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탄핵심판 선고 생중계에서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판결문을 낭독하고 있다. 법조문은 난삽하다는 편견을 깨고 간명하고 알기 쉽게 표현해 눈길을 끌었다.(사진 출처 채널A 화면 캡처)

꼬고 또 꼬아서 한 문장 안에 순접과 역접이 반복되고 중문에 복문까지 혼합되어 읽다보면 무엇이 주어이고 술어인지 헷갈려...‘난해한 글’

[골프타임즈=장창호 칼럼리스트] 꽃샘주의가 반짝했다가 3월의 봄 날씨답게 포근해졌습니다. 나라의 탄핵정국도 순리대로 풀리어 마음이 한결 가볍습니다. 시인 친구가 기막힌 명구(名句)를 보내왔습니다. “내 나이 육십, 독재자 없는 봄!” 올 봄의 환희를 이렇게 간명하게 대변하다니 역시 글이란 효용이 대단합니다. 오늘은 명문장(名文章)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연전에 한 잡지사에서 원고청탁이 들어왔습니다. 한국 소설이 어렵고 재미없다는 편견을 가진 독자를 위해 쉽고 재미있는 소설평론을 한 편 써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대형 출판사 출간소설, 베스트 및 스테디셀러 소설, 대형 문학상 수상작품, 기존 문예지와 평론에 실린 작품성 중심의 난해한 글 등을 지양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습니다.

말하자면 주류 소설이 아닌 언더그라운드 소설을 발굴해 쉬운 평론을 써달라는 당부였습니다. 중문학자로서 청탁의 조건에 합당한 우리나라 소설을 평소에 많이 읽지 않은 터라 평론쓰기를 거절했지만 많이 아쉬웠습니다. 잡지사의 기획 취지에 크게 공감하고 평소 필자의 글쓰기 지론과도 부합했기 때문입니다.

사실이지 필자도 명색이 문학박사인데 우리나라 문학평론을 읽을라치면 종종 너무 난해해서 당혹스럽습니다. 글을 꼬고 또 꼬아서 한 문장 안에 순접과 역접이 반복되고 중문(重文)에 복문(複文)까지 혼합되어 있어 읽다보면 나중에 무엇이 주어이고 술어인지 헷갈립니다. 그러다보니 한 문장이 대여섯 줄은 예사이고 심지어 거의 반 페이지나 차지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용어와 표현은 왜 그리 생경하고 현학적인지 학술논문과의 경계도 모호해집니다.

원래 평론이란 작가의 글쓰기 성취를 평가하고 작가의 창작 동기와 배경 및 정신세계 등의 정보를 제공하여 독자가 편히 읽도록 길잡이가 되어야 합니다. 길잡이는 당연히 쉽고 간명해야 합니다. 작품의 난이도를 넘는 평론은 평론가의 월권입니다.

중국의 고전문학장르 중에 고문(古文)이 있습니다. 당(唐)나라 때 한유(韓愈)와 유종원(柳宗元)이라는 문장가가 주창한 산문형식입니다.

이들 이전에 유행했던 글은 변려문(騈儷文)이라고 해서 산문인데도 규칙상 한 구가 4자 아니면 6자가 들어갔습니다. 옛날 일을 마구 끌어다대어 내용이 난해한데다 미사여구의 대구(對句)로 글을 지나치게 치장하길 요구했습니다. 이에 반발하여 한유와 유종원은 의사전달이 자유롭고 무엇보다 간명하고 알기 쉬운 문장을 쓰길 주장했습니다. 한마디로 글은 간단명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간단명료함이야말로 필자가 평생 배우고 또한 추구하는 글쓰기 핵심입니다.

지난 주말에 시대를 가르는 역사적인 판결이 헌법재판소에서 내려졌습니다. 판결내용도 중요하지만, 필자는 문학도로서 그날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21분간에 걸쳐 낭독한 판결문에 주목합니다. 법정 판결문은 난삽하다는 편견을 깨고 간명하고 알기 쉽게 표현한 명문장이라고 감히 평가합니다.

그날 판결요지문은 선고의 타당성, 일부 탄핵사안의 사실 인증과 증거 부족 및 판단 대상 여부, 피청구인의 명백한 법률 위반 및 헌법수호의지, 탄핵 선고 등 크게 네 단락으로 나뉩니다. 기승전결의 맥락이 분명하고 사용된 어휘 또한 어려운 법률용어라기 보다는 매우 알기 쉬운 말들이었습니다. 필자는 선고를 듣다가 혹시 피청구인 수준에 맞춰 글을 다듬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어 혼자 피식 웃기도 했습니다.

그날 헌법재판관들이 발표문을 작성할 때 의도하였는지 모르겠지만 글에 극적인 반전(反轉)도 있었습니다. 두 번째 단락에서 공무원 임명권의 남용 사실은 인정되지만 그러나 증거가 부족하며,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그러나 증거가 부족하며, 세월호 사건 대처에 있어 국민 생명권 보호의무와 직책 성실 의무를 위반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그러나 탄핵심판의 판단대상이 아니라고 역접 표현이 연속되었습니다.

이때 TV중계화면은 탄핵소추 국회 측 대리권자의 살짝 일그러지는 표정을 비췄습니다. 가슴이 철렁하는 시청자가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의 효과입니다. ‘그러나’를 이처럼 찰지고 밀도 있게 사용한 문장은 참으로 모처럼 봅니다.

그러나 더 큰 반전은 판결문의 셋째 단락 전(轉)에서 드디어 나왔습니다. ‘그러나’를 사용하지 않고도 말입니다. 그리고 단락의 말미에 나온 헌법수호의지가 이 문장의 백미(白眉)라 할 수 있습니다. 헌법수호의지, 이 말보다 명확한 탄핵인용 사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많은 국민들에게 글이란 이렇게 쓰는 것이라고 보여주려고 작정하고 쓴 글 같습니다.

명문장을 쓰는 것은 모든 글쟁이의 숙원이지만 쉽지 않습니다. 필자에게도 글쓰기는 여전히 미완의 숙제입니다. 옛 평론가들은 작가의 공력이 깊을수록 쉽게 표현한다고 했습니다. 글을 어렵고 멋있게만 쓰려고 하지 말고 간명하고 알기 쉽게 쓰면 절로 멋이 납니다.

새 학기에 글쓰기로 고민하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간명하고 알기 쉬운 글을 쓰는 요령을 하루빨리 터득하길 축복합니다. 비결을 정 모르면 이번 탄핵판결 발표문 요지를 열 번만 읽길 바랍니다. 그 속에 글쓰기의 답도 들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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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창호 칼럼리스트｜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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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문학박사,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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