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모와 가르마 사이

거울 앞에서
머리카락 사이로 새 길이 났다
가만히 드러난 오솔길에 잡풀이 엉켜있다
여의어 가는 머리카락은
그대로 부끄럽고 쑥스러운 숲이다
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한 움큼 뽑혀 나오는 나무와 새 울음
날마다 다짐을 하고도
이별인 줄 모르고 떠나가는 나뭇잎
악수하며 손 내밀어 보지만
섭섭하고 아쉬운 마음은 아득해진다

거울 앞에서 가르마 타던
그 마음 같이 부끄럽지 않으려고
어제는 왼쪽에서
오늘은 오른쪽에서
메아리가 들려오지 않는 민둥산에
그리워라, 나의 검은 잎사귀들아
    -박종익 시인의 <탈모와 가르마 사이> 전문-

[생각 하나]
어지간히 나이를 먹었다는 것, 머리에서도 나타난다. 탈모 그리고 새로운 길을 내는 가르마길 탈모에서 가르마길을 내기가 쉽지 않다. 얼마나 소중한 길이고 조심스러운 길일까? 그렇다고 늙었다는 것이 아니다.

사과같이
달콤한 여자
한 입 베어 물면 아직도
사각, 쪼개질 것만 같다. <시 –첫사랑- 전문>

시인은 맛과 소리를 동시에 추구하는 공감각으로 환기시키는 첫사랑의 흔적을 아직도 단단히 붙들고 있다. 시 <고무신>에서도 고무신을 거꾸러 신은 첫사랑의 이미지가 자신의 몸에 남아 있고, 심지어 내 자신이 방향을 잃은 그녀의 고무신이 될 정도로 열정적인 도그마를 갖고 있다.

거울을 매개체로 자신의 모습을 보는 순간 ‘그대로 부끄럽고 쑥스러운 숲이다’ 그게 인간 본원의 속성일 텐데 현대인들은 이 부끄러움과 쑥스러움을 잃어버린 것이다.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어제는 왼쪽에서, 오늘은 오른쪽으로 가르마를 교대로 타보는’ 일뿐이라면 참 슬프다. 메아리가 들려오지 않는 민둥산은 절망적이기도 하다. 그 옛날을 환기하고 그리워 할뿐이라면 여태 삶에서 이뤄온 생애가 허망하기 짝이 없다. 카메라로 피사체를 쫓듯이, 클럽을 쥐고 공을 쫓듯이, 색소폰으로 악보를 쫓듯이 치열하게 살아 온 지난 생의 지혜와 열정을 바탕삼아 펜으로 언어를 쫓으며 힘찬 에너지를 발산해 보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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