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김기은 소설가] 그 삼촌이 북에서 온 간첩이라는 건가? 난 엄마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엄마는 김대중도 빨갱이라고 했으니까.

“야, 김대중 뽑으면 절대 안 된다. 그게 빨갱이다.”

선거 때면 엄마는 내게 그렇게 신신 당부했다.

엄마가 삼촌 소식을 들은 것은 전쟁이 끝나고도 15년이나 지나서였다. 스님이 된 오촌 당숙이 와서 소식을 전해주고 갔다. 인민군에 끌려갔던 삼촌이 어떻게 월남을 했는지는 부산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엄마가 아버지 소식을 듣기 위해 주소를 들고 찾아갔던 거 같다. 그리고 2년 후 경찰 공안부에서 엄마를 데려갔다. 삼촌이 간첩죄로 체포된 거였다. 잘은 모르지만 유추하건데 엄마가 경찰에 불려가 한 며칠 심문을 당했던 모양이다.

엄마는 가끔 그런 소리를 한다. “어설프게 아는 것보다 차라리 모르는 게 낫다” 그때 일을 말하는 게 아닌가 싶다.

엄마가 고문을 당했다는 것은 엄마의 장례 때 오촌 당숙 스님을 통해서 들었다. 오빠 손을 꼭 잡고 스님이 말했다.

“니 삼촌 일로 나도 조사받았었다. 너희 어마이 강한 사람이다. 그 일을 겪고도 흔들리지 않고, 의연하게 너 키웠다. 나를 찾아 절에 왔을 때 고문으로 몸이 걸레가 됐다며 한참을 울더라. 그래도 아버지 삼촌 원망 한마디 아이 했다. 여자가 몸 버리는 거보다 더 큰 고문이 어이 있겠냐. 엄마 미워하면 너 죄받는다.”

“미워한 적 없습니다.”

“네 아버지가 폐병쟁이가 된 걸 봤단 말을 어디서 듣고, 어마이가 어드러케든 삼촌을 살리려고 애 마이 썼다.”

나는 숨이 막히는 거 같았다.

“얘가 그 애구나. 어릴 때 한번 봤는데, 벌서 이리 어른이구나. 시집은 갔냐?”

스님은 여전히 오빠 손을 부여잡은 채 나를 찬찬히 뜯어보았다.

“아직 안 가고 저러고 있습니다.”

“어서 보내야지. 네 엄마 눈도 편히 못 감았겠구나. 저렇게 곱게 키워 놓은 걸 보면 네 어마이도 대단하다.”

“어무이가 고문을 많이 당했습니까? 전 그런 건 몰랐습니다.”

“네 어마이가 참 예뻤지 않니. 그러니 그냥 안 놔뒀겠냐.”

오빠가 나를 흘끗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젠 다 갔으니 그 일은 잊어버려라. 그보다도 저 아이 시집이나 얼른 보내라.”

내 안에서 커다란 덩어리 같은 뭉쳐져 가슴을 꽉 막았다.

나는 저능아처럼 웃었다. 그래야 울지 않을 것 같았다.

6.
문상객이 올 때마다 오빠는 지팡이를 집어 들었다.

오빠의 곡소리에는 슬픔이 느껴지지 않았을까?

오빠는 꽤나 효자였지만, 내 눈에는 불효막심한 놈이다. 엄마의 고생은 순전히 오빠 때문이다. 아들 사업자금 대느라 만날 돈을 빌리러 다니고, 그거 갚느라 마지막 까지 고생만 했다. 그래놓고 효도랍시고 남 안하는 곡을 하겠다니, 순전히 독학으로 곡소리를 만드느라 이리 저리 매번 톤을 바꿔가며 안간힘을 쓰는 오빠의 그 모습은 코미디 그 자체였다.

더 웃긴 것은, 슬퍼하지도 않고 노닥거리고 있다가, 손님만 오면 일서서서 갑자기 울어대는 것이다. 이 얼마나 배를 쥐고 웃을 일인가.

곡을 하기 전, 오빠는 올케가 가져온 귤을 까먹거나, 뭘 먹거나, 담배를 피우거나하며 노닥거리곤 했다.

조문객이 없어 심심하다며 올케더러 먹을 걸 내오라고도 했다.

“아이고 누가 돼지 아니라 카까봐 좀 아까 먹고 또 먹을 거 찾나. 징그럽다 징그러, 어무이 장례식이 네 잔칫날이가”

“애들 앞에서 말하는 꼬라지 봐라.”

“살찐다, 귤이나 먹어라”

“이 여름에 귤이 어딨노”

“요즘 세상에 겨울 수박은 없나. 하우스 귤이다. 비싸 못 먹는 거니까 줄 때 아무소리 말고 먹어라. 얼마나 맛있는지 ‘아이구 형님요! 더 없는교’ 할끼다”

“시그럽다(시다). 귤은 애들 주고 전이랑 수육이나 좀 가 와라”

그렇게 툭탁 거리면서 귤을 까먹고, 전을 집어먹고, 고기를 먹으며 처자식이랑 앉아서 시시껄렁한 우스개 따위를 쏟아냈다.

죽은 사람이 삼 일 만에 관에서 벌떡 일어나 나왔다는 이야기로 딸들을 놀래키기도 했다.

올케는 한술 더 떠서, 가래떡을 썰던 며느리가 떡 한쪽을 집어먹고는 죽은 이야기를 했다.

"관을 땅에 묻느라고 덜컹 하니까 목에 걸려 있던 떡이 탁 넘어온 기라. 그 덕분에 살아났어. 근데 깨어보니 자기가 죽은 사람이 되어 땅에 묻혔는 기라. 밤새도록 관 뚜껑을 밀고 손톱으로 땅을 파고 겨우 나오니까 손이며 소복이고 뭐고 다 피투성이가 됐지 뭐고. 컴컴한 산길을 걸어서 집에 가니까 문이 다 잠겨있는 기라. 문틈으로 보니까 어무이 방에 불이 켜져 있어. 그래서 며느리가 '어무이요, 저 왔심더. 문 좀 열어 주이소.' 하고 시어머이를 불렀다."

"댓따 무서웠겠다. 피 철철 흘리고 소복입고 머리도 풀고 그치?"

김기은 소설가｜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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