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김기은 소설가] 나는 그때 삼촌의 일을 처음 알았다. 삼촌은 민주화운동을 하는 사람을 쫓아다니다가 졸지에 간첩이 된 거였다. 진짜 간첩이었는지 일부러 뒤집어씌운 혐의였는지 누구도 정확히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만 두지 않았다. 전단지는 되도록 집에는 가지고 오지 않았다. 그렇게 반년을 버텼을 때다. 백마로 엠티를 간다고 했다.

주일날 출발 시간에 맞춰 성당에 가니 성당 초입의 계단아래서 회원 몇 명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일행들을 기다리는 거 같았다.

나는 그들 옆 빈자리에 앉았다. 회원들은 날 흘끗 쳐다만 보고 말이 없었다. 뭔가 얘기를 나누던 중이었던 것 같았다.

회장이 물었다.

“6년 만에 졸업 하는 거지?”

“응”

“졸업하면, 이제 어쩔 건데, 취직자리는 알아봤냐?”

“취직이 되겠어.”

“네가 심리학과냐?”“응, 아동심리학.”

“흐, 아동심리학? 서울대가 아동심리학과도 있었냐? 그거 전공해서 뭐하냐? 유치원 그러데 취직하면 되겠네?

“흐흐, 그러게.......”

잠시 침묵하고 있던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어차피 취직도 안 되고, 그냥 대학원이나 가려고”

“잘 생각했다.”

화장은 다른 회원을 향해 다시 질문을 했다.

“너는 고대던가?”

“응.”

“전공이 뭐였지?”

“형하고 같지.”

“아, 맞다. 취직은 되겠다. 이쪽은 그래도 취직은 되니까. 아직 1년 남았으니까 너무 걱정 말고 열심히 해봐. 너는 블랙리스트에 올라간 거 없으니까 잘 될 거다.”

“안 그래도 이제 여기 좀 쉬려고. 취직 준비 하려면 공부에 좀 매달려야 될 거 같아.”

“그래, 먹고 살아야지 어쩌겠냐. 학점은 좋냐?”

“그런대로.”

“대기업 한번 쑤셔봐라. 잘 나가는 놈도 있어야 나도 기댈 데가 생기지. 크크크”

“대기업? 흐흐흐”

다들 키득 키득거리며 거리며 따라 웃었다.

“씨발, 나도 뭔 소리 하는지 모르겠다. 세상 다 그런 거 아니냐? 안 그래?”

다시 키득거렸다.

나랑은 다른 세상 속에 사는 사람들 같았다. 대학을 가겠다고 했을 때 엄마는 “얘가 지금 정신이 있냐?”라고 했다. 우리 집에서 대학 얘기를 하면 정신이 나간 취급을 받았다. 오빠는 자기 딸에게도 상고를 가라고 했다.

중학 때 나는 학교에서 오면 주인집 할머니 손자를 업어주고, 같이 놀아주고 했다. 직장 나가는 며느리가 가끔 아기 봐준 대가로 용돈을 얼마씩 주었다. 그 돈으로 금강 학생화 구두를 사 신었고, 일제 고급샤프를 샀고, 워커맨 카세트를 샀다. 친구들은 모두 내가 궁색하지 않게 살만큼 사는 줄 알고 있었다.

어느 날 등록금 때문에 선생님 앞에 불려나가고나서 무단결석을 했다. 학교 간다고 하고 종로를 배회하다가 정독 도서관에 앉아있었다. 선생님이 집으로 찾아오셨다. 결석 때문인지 등록금 때문인지는 정확하지 않았다. 엄마를 만나 그 두 가지를 다 말하고 가셨으니까.

선생님이 가시고 엄마한테 죽도록 바느질자로 얻어맞았다. 자가 세 개나 부러졌다. 나는 학교를 그만 두겠다고 했다. 엄마는 그렇게 속을 썩이려면 차라리 죽으라며 내 목에 그 뾰족한 바느질 가위를 들이댔다. 나는 너무나 두려워 싹싹 빌었다. 그 공포감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공포보다도 더 끔찍한 것은 노란 종이의 등록금 고지서였다.

그런데 그는 “대학원이나”라고 했다.

나중에 “~이나”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여러 사물 가운데서 가볍게 하나를 예로 들어 보이거나 선택하는 뜻을 나타냄”이라고 되어있었다. 대학원이 가볍게 선택하는 하나라니.

한 명이 발을 까닥까닥하며 바닥에 뭔가를 끼적였다. 그의 신발에 새겨진 ‘나이키’ 로고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발을 까닥거릴 때마다 빨간 낫 같기도 하고 갈고리 같기도 그것이 내 가슴을 쿡쿡 찌르는 것 같았다. 나는 그들의 운동화를 죽 살펴보았다. 프로스펙스, 아디다스, 리복, 나이키. 모름.

내 발을 바라보았다. 시장의 신발가게에서 산 싸구려 운동화다. 나는 몸을 뒤틀어 앞으로 내밀고 있던 발을 슬며시 옆으로 옮겼다. 명동을 지나던 길에 운동화를 쏟아놓고 ‘골라잡아 5천원’하며 소리치는 것을 보고는 이것도 비싼 거라고 뿌듯해 했었다. 비로소, 나는 그들과 부류가 다른 종자임을 깨달았다. 다른데 같아지려 한다는 것은 모순이었다. 그렇다 모순. 이 창으로 찌르면 어떤 방패도 뚫립니다. 이 방패로 막으면 어떤 창도 막습니다. 그럼 그 창과 그 방패로 싸우면 어찌 됩니까? <계속>

김기은 소설가｜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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