고 싶고, 그 품에 안기고 싶단다. 아니, 먼발치에서 보기라도 했으면 원이 없겠단다.

친구는 드라마 남자주인공에게 빠져 나에게도 함께 보아주길 바란다. 갱년기 때는 그리 힘들어하고 우울함을 넘어 조울증까지 보이던 친구가 요즘은 봄날이다.

“참. 걔는 어떻게 되어가니? 그 회사 팀장이 14살 연하라면서. 사귀기로 한 거야?”

나도 애인 하나 만들고 싶다고 노래 노래하던 친구는 요즘 썸에 빠졌다. 한쪽에선 극구 말리고 한쪽에선 손 좀 잡는다고 닳겠느냐고 슬금슬금 바람을 넣는다. 알게 모르게 만나는 다른 남자. 그 스릴을 즐기기엔 너무 늙지 않았나 싶은데 나이에 상관없단다. 나이 들수록 노련하다고 오히려 큰소리다.

“여행 갔을 때 그 가이드가 명함 주면서 뭐랬는지 아니? 나더러 떼거리로 오지 말고 혼자 오래. 누나가 원하는 거 다 들어준다고.”

얘가, 얘가 큰일 날 애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거 아니겠지? 나한테도 그러더라.

영업상 그러는 거지. 친구는 정말 믿는 눈치다.

결혼하여 아이 키우느라 정신없고, 시부모 모시고 지쳐서 봄날은 다 갔다 여겼는데, 다 늦게 갱년기 치르고 나니 세상이 달라 보인다. 조금이라도 젊은 남자가 보기 좋고, 자상하며 ‘예뻐, 예뻐’ 하는 남자를 보노라면 왠지 설렌다.

“어제 오랜만에 차려입고 외식이나 할까 하고 남편한테 전화했다. 그 인간이 뭐란 줄 아니? ‘지금이 어느 때라고, 나 지금 바빠’ 하며 두 마디도 못 하게 끊어버리더라.”

남편한테 여자로 보이고 싶을 때가 있다. 라일락 향기에도 두근거리고, 해지는 풍경에도 옆구리가 시린 그런 날에 분위기 좀 바꿔보려 노력해보는데,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데 어림도 없다. 그런 순간, 다른 사람이라도 만나고 싶다.

어디 바람 든 여자 잠재울 달콤한 남자 없을까?

노경민 수필가｜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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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민 수필가는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스마트폰 전자책문학 ‘파란풍경마을’ 시낭송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며, 간결한 문체의 정갈한 수필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