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민 푸념에세이 50화] 이제는 상차림에서 졸업을

손주 본 할머니, 더는 탈나지 않게 노경민 수필가l승인2017.10.11l수정2017.10.11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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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타임즈=노경민 수필가] 사는 날이 바빴다. 같은 하늘 아래 살면서도 얼굴 보기는커녕 전화도 쉽지 않았다. 그저 무소식이 희소식인 양 지내다 명절이라고 모여 보면 반갑고 수런거린다.

“형님, 졸업시켜 주세요.”

한 갑자 살았는데도 부엌에서 헤어나지 못하니 이제 졸업시켜 주시지요. 내년부터는 다과상으로 대체함이 어떨는지요? 결혼한 딸아이 사위도 오는데, 백년손님 맞이해야 하니 봐 주세요.

“그러네. 그러고 보니 대가족이네.”

부모님이 낳은 아들, 딸 네 명이 결혼했다. 그 아들딸들이 결혼하여 또 자식 낳고, 쑥쑥 자란 손주도 짝을 맺어주었다. 손주사위에 손주며느리, 증손자까지 25명이나 되었다. 단체 손님이다. 큰상이 네 개나 차려졌으니 큰일이긴 하다. 그래, 졸업해. 내년부터는 다과상이다. 진즉 그리하자 할 것을 늦어 미안하네.

맏며느리 심정은 맏며느리가 안다고 흔쾌히 허락하였는데, 밑에 동생이 눈을 흘긴다.

동생은 삐죽이며 그래 봐야 한 해 두 번이고, 밥상에서 이야기도 나누고 정도 드는 거지, 다과상이라니 무슨 여기가 서양인가.

“그럼 집집이 돌아가면서 할까?” 하니 집이 좁아서 안 되고 그 음식을 어찌 다 하느냐고 질겁한다.

‘며느리’란 ‘시집 식구들에게 음식을 만들어 제공하는 사람’이라 한다. ‘딸’은 피붙이로 결혼하면 남의 식구였다가 친정에 오면 시누이로 군림한다.

결혼 초에는 친정 가고 싶어도 말도 못 꺼내고 시댁 눈치만 봤다. 이제나저제나 친정 다녀오라는 그 말 한마디 기다리는데, 철딱서니 없는 시누이는 남편까지 대동하고 차례마치기 무섭게 들이닥친다. 저녁이나 먹고 가면 다행이지. 하룻밤 자고도 한낮이 넘어도 갈 생각이 없으니 친정 나들이는 꿈도 못 꾸었다.

명절 스트레스로 화병환자가 급증한다고 언론에선 법석이다. 아닌 게 아니라 없던 병도 생기는 게 명절이다. 남들은 여행 간다, 차례도 영상으로 지낸다는데 시댁 식구들은 어김없이 찾아드니 난감할 수밖에. 더구나 하나둘밖에 안 낳은 자식들이 더 어려운 시대가 아닌가. 나만 편안하게, 좋게 내 가족만 챙기다보면 누군가는 탈이 난다.

손주 본 할머니, 더는 탈나지 않게 이제 그만 상차림 졸업장을 주심이 어떨까?

노경민 수필가|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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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민 수필가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스마트폰 전자책문학 ‘파란풍경마을’ 시낭송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며, 간결한 문체의 정갈한 수필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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