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정병국 작가] “병원 냄새가 좋아요.”

여인은 빙그레 웃으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안경 속의 눈에도 웃음이 잔잔히 흘렀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엉뚱하게 커피를 떠올렸다. 너무 뜨겁지 않은, 설탕이 살짝 들어간 커피를 마시며 바다 풍경을 바라보고 싶었다.

“바다 보러 갈래요?”

여인이 고개를 돌렸다.

“갈매기랑 커피도 마시고요.”

구름에 가렸던 햇빛이 쏟아지자 암 병동 옆의 작은 동산공원은 여름 본색을 곧바로 드러냈다. 나무숲이 있지만, 햇볕 속의 벤치는 이내 용광로가 됐다.

그녀가 벤치에서 일어섰다.

“여중 때였어요.”

벌써 40여 년 전 이야기네요. 바다가 굽어보이는 너와집에서 그림만 그리는 여류화가가 되겠다고 하나님께 맹세했어요. 미술반 언니들에게 절대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도 자주 했는데 그게 다 헛소리가 됐지 뭐예요. 화가는커녕 스무 살에 시집 가 일곱을 낳았으니 저라는 여자, 대단하지 않나요?

아! 우리 또래들은 요즘처럼 하나가 아니라 서넛은 쑹쑹 낳았으니까 대단한 여자는 아니네요. 그냥 그렇고 그런 평범한 인생, 맞죠?

“파도가 부서지는 바위에서 그림을 그리는 이소영, 연출해서 사진이라도 찍을까 봐요.”

그녀, 이소영 여사가 피식 웃었다.

“내 이름은…….”

“알아요. 진료대기실에서 간호사가 부르는 소리를 들었어요.”

이 여사는 신기하다고 했다. 췌장암 환자는 대부분 떠난다는데 멀쩡히 살아 있어 음식 대접을 하고 싶었다. 담낭암 수술을 한 그녀는 진료대기실에서 선생님의 치료가 끝나기를 여러 차례 기다렸지만, 말을 건네지 못했다. 어느 날은 어두운 표정으로 진료실을 나와 다가설 수 없었다. 아주 밝은 표정일 때는 진료대기실을 바람처럼 빠져나가 말할 기회를 놓쳤다.

“몇 년 만에 마주친 오늘은…….”

그녀가 이번에는 소녀처럼 쿡쿡 웃었다.

“마치 죽은 영감이 살아온 것처럼 눈물이 왈칵 솟지 뭐예요.”

일 년마다 CT 촬영과 채혈검사로 췌장암의 재발여부와 전이를 확인했다. 깨끗해요. 아주 좋아요. 우리 일 년 후에 봅시다. 주치의의 환한 미소에 파삭 부서질 만큼 긴장했던 몸과 마음이 한순간 봄날의 한 마리 나비가 됐다. 들과 산의 꽃마다 날아다니는 날갯짓으로 진료대기실을 벗어날 때 그녀가 앞을 가로막았다.

“살아 계셨군요. 살아 계셨어요.”

마치 6‧25전쟁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하듯 두 손을 잡으며 눈물까지 글썽이는 여인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전 선생님을 알아요. 췌장암을 이겨낸 기적의 남자잖아요. 라고 말하기 전까지 잡힌 두 손을 빼낼 궁리만 했다.

“이 손 좀…….”

그녀는 들은 척도 안 했다. 오히려 손을 잡은 채 암 병동 옆의 동산공원으로 이끌었다.

“이젠 건강하신 거죠?”

그녀는 나를 벤치에 앉히며 물었다. 그때까지도 여인에 대한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병원에까지 이상한 여자들이 진출했나 싶어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세요. 저 노인환자를 후리는 이상한 여자 아니에요.”

잔잔하면서도 따뜻한 미소의 눈길을 마주 보다가 일어섰다. 그녀를 벤치에 앉혔다. 그녀가 이상한 여자이든 아니든 일단 친절하게 대하기로 했다. 혼자 다니는 병원, 그 발걸음은 진료 결과와 관계없이 쓸쓸했다. 건강 회복의 기쁨도 나눌 사람이 없을 때는 곧장 외로움으로 다가오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그녀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함께 있으므로 하늘에게 말하지 않아도 됐다.

“담낭암 수술한 지 오 년 됐어요.”

선생님이 계속 경계하니까 말씀드리는 거예요. 여자가 아프면 매력 없잖아요. 나이 먹은 할망구는 더 그렇고요. 제 말 맞죠?

그녀의 대답 재촉에 빙그레 웃었다. 고개를 끄떡였다가 가로 저었다.

“세상에! 그런 애매한 대답이 어디 있어요? 그냥 그렇다고 인정하세요. 뭐라고 안 그럴게요.”

“정말 그럴까요? 눈길조차 주기 싫다고 할까요?”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짐짓 너무 심하다는 표정이었다가 휴대폰을 달라고 했다.

“우린 이제부터 친구예요.”

전화번호를 저장한 휴대폰을 돌려주며 또박또박 말하는 그녀에게 이번에는 고개를 끄떡였다. 가로젓지 않았다. 암 투병 중인 그녀가 말하는 친구의 의미, 그것은 건강한 사람들과 달랐다. 건강한 사람들은 정과 의리의 나눔이지만, 암 환자끼리의 친구는 생사의 공포에 함께 대항하는 전우 같은 존재였다.

“선생님!”

그녀가 살갑게 불렀다.

“배고파요.”

어린아이처럼 울상까지 지었다.

췌장암 수술 후 혼자가 됐다. 제일 먼저 술친구들이 떨어져 나갔다. 몸에 좋다는, 정력에 좋다는 음식을 찾아 희희낙락하던 친구들도 떠나갔다. 이런저런 모임에는 스스로 참석하지 않았다. 마실 수 없는 술과 온갖 조미료가 들어간 맵고 짠 음식들도 문제지만, 그들을 불편하게 하는 자신이 싫었다.

먹을 거 있어? 어떻게 하냐? 우리만 먹어서.

한두 차례 간단하게 먹을거리를 준비해 갔다. 걱정하지 마. 나도 먹을 거 있어. 준비해 간 음식을 자랑스럽게 들어 보여도 모임 자리를 어색하게 만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즐거워야 할 자리가 나 때문에 가라앉는 게 미안하고 싫어 참석을 포기하면서 외톨이가 됐다.

“선생님도 배고프죠?”

고개를 끄떡이며 앞장섰다.

동산공원을 내려와 암 병동 앞에서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병원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그대로 지나쳤다. 손으로 햇빛을 가린 그녀와 나란히 걸으며 또 바다를 떠올렸다. 오늘따라 유난히 갈매기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커피를 마시고 싶었다. 몇 년째 상상만 할 뿐, 혼자 가는 게 싫어 포기한 커피 여행이었다.

“왼쪽으로 갈까요?”

병원 정문을 벗어나자 그녀가 물었다. 묻는 말은 왼쪽이었지만, 눈길은 오른쪽을 바라보고 있어 주춤했다. 몇 년 전이었다. 공복으로 채혈한 후 밥 먹으러 갔을 때 들린 식당마다 난처한 표정이었다. 암 환자가 먹을 만한 음식이 없다는 게 이유였지만, 환자의 출입을 꺼리는 눈치였다. 그날의 서운한 기억을 털어내며 오른쪽으로 돌아서자 그녀가 바짝 다가섰다.

“우리 맛있는 거 먹어요. 아주 많이!”

그녀는 아이처럼 좋아했다. 누군가와 외식한 것이 언제인지 모르는데, 뜻밖에 선생님과 식사를 같이할 수 있다니 정말 복 받은 날이라고 했다.

“그렇게 좋아요?”

“왜요? 선생님은 저랑 밥 먹는 거 불편하세요?”

“그럴 리가요. 다만…….”

그동안 의식적으로 누구와의 식사를 피했다. 여성과 단둘이 먹는 자리는 아예 생각지도 않았다. 권하는 만큼 이쪽도 맛있게 먹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했다. 함께 나누지 못할 식사는 불편한 자리로 추락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어색하다 이거죠?”

“맞아요. 음식 선택도 신경 쓰이고.”

“걱정하지 마세요. 선생님에게 맞출 거니까.”

사거리를 건너자 우측으로 식당이 즐비한 거리가 나타났다. 한 집, 한 집 살펴보며 걸어갔다. 식당마다 메뉴가 술과 함께 먹으면 좋을 기름진 음식이거나 횟집이었다. 바지락칼국수도 있지만, 두 사람 다 밀가루 음식은 피해야 했다.

“어떻게 하죠?”

그녀의 난감한 표정에 한 식당으로 들어갔다. 여주인은 친절했다. 환자라는 말에 두부 전골 식당을 가르쳐 주었다. 직접 두부를 만드니까 편하게 식사할 수 있을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갑시다.”

갑시다, 라는 말에 긴장했던 그녀의 표정이 금방 밝아졌다. 나 역시 발걸음에 힘이 생겼다. 내색하지 않았지만, 식당마다 기웃거리며 먹을거리를 찾을 때 우울했다. 음식 하나 마음 놓고 먹을 수 없다는 사실이 싫었다. 그냥 차 한 잔 마시자는 말이 목젖을 계속 간질였었다.

“저기 있네요. 맷돌 두붓집.”

“아!”

그녀가 앞질러 가서 안을 살펴보더니 활짝 웃었다. 두 엄지를 높이 들어 흔들며 빠르게 말했다. 그녀의 들뜬 목소리에 빙그레 웃었다.

“선생님! 우리 내일은 바닷가로 커피 마시러 가요.”

정병국 작가｜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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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병국은
도서출판 ‘지식과사람들’ 대표와 문예계간 ‘시와 수상문학’ 발행인. ‘문예창작아카데미’와 스마트폰 전자책문학 ‘파란풍경마을’을 운영하며 월간 현대양계에 콩트를 연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