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노경민 수필가] 엄마는 늘 말씀하셨다. 현관문 밖을 나설 때는 제대로 갖추어 입어야 한다고. 그런데 하필 그날 그럴 줄을 누가 알았겠냐고.

친구와 잠깐 커피 한잔하자고 만난 것이 일탈까지 꿈꾸고 나섰으니… 여행준비도 없이 갑자기 바뀐 여정이라 잠자리 준비도 없었다.

아무 생각 없이 잠자리에 들었는데 내 팬티가 구멍 나고 나달나달한 거를 본 것이다.

“야! 그런 팬티 왜 입고 다녀?”

팬티를 버려야겠다고 생각 한 건데, 세탁해 놓은 거라 한 번 더 입고 버려야 지하며 입은 것 같았다. 머쓱한 김에 우겨본다.

“야, 그러면 빨아 놓은 거 그냥 버리냐? 한 번 입고 버려야지. 너랑 여행 올 줄 알았으면 새 팬티 입고 왔지.”

“그래도 그렇지, 여자가 그게 뭐니? 나이 들수록 더 고운 거 입어야지.”

그런데 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가 났다.

졸음운전자가 주행선 달리던 우리 차를 사선으로 들이받으면서 밀어붙이니 가드레일과 차 사이에서 우당탕탕. 엠블런스가 오고 친구는 척추를 다치고 난 허리와 갈비뼈를 다쳐 숨을 못 쉬겠으니 입원하여야 하는 상황인데,

아차, 생각났다. 팬티!

그런다잖아, 호텔에 불이 나고, 교통사고가 크게 나 피투성이에 끙끙 앓는 환자들을 늙었는지 젊었는지 모르잖아. 그때 팬티가 야하면 젊은 여자이고 늘어지고 무지에 엉덩이 다 덮은 면 팬티는 늙은 여자라는 거지. 그래서 제일 먼저 순서가 이쁜 팬티가 먼저래. 젊은 사람 먼저 구해야 하는 거 맞는 거잖아.

입원하려니 팬티를 보지는 않지만 나 스스로가 신경 쓰여 보이고 싶지 않았지. 이미 다 보았는지도 모르지만, 준비 없이 떠난 게 기예 탈이 난 거다.

같이 치료받자는 친구를 밀치고 슬금슬금 빠져나와 집에 왔어.

불똥은 어먼데로 튄다고, 남편에게 십만 원 내라고 소리치니 암말도 못하고 준다. 당연히 속옷 사 입어야지.

이참에 아예 T팬티에 브라지어까지 세트로 입어볼까.

노경민 수필가｜master@thegolftimes.co.kr
<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노경민 수필가는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스마트폰 전자책문학 ‘파란풍경마을’ 시낭송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며, 간결한 문체의 정갈한 수필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