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정노천 기자] 자작나무 숲 사이로 조선인들의 유골이 집단 매장돼 있다. 지금은 푹 꺼져 녹슨 비석만 앞에 서 있다. 이들의 죽음에 대한 흔적도, 이름도, 기록도, 이유도 없이 묘비에 이름 하나 새기지 못하고 200여명이 넘는 사람이 집단 매장된 곳이다. 이미 고인이 된 한 할머니는 말한다.

'남북이 싸우면서 불편해 할 때 구소련은 그들 마음대로 이들의 집단 죽음을 방치하고 재판은커녕 조사도, 조치도, 이름도, 기록도 없이 관심 밖으로 밀어 그냥 묻어 버렸다’고 울부짖었다. 그들은 영하 50도 혹한의 땅으로 가서 일만 하다가 배고픔과 전염병, 고된 노동을 견디지 못하고 죽어 간 것을 누가 언급이라도 했는가? 해원의 길은 까마득한가? 이제 저들의 원혼들을 해원시켜야 할 때고 그들에게 조국은 무슨 의미일까?를 묻고 있다.

서울에서 3500km떨어진 캄차카 반도 조선인들이 겪은 통한의 삶을 정수웅 감독은 고향이란 정서적 키워드를 갖고 객관적으로 펼쳐간다.

그들은 비록 타국에서 통한으로 살아 몸과 정신이 피폐해 졌지만 죽어서라도 고향 땅에 묻히고 싶어 했다. 이것이 캄차카 조선 노무자들의 가장 큰 소원인데 그 누구도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주지 못하고 있다.

조선이 광복이 된 후 1946년부터 1949까지 3만명이 구 소련 캄차카반도로 돈을 벌기 위해 노무자로 들어갔다. 1950년 6,25 전쟁으로 남북한이 갈리면서 그들은 들어올 고향 길이 막히고 말았다.

70년이 흐른 지금 소련 이주 1세대 노무자 1명만 살아 있고 2, 3세로 이어지는 이 땅에서의 아픈 기억이 사라져 가는데 과연 조국은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하고 영화는 묻고 있다. 막상 그들이 고국으로 아니 고향으로 돌아와 뼈를 묻을 곳이 어디인지 질문을 던지지만 과연 편안히 그들을 받아 줄 고향이 있는가?

‘고향이 어디세요’라는 그 평범한 질문에 수십 년간 고향을 밟지 못한 조선인 노무자들은 쉽사리 대답을 못한다. 그게 크나큰 비극성이다.

조선인 2명과 결혼을 했고 작고 후에 임양한 할아버지와 세 번째 결혼 한 발렌찌나 스쩨파노브 할머니가 “조선인을 어떻게 죽이고 학대했는지를 밝히세요!”라고 울먹이던 말에서 이곳 캄차카에서 조선인들에 가한 끔찍한 사건이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정수웅 감독은 ‘110년만의 추적, 명성황후 시해 사건’, ‘한국의 재발견’ 등 40여 편의 다큐멘터리를 연출하고 ‘초분’으로 다큐의 노벨상이라 할 수 있는 골든 하프상을 타면서 주목을 받았다. ‘고향이 어디세요’는 캄차카에 사는 조선인 노무자들의 비극적인 삶을 목격하고 연출을 결심하게 되면서 만든 다큐멘터리다.

20여 년간 이들의 삶을 치열하게 기록하며 '고향이 어디세요'를 최근 완성하게 됐다. ‘질곡의 현대사가 빚어낸 가슴 아픈 비극이자 우리가 외면해서는 안 되는 또 하나의 잊힌 역사’라고 불편한 진실을 환기시키고 있다. 정수웅 감독은 영화적 연출 요소를 가미해 철저히 관찰자적 시각에서 기록했다. 어쨌든 국가가 우리 민족들의 삶에 어떤 역활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다큐멘터리다. 동시에 우리 역사적 강역을 확대해 간다.

장르 : 다큐멘터리 | 감독 : 정수웅 | 제작 : 다큐서울 | 배급 :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 개봉일 : 2017년 11월 개봉 예정

정노천 기자｜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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