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김기은 소설가] “그냥 바람에 실려 날고 싶었나보지. 아, 맞다. 전에 조카들이랑 무슨 영화를 보며 샌드맨을 본 적이 있어. 모래가 됐다가 사람이 됐다가 그런 영환데 그걸 보고부터 그랬던 거 같기도 해.”

"근데, 너 네 오빠 연세가 많으시네. 아버지 같다야."

"남맨데 열일곱 살 차이야."

"헉!"

"어떻게 그래?"

"그런 게 있어. 아빠가 병에 걸려서 골골 했데 죽기 전에 마지막 밤을 보냈나봐. 말하자면 내가 유복자야. 사람들은 우리 엄마가 바람 핀 줄 알아. 그러면 우리 엄마가 ‘내 바람 좀 폈소. 왜!’ 하고 퉁명스럽게 대꾸하셔”

친구들은 아무 말 못했다. 엄마도 그걸 노리고 그랬었던 거 같다.

종종 기분이 좋으면 엄마는 자신의 과거를 비밀 보따리를 풀 듯 하나씩 꺼내놓았다.

북에서 여학교를 다녔고, 19살 때 긴 머리를 커트해서 파마를 하고 타자학원까지 다녔다는 이야기며, 머리 자르고 파마를 했다가 친정아버지한테 머리채를 잡히고 죽듯이 두들겨 맞은 일.......은행에 취직했다가 아버지를 만나 석 달 만에 그만 둔 이야기까지.

친정 엄마 덕에 공부 했단다. 아들이 없어서 맏딸이라고 엄마를 아들처럼 생각하고 가르쳤던 거 같다. 북쪽 여자들이 원래 일찍 깨여서 교육열이 높았다.

“은행에 취직했는데 호텔에서 신입사원환영식을 하더라. 은행장도 왔다. 얼마나 그 자리가 떨리던지, 난생 처음 보는 서양음식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알 수가 있나. 하도 긴장을 해서 그만 나이프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 소리가 얼마나 크던지, 하도 창피해서 그 다음날 안 나갔다고 했다.

은행에서 사람이 찾아왔는데 그게 아버지였다. 그리고 석 달 후 결혼했다. 남편은 일제 때 학도병을 나갔던 경성제대 출신이었단다. 달랑 형제만 있는 씨가 귀한 집이라고 했다

오촌 당숙스님이 왔을 때도 오빠는 작고를 짚고 또 곡을 했다. 모처럼 친척이란 사람이 오기 신명이 났던지, 아니면 당숙어른 앞에서 효자처럼 보이고 싶었는지 이번엔 목소리에 좀 자신감이 붙고 커졌다.

"아이고~ 아이고~"

"그만 두라! 요즘 누가 곡을 하누."

당숙스님은 칭찬은 커녕 오히려 꾸지람을 했다.

오빠는 벌쭘해서 소리를 멈추었다. 굴건제복에 허리를 묶고 머리에 띠를 얹고 지팡이를 짚고 서 있는 것이 사막 한 가운데서 길을 잃고 서 있는 모습이었다.

“강남이 넌 아버지랑 똑 닮았다. 넌 절에 한 번도 안 왔더랬지.”

“예, 죄송합니다. 찾아 뵀어야 하는데”“아이, 일 없다. 서로 바빠서 그런 건데. 언제 한번 오너라.”

삼촌마저 돌아가시고 우리에겐 유일한 친척이었는데, 엄마는 단 한 번도 우리를 그 댁에 데려간 적이 없었다. 엄마의 자존심 때문이었을까. 북쪽에서 당숙네는 우리 집 과수원 일을 해주던 머슴 짝밖에 안 됐다고 했다.

"장지는 정했냐"

"어머님이 유언이 화장해서 뿌리라는 건데 어째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오빠가 화장장을 말 할 때마다 매번 "어머님 유언"이라고 강조하는 바람에 자꾸만 청개구리가 떠올랐다. 그 유언을 너무 잘 지켜 어머니를 강물에 수장시켜버린 청개구리.

"그럼 그렇게 하라. 여기 달랑 네 어머니 묘 하나 둬 봐야 뭐할 거가 너도 딸만 둘이고, 저 애도 결혼도 안 하고 저리 있는데. 묘 써 봐야 누구래 거두 갔니? “

5촌 당숙아제가 나를 흘끗 쳐다보며 말했다,

나도 죽으면 화장시키라 할 거다. 납골묘인가 뭐인가도 다 필요 없고, 북한 보이는 쪽으로 한강에라도 뿌리라고 애들한테 말해 놨다. 통일이 되지 고향에 뿌릴 수나 있겠니."

엄마는 원하시던 대로 화장장을 하게 됐다. 하지만 뿌리는 건 너무 서운하다며 오빠는 납골당에 안치하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올케 남 동생네가 화장터를 따라왔다. 화장터라 그런지 같이 가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관을 실은 커다란 운구버스는 거의 텅텅 비었다.

순서가 되어 관이 불가마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자 오빠가 "아이고~ 어무이요~"하며 통곡을 했다. 이번엔 제대로 울었다. 올케도 조카들로 훌쩍이며 울었다.

"아이고 이래 갈 거 뭐한다고 그래 미워했노. 마 내한테 원망 갖고 있었더라도 다 태우고 가볍게 훨훨 가소. 나도 다 털어버릴테니 어무이도 털어뿌소"

눈물을 거두고 돌아서며 올케가 중얼거렸다.

“고모는 울지도 않네. 딸내미가 엄마 닮아서 그런지 참 쌀쌀맞다."

뒤에서 올케네 친정 식구들이 수근 거렸다.

"그 피 어디 가나?"

올케가 그랬다. 올케는 엄마를 두고 뱀처럼 차갑다고 했었다.

나도 울어지지 않는 내 자신이 싫었다. 그렇다고 오빠처럼 마른 곡을 할 수도, 억지로 우는 척 연기를 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솔직히 슬프지 않았다. 다만 가슴을 뭐가 펑 뚫고 지나간 것 같기도 하고, 뭐가 꽉 막아버린 것 같기도 했다. <계속>

김기은 소설가｜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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