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국 4千字 소설 제15화] 그녀의 딸

선생님은 공지천의 공지어를 보셨어요? 정병국 작가l승인2018.03.15l수정2018.03.15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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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타임즈=정병국 작가] 우연일까?

그녀도 공지천 둑길로 접어들자 걸음을 늦췄다. 우연이겠지 싶어 벚나무 밑의 벤치에 앉아 그녀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조금 떨어져 따라오던 그녀는 앞을 지나치지 않고 호수를 바라다보았다. 공지천은 의암댐의 만수로 호수가 되어 봄바람에 출렁이고 있었다.

벤치에서 일어나 천천히 걸어갔다. 누군가 꺾은 벚나무 가지를 집어 들어 틔기 시작한 꽃눈을 헤아리며 엉뚱하게 버드나무를 떠올렸다. 이른 봄, 둑길에 죽죽 늘어진 버드나무 가지의 꽃눈은 엷은 연둣빛으로 맺히다가 한순간 만개하여 사람들을 현혹했다. 달빛에 젖은 버드나무 꽃은 아름다움답다 못해 섬뜩했었다.

둑 밑의 물가로 내려갔다. 마른 풀잎을 헤치고 벚나무 가지를 조심스럽게 꺾꽂이하듯 물속에 꽂았다. 벚나무 꽃눈이 살아나 하얀 꽃으로 피기를 바라며 손으로 물을 떠 올렸다. 공지천의 물은 차가우면서도 상쾌했다.

“손 시리지 않으세요?”

물이 쏟아지지 않도록 손바닥을 오므린 채 둑 중간쯤에 앉자 그녀도 조금 떨어져 앉으며 물었다.

“조각공원에서부터 뒤따라왔어요. 죄송해요.”

삼십 대 후반쯤 싶은 그녀의 사과를 외면하며 오십 년 전으로 돌아갔다.

여름 어느 날, 우리는 공지천 둑에서 밤을 보냈다. 술 취한 나는 그녀의 무릎에서 잠이 들었고, 그녀는 그런 나를 지키기 위해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렇게 밤이 지난 다음 날 여명 속에서 청명한 소리에 눈을 떴다. 규칙적으로 들린 찰싹, 찰싹 그 맑은 소리는 의암댐 상류의 공지천에 그물을 친 조각배의 노 젓는 소리였다.

-괜찮아요?

여명의 시각, 눈을 떴다가 다시 감는 내게 그녀가 묻던 걱정스러운 목소리와 수면에 부딪치며 내는 물소리가 오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귓가에 생생히 살아 있었다.

“전 알아요. 선생님이 누구신지…….”

나를 안다는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옆얼굴밖에 볼 수 없었지만, 젊은 시절의 그녀를 참 많이 닮았다는 느낌이 반가움보다 늘 가슴 한쪽에 박혀 있던 아픔으로 다가왔다. 아름다운 첫사랑의 추억이 아니라 미움과 원망이었다가 지켜내지 못한 자책과 후회의 그리움이 된 깊은 상처였다.

“공지천의 전설을 어머니에게서 들었어요.”

조약돌로 큰 돌을 톡톡 두드리던 그녀가 참 재미있는 전설이라며 웃었다. 시인이자 교육자였던 이퇴계 선생이 집 앞 내(川)에 볏짚을 물고기 모양으로 접어 던졌더니 정말 물고기가 되어 달아나자 그때부터 사람들이 공지천으로 불렀다고 그래요. 퇴계동이라는 마을도 선생님의 이름에서 유래됐고요.

“선생님은 공지천의 공지어를 보셨어요?”

전설은 알고 있었지만, 공지어가 어떻게 생겼는지 한 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퇴계동에 살면서도 그냥 귓등으로 흘려버린 옛날이야기였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에 자주 공지어가 보고 싶다고 했어요.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 물고기를요.”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말솜씨와 목소리가 그녀를 빼닮아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조약돌을 들고 있는 그녀의 옆얼굴밖에 볼 수 없었다. 정면으로 얼굴을 돌리지 않을까 싶어 기다렸지만, 그녀는 호수를 바라다보며 말을 이었다.

“초등학교 평교사를 고집한 어머니는 은퇴 후 여기 공지천 둑을 자주 찾으셨어요.”

언젠가 저녁 산책을 함께 나왔다가 물었어요. 그 사람은 어떤 분이었냐고 묻자 어머니는 고개를 저으며 미소만 지었어요. 딸에게까지 감추고 싶은 아주 소중한 사람과의 추억이 이 둑 곳곳에 있다고 믿은 전 더는 캐묻지 않았어요. 대신에 어머니에게 자주 공지천으로 산책가자고 했어요.

“어머니는 이곳에 앉으시면 늘 침묵하셨어요. 그러다가 그만 돌아가자면서 습관처럼 공지어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다고 하셨어요. 그 공지어는 아마…….”

그녀가 말끝을 감췄다. 무엇인가 직선적으로 말하려다가 급히 피하는 눈치였다. 어쩌면 그녀는, 어머니의 공지어는 전설 속의 물고기가 아니라 가슴 속의 그분이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두 분이 왜 헤어졌는지 모르지만, 어머니는 평생 가슴속에 간직한 채 살아온 그분의 노후가 궁금하고 걱정돼 그렇게 돌려서 물은 것이라고 말하려다가 삼켰을 것이다.

그녀의 죽음을 3년 전 친구 부인으로부터 알았다. 그녀와 여고 동창인 친구 부인이 직접 전화로 알려주었다. 아무래도 아셔야 할 것 같아서 전화한다며 지병으로 이승을 떠났다고 했다. 그녀의 죽음을 접하는 순간 칠흑의 어둠 속으로 떨어지면서도 미소를 떠올렸다. 그녀는 못마땅하거나 화가 나면 조용히 미소 지었고, 나는 선생님 앞의 어린 학생처럼 고개를 숙여야 했다.

-선생님은 공지천의 공지어를 보셨어요?

뒤늦게 그녀가 물었던 말뜻을 되짚으며 공지천 호수를 바라다보았다. 잔잔한 바람에도 일어난 물결이 끊임없이 물가로 밀려오며 마른 풀잎을 흔들었다. 봄이라지만 아직은 일러 마른 풀줄기뿐인 물가로 작은 돌을 집어 던졌다. 공지어를 보셨어요, 라는 그녀 물음을 선생님은 저의 어머니가 보고 싶지 않았냐는 뜻으로 받아들이며 다시 돌을 집어 이번에는 호수 깊은 곳으로 던졌다.

“선생님!”

잠시 침묵했던 그녀가 얼굴을 정면으로 돌렸다.

“사람들이 제가 어머니 판박이래요. 정말 그래요?”

입가에 살짝 미소를 띤 얼굴뿐만 아니라 어깨선까지 놀라울 만큼 젊은 날의 그녀였다. 삼십 대 후반의 그녀를 보았다면 지금 바로 이 모습이리라.

“선생님! 정말 그래요?”

고개를 끄떡이며 웃자 그녀도 미소 지었다.

“이건 정말 궁금해서 여쭙는 건데요. 이혼의 진실 소설집 책머리에 나오는 꼭 만나고 싶은 사람이 저의 어머니가 맞죠?”

정확히 그 문장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이렇게 썼던 것 같다.

‘죽기 전에 꼭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우연히 해후하면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도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냥 초로(初老)의 두 손을 꼭 잡고 미소 지으면 그간의 깊었던 가슴 아림이 전해질까?’

그러나 우연한 해후는 없었다. 혹 마주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공지천 둑을 찾곤 했지만, 그런 행운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많은 세월이 흘렀고, 3년 전 친구 부인으로부터 그녀의 죽음을 알았다.

“맞네. 자네 어머니가 바로 그 사람인데…….”

그런데 먼저 갔구나, 라고 차마 말하기 싫어 말끝을 접었다.

그녀가 저세상으로 떠난 후에도 매년 이때쯤 공지천을 찾았다. 봄볕이 좋은 오늘, 출판사에서 원고를 쓰다가 점심도 거른 채 경춘선 전철을 탔다. 남춘천역에서 내려 그녀의 집이 있었던-지금은 큰 도로로 변했지만- 곳을 지나 공지천으로 향했다. 당시에는 없었던 공지천 조각공원에서 잠시 서성거리다가 그녀와의 추억 자리를 찾았다. 그때 조금 떨어져서 따라오는 여인을 느꼈지만, 그녀의 딸인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더구나 그녀가 나를 알아본 것은 믿을 수 없는 기적 같은 현실이었다.

“어머니 때문에 인터넷을 검색했어요.”

그녀는 마치 소설가인 선생님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어요, 라는 표정으로 웃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뜬금없이 고맙다는 그녀의 말에 얼굴을 쳐다보았다.

“어제가 어머니 기일이었어요. 내년에도 여기 오실 거죠?”

대답하지 않고 일어섰다.

“전화하세요. 제가 마중 나가게요.”

그녀는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를 주머니에 넣어주며 밝게 웃었다.

전철역까지 배웅하겠다는 그녀를 친구들과 약속 있다는 거짓말로 돌려세웠다. 몇 걸음 걸어가다가 돌아서서 꼭 전화하셔야 한다고 소리치는 그녀에게 어서 가라고 손짓했다. 몇 차례 더 돌아보던 그녀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다시 둑 중간으로 내려갔다.

50년 전, 여명 속에서 들었던 고기잡이 조각배의 노 젓는 맑은 소리를 떠올렸다.

정병국 작가|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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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병국
도서출판 ‘지식과사람들’ 대표와 문예계간 ‘시와 수상문학’ 발행인. ‘문예창작아카데미’와 스마트폰 전자책문학 ‘파란풍경마을’을 운영하며 월간 현대양계에 콩트를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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