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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길의 스타톡톡] 원죄 주연 백승철, 그가 ‘훌륭한 배우’인 이유

‘조연의 주연화’ 작품의 질적 향상...‘긍정 효과’ 윤상길 칼럼니스트l승인2017.11.07l수정2017.11.07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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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26년차 세월은 어쩔 수 없이 견뎌낸 야속한 시간이 아니라 자신감을 쌓아주는 기간이다. 대중이 행복해진다면 그 이상 바랄 게 없어...유명한 스타보다 훌륭한 배우이고 싶다

[골프타임즈=윤상길 칼럼니스트] 신스틸러(Scene Stealer). 최근 몇 년 사이 우리 영화계와 방송계에서 흔히 듣는 용어이다. 직역하면, ‘장면을 훔치는 사람’인데, 훌륭한 연기력이나 독특한 개성으로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연보다도 많은 주목을 받는 명품 조연을 말한다.

신스틸러에게는 한 가지 특징이 있다. 훌륭한 연기력이나 독특한 개성은 필수 덕목이지만, 대체로 40대 이상의 중년배우이고, 데뷔 10년 이상의 경력을 쌓은 배우들이란 사실이다. 훌륭한 연기력은 아주 드물게 타고난 사람도 있지만 대개는 연륜과 경험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명품 조연으로 주목받는 배우는 거의 연극무대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다.

신스틸러란 용어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 전에는 주연배우는 주연만 하고, 조연배우는 조연만 하고, 단역은 만년 단역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주연배우만 하던 사람에게 조연을 부탁하면 “나보고 배우 그만두라는 말이냐!”며 버럭 소리를 질렀고, 조연배우에게 어느 날 주연을 맡으라고 하면 “농담하지 말라”며 그 또한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요즘은 다르다. 이 괴이한 룰은 깨진지 오래다. 제작 환경이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제작 편수가 늘어났고 대작 위주로 만들어진다. 드라마 대부분이 외주제작사에 의해 전달된다. 여기에 종합편성채널(종편)과 케이블채널이 가세하고 웹을 기반으로 하는 플랫홈도 등장했다. 해외 교류도 활발해졌다. 작품의 기둥이 될 훌륭한 연기력과 독특한 개성을 지닌 배우의 수요가 많아진 현상은 당연하다. 제작사는 그 많은 배우를 연극 무대를 통해 수혈 받는다.

주연배우가 티켓파워를 내세운 검증 안 된 아이돌 출신 등 유명 연예인으로 채워진 탓도 큰 몫을 했다. 그들의 미숙한 연기를 감싸줄 배우의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출연 기회가 많아진 조연들은 점차 관객과 시청자들에 익숙해졌다. 서서히 진가가 발휘됐고, 요즘의 신스틸러, 명품조연들은 대중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나아가 어제의 조연이 아니라 당당하게 주연배우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중이다.

요즘 각종 시상식에서 주연상보다 조연상에 더 관심이 쏠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100억원대 이상의 제작비가 투자되는 대작에서 이들 조연의 활약상이 주연을 압도하는 경우도 자주 눈에 뜨인다. 이 ‘조연의 주연화’는 결과적으로 작품의 질적 향상을 가져오는 긍정 효과를 수반한다.

올해 하반기 영화계가 주목하는 대표적 신스틸러 백승철, 그도 명품조연이다. 앞서 필자가 장황하게 배경 설명을 늘어놓는 이유도 그가 ‘스타톡톡’의 주인공이어서 반갑고 고맙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화제의 대작영화 ‘군함도’의 류승완 감독은 백승철을 올해의 신스틸러로 자리매김해준 장본인이다. 상영 내내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군함도’에는 속된 표현으로 오만팔만명의 배우가 등장한다. 하나같이 허름한 작업복에 탄가루를 뒤집어 쓴 거무튀튀한 얼굴들, 누가 누구인지 피아 구분이 어려운 출연진이다. 그런데도 백승철은 단연 돋보인다.

중요한 장면마다 백승철이 등장하고 똑 부러지는 대사가 뒤따른다. 도입부 관부연락선 수송 장면에서는 새신랑으로 등장, 첫날밤도 치루지 못하고 군함도로 향하는 딱한 처지가 그려진다. 유일한 대형사고, 갱도의 석탄 운반 레일 사고에서는 한쪽 다리를 잃는 유일한 부상 탄부가 되고, 종반에 가서는 윤학철(이경영)의 비리를 폭로하고 일행의 탈출 결심을 굳히게 만든다. 컨베이어 탈출 장면에서는 겁에 질린 일행에게 불구자가 앞장 설 터이니 내 뒤를 따르라며 가장 먼저 밧줄을 탄다. 영화의 마지막 대사가 백승철의 입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되는 장면은 ‘군함도’의 백미다.

영화에서의 마지막 대사, 이는 작품이, 감독이 관객에게 던지는 메시지의 압축이다. 그 한 마디는 영화의 전부나 다름없다. 석탄운반선 선상에서 바라본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된다. 그 버섯구름을 보며 한탄하는 백승철의 독백이 관객의 가슴을 울린다. “아이고 워쩐댜, 저기도 조선사람이 많은디!!”. 그리고 영화는 끝난다. 이 중요한 장면과 대사의 주인공으로 백승철을 선택한 류승완 감독의 결정을 많은 영화인들은 입을 모아 “굿 초이스!”라고 했다. 백승철이 신스틸러로 우뚝 선 순간이다.

백승철의 명품 연기는 다른 감독에 의해 주연 배우의 반열에 옮겨진다. 상업영화의 귀재 류승완 감독이 그를 명품 조연으로 자리를 굳히게 했다면, 특별한 시각에서 ‘문제적 감독’으로 주목받는 문신구 감독은 그를 다양성 영화 ‘원죄’의 주역으로 캐스팅, 당당한 주연배우로 거듭나게 했다.

‘원죄’는 이미 종교계와 갈등을 빚고 있는 문제작이다. “하나님은 나를 심판하고, 나는 그 하나님을 심판한다.”는 헤드카피부터 문제가 됐다. 종교계 입장에서 보면 오만불손하기 이를 데 없다. 인간이 신을 심판한다는 내용이 우리 사회의 예술적 표현의 한계를 넘어섰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이 영화 ‘원죄’의 주인공이 백승철이다.

‘원죄’에서 백승철은 선천성 소아마비 장애인이다. 기지촌 여인이었던 아내는 핏덩이 딸, 그것도 뇌전증(간질병)환자인 아이를 팽개치고 외국인을 따라 그의 곁을 떠났다. 그 딸(이현주)이 학교도 포기한 채 15살 나이로 생활비를 벌고 그는 쪽방에서 세상을 원망하고 하늘을 원망하고, 결국은 신을 향해 반기를 든다. 신의 대리인인 수녀(김산옥)를 향해 독설을 뱉어내며, 자신의 생의 끝을 향해 파멸의 길을 걷는다.

백승철은 이 역할에 대해 “꿈에 나타날까 두려울 만큼 징글징글한 역할이다. 하지만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한계에 도달한 역할을 해냈다는 자부심도 갖게 됐다.”라고 말한다. 영화는 최근 완성됐고, 올해 말 극장 개봉을 앞두고 있다.

명품 조연에서 개성 강한, 선이 굵은 주연 배우로 변신한 그의 도전에 대한 평가는 이제 관객의 몫이다. 그의 연기에 대해 문신구 감독은 “40대 후반인 백승철은 훌륭한 연기력과 특별한 개성을 지닌 강하고 아름다운 중견 연기자다. 그에게 있어 데뷔 26년차란 조연 배우의 세월은, 어쩔 수 없이 견뎌낸 야속한 시간이 아니라 자신감을 쌓아주는 기간이었다.”라고 거들었다. 백승철은 어느 세대의 연기자와도 당당하게 경쟁할 역량을 갖추었고, 그래서 지금 젊은 배우의 롤모델로 떠오르고 있다는 설명이다.

대부분 40대 이상 남성 배우는 언제나 조연이었다. 누군가의 아버지나 삼촌이나 할아버지였지 주인공이었던 적이 별로 없었다. 그랬든 이들이 최근 영화의 주인공으로 떠오르고 있다. 용기와 연륜과 능력을 갖춘 이들은 신스틸러를 넘어 주연 배우로 영화계와 방송계의 견인차가가 됐고, 예술·문화계에서는 이들의 감성을 존중하기 시작했다.

주름진 얼굴의 아재들이, 그리고 꼰대 배우들이 강한 이유는 이들이 나이보다 젊어 보이거나 젊어지려고 노력해서도 아니다. 오히려 이들은 주름과 백발을 당당히 드러낸다. 뒷방에 물러앉은 게 아니라 현장에 뛰어들어 소통하려고 한다. 이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열정적이면서 자신보다 덜 산 경쟁자들에게 미소를 보여줄 줄 안다. 조용하고 단단한 이들은 차돌만큼이나 강하다. 백승철도 그렇다. 백승철은 ‘원죄’의 현장에서 후배 연기자들에게 모범을 보임으로 자신의 강함을 드러냈다.

“저는 유명한 스타가 아니라 훌륭한 배우이고 싶습니다. 유명한 스타와 훌륭한 배우는 같은 사람을 말할 때도 있지만, 별개의 경우도 있습니다. 유명인이 되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유명한 배우’는 자신의 재능이 탁월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경우이겠죠. 그러나 ‘훌륭한 배우’는 나 자신의 재능을 힘들고 지친 대중들을 위해 조건 없이 펼쳐 보이는 사람입니다. 조연이면 어떻고 주연이면 어떻고, 또 단역이면 어떻습니까. 나로 인해 대중이 행복해진다면 그 이상 바랄 게 없어요. 전 그런 ‘훌륭한 배우’이고 싶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대사처럼 긴 여운을 남기는, 그가 인터뷰를 마치며 던진 말이다.

윤상길 컬럼니스트|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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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윤상길
부산일보ㆍ국민일보 기자, 시사저널 기획위원을 역임하고 스포츠투데이 편집위원으로 있다. 장군의 딸들, 질투, 청개구리합창 등 소설과 희곡 등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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