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김기은 소설가] “언니, 삼촌 간첩 사건에 대해서 혹시 알아? 그때 엄마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갑자기 생각이 나서 불쑥 물었다.

“무슨 소리고?”

올케가 멀뚱히 쳐다보았다.

“돌아가신 삼촌 말이야.”

“내 알게 뭐고. 내가 시집 왔을 땐 죽고 없더구만.”

“옛날에 간첩으로 잡혀갔을 때 엄마도 잡혀가 고문당했다며.”

“누가 그 카드노?”

당황하는 기색을 보니 모르는 척하는 거였다. 엄마 장례식 날 당숙스님이 삼촌 얘기 할 때 올케도 옆에 있었다. 궁금한 것은 안에 못 넣고 있는 올케 성격에 나중에라도 오빠한테 캐물어 알아냈을 거였다.

“고모, 진짜 아빠 삼촌이 간첩이었어?”

“지랄하네, 아빠 삼촌이 뭐꼬 가시네야? 누가 보면 무식하다칸다. 작은 할아버지라 케라. 빙신아”

막내한테 큰 애가 면박을 주었다. 말투가 꼭 제 엄마였다.

“엄마, 언니 좀 봐”

“시끄럽다. 구사리 먹어도 싸다 가시네.”

“작은 할아버지가 여기 살았었어? 다 이북에 있는 거 아니었어?”

“니는 동문서답하나?”

“엄마, 이북에 우리 땅 되게 많다고 아빠가 주소 잘 기억했다가 통일 되면 꼭 찾으랬는데. 통일 되면 진짜 다 우리 거 되는 거야.”

“지랄한다, 꿈 깨라. 통일이 어느 천 년에 되노?”

“통일되기 전에 김정은 새끼 땜에 핵부터 맞게 생겼다”

조카들과 올케가 중구난방으로 떠들어 얘기는 엉뚱하게 삼천포로 흘러갔다. 이게 상제들 맞나 싶다.

엄마는 ‘전쟁’과 ‘빨갱이’란 말을 하면 항상 “몸서리가 난다” 고 했고, 치가 떨린다.”고 했지만 그런 뉴스가 나오면 누구보다 귀를 기울였다.

언제인가 TV에서 김대중이 간첩행위를 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엄마는 바느질을 하다가 일손을 멈추고 그 뉴스가 끝날 때까지 텔레비전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엄마가 다시 바느질거리를 잡으며 중얼거렸다.

“등장 밑이 어둡다더니. 저리 유명한 사람이 그리 오랫동안 간첩 질을 했는데 나라에서 어째 여태 그걸 몰랐나. 대통령이라도 됐으면 나라가 김일성한테 고스란히 넘어갔을 거 아니가. 아이고, 몸서리야.”

나는 학교에서 배운 간첩의 특징들을 머릿속으로 하나씩 떠올렸다. 구두 뒤축에 진흙이 묻어 있어야 하고, 주변을 자꾸 두리번거리고, 당연히 알아야할 담배 값 같은 것을 잘 몰라 많은 돈을 주고 사고, 밤이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라디오를 듣고. 서울말을 쓰면서도 북한 사투리가 섞인 억양을 갖고 있고............

엄마는 “야야, 부산, 마산에 빨갱이들이 설치고 난리란다” 라고 했고 이듬해에는 또 “전라도가 지금 빨갱이 천지란다”라고도 했다. 그 때마다, 엄마는 무슨 비밀 얘기라도 하는 듯이 ‘빨갱이’란 단어에 목소리를 한껏 낮추며 소곤거렸다. 그리고는,

“이러다 전쟁 터지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아이고 몸서리난다.”

하고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는 북에서 쳐들어 올까봐 날마다 불안해했고, 광주 항쟁 때는 빨갱이들이 설친다고 불안해했다.

세월이 흘러 대통령 선거를 앞둔 어느 날 엄마는 바느질을 하던 손을 놓고 새내기 유권자인 내게 아주 중대한 얘기라도 하듯 바짝 다가앉았다.

“너 절대 2번 찍지 마라.”

“왜요?”

“왜라니, 그 사람이 옛날에 빨갱이였던 거 너 모르나?”

“에이~”

나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웃었다.

“아니에요. 빨갱이가 어떻게 대통령 후보로 나와요.”

이제 나도 사리분별을 하는 나이인지라 섬뜩해하거나 움찔거리며 놀라지 않았다.

“하여튼 찍지 마라. 아무리 비밀이라지만 나라에서 누굴 찍었는지 다 감시하고 있다.”

“에이~ 아니에요. 어떻게 감시해요.”

“얘가 참 세상물정 모른다. 지문인가 뭔가 그런 거로 다른 사람 찍은 게 누군지 다 알아낸다더라. 종이가 빤닥빤닥해서 지문이 다 찍힌단다. 그리고 요즘엔 기술이 좋아서 쬐그맣게 생긴 감시 카메란가 하는 그런 것도 감춰놓는단다. 우리 집은 북에 식구들이 다 남아있어서 절대로 다른 사람 찍으면 안 된다. 잘못하다간 취직도 못하고 외국에도 못나간다.”

더 웃기는 건 엄마의 그 황당한 소리에 내가 좀 불안해했다는 것이다.

“삼촌도 빨갱이었다며요?” <계속>

김기은 소설가｜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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