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노경민 수필가] “아들이 먼저 챙겨.”

목소리에 힘이 붙는다.

“젊어서 술 마시고 엄마 때렸던 아버지가 눕자 자식들이 챙기는 거 있지. 병든 남편 덕에 로마 구경도 한 걸. 휠체어 타고 가니 특별대우로 상석에서 교황님도 보고.”

젊어 고생이 이제 빛을 보는 거다.

“애들 다 소용없어, 키울 때뿐이지. 이성 친구 생기니까 부모는 뒷전인 걸. 난 남편이랑 같이 골프 가고 쇼핑가는 게 젤 좋더라. 어제도 가방 세 개나 사준 걸.“

남편 자랑, 자식 자랑에 불을 뿜는다.

“나는 자식 말 나오면 할 말이 없어. 자식하고 인연 끊고 살아. 저 사업한다고 집 팔아 달라는 걸 안 된다고 했더니 그때부터 나랑 끝이래. 한 동네 살아도 얼굴도 마주치지 않는 걸.”

“난 40넘은 아들, 장가라도 보내봤으면 싶다. 눈이 높은 것인지, 혼자 사는데 맛 들였는지, 갈 생각을 않는다.”

이 친구, 저 친구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는 모습도 가지가지구나. 정답 없는 세상살이라도 한때는 서로 죽을 듯이 사랑했고, 그 사랑이 넘쳐 미움이 되기도 하니. 그저 으르렁거리다 패륜만 안 돼도 다행이고, 자식이 섭섭하게 해도 남편이 잘해주면 되는데, 남편 복 없는 년 자식 복도 없다는 옛말이 어찌 그리 딱 맞는지.

그러면 보따리 풀어놓고 들어 줄 친구라도 잘 두면 되잖아. 속내를 가감 없이 털어놓고 재고 따지는 것 없이 그 자체로 위안이 되는 친구.

남편 사 준 가방 나눠들고 못가는 해외여행은 매달 적금 들어 같이 가주는 거다. 헌데 자식 놈 의절한 거는 풀길이 없다. 집 팔아주자니 백세시대에 아직도 멀고 먼 노년을 어쩌리오. 버티자니 바늘방석인 친구 끌어안고 가슴 친다.

주고 싶지 않은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저도 더 늙어봐야 알겠지. 자식이 아니라 애물단지라 하는 걸.

그래서 남을 위로하려면 불행한 이야기를 한도 끝도 없이 늘어놓아야 상대가 편안해 진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내 아픔이 네게 치유가 된다면 ‘까잇거` 다 내놓지.

근심 없는 집이 어디 있겠냐.

노경민 수필가｜master@thegolftimes.co.kr
<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노경민 수필가는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스마트폰 전자책문학 ‘파란풍경마을’ 시낭송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며, 간결한 문체의 정갈한 수필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