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궁에 골프 코스까지 만들어놓고 즐기면서 민생은 외면하고 국민의 여론을 무시하다 망명객 신세...8년 만에 본국 귀환 허용

[골프타임즈=안문석 작가] 아프리카 서쪽 끝에 세네갈이 있다. 세네갈의 남쪽 지역에 동에서 서로 길게 가로지르는 강이 있다. 감비아 강이다. 이 강 양쪽 기슭을 따라 기다랗게 뻗어 있는 나라가 감비아(Gambia)다.

세네갈의 한가운데에 있는 강과 약간의 땅을 차지한 나라다. 미국의 흑인 작가 알렉스 헤일리의 소설 뿌리의 무대가 된 곳이다. 영토는 1만1,000제곱킬로미터, 우리나라 경기도 크기 정도 된다. 인구는 180만명, 수도 반줄(Banjul)의 인구는 35만명이다. 세네갈은 15세기에는 포르투갈이 점령했고, 17세기 들어서는 프랑스가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영국인들이 강을 따라 세네갈 깊숙이 들어가 노예를 잡아가고, 금을 채취하고 상아를 가져갔다. 그러면서 영국의 영역이 강의 양쪽 기슭에 형성되기 시작했다.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간간히 쟁탈전이 벌어지다가 1783년에는 영국이 이 지역을 독점하게 되었다. 1889년에는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국경 협정도 맺어으며 이후 1965년 독립할 때까지는 영국의 식민지였다. 그래서 세네갈은 프랑스어를 쓰는데, 그 속에 있는 나라 감비아는 영어를 쓴다.

감비아가 독립하면서 대통령이 된 사람이 다우다 자와라(Dawda Jawara)다. 영국 글래스고대학을 나온 수의사 출신 정치인이다. 영국 식민지 시절 감비아에서 유명한 수의사가 되었고, 이후 정치인이 되어 식민 정부에서 장관을 하다가 해방 이후 대통령이 되었다. 1994년 쿠데타를 당해 축출될 때까지 29년 동안 대통령을 했다.

박정희가 18년 독재를 했는데, 이보다 11년이나 더 했다. 장기 독재를 하다 보니 정부가 부패했다. 액턴 경이 말하지 않았던가,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고. 1977년 황제로 등극하며 대관식에만 국가 예산의 절반을 쓴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장 베델 보카사 럅 정도는 아니지만 자와라 정권도 오랫동안 집권하면서 여기저기서 부패상이 나타났고, 국민들은 그런 정부를 신뢰하지 않았다. 이런 틈을 타 육군 중위 야햐 자메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부를 전복시켰다.

자와라는 대단한 골프광이었다. 대통령궁 안에 6홀짜리 골프 코스를 만들 정도였다. 여기서 부인과 골프를 즐겼다. 문제는 골프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보니 같이 운동을 할 상대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나마 외국에서 온 외교관들이 자와라의 주요 골프 파트너가 되어주었다. 그런데 감비아는 워낙 작은 나라다 보니 상주 대사관이 많지 않았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 세네갈 등 몇 개뿐이었다. 대부분 세네갈 주재 대사가 기니비사우, 카보베르데와 감비아 대사를 겸임했다. 자와라 대통령 당시인 1987년 우리나라의 세네갈 주재 대사는 유종현이었다. 그는 물론 감비아 대사를 겸임하고 있었다. 부임 얼마 후 감비아 외교부의 의전장이 전화를 했다.

“대통령께서 빨리 한국 대사의 신임장 제정을 주선하라고 하십니다.”

대사가 어떤 나라에 가게 되면 대통령의 신임장을 가지고 가서 주재국의 대통령에게 준다. 이를 ‘신임장 제정’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이 사람이 나의 특명전권대사이니 양국의 문제는 이 사람과 상의해주시오’ 하는 내용의 대통령 신임장을 주재국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그때는 1987년 말, 전두환에서 노태우로 정권이 바뀌는 시기였다. 그래서 대통령이 바뀌면 새 대통령 이름으로 된 신임장을 가져가겠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의전장이 이렇게 말했다. “우선 백지 봉투 제출하시고 나중에 신임장이 오면 그때 전달하시죠.” 의전을 중시하는 외교관의 세계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왜 그렇게 서두르는지 물었다.

“대통령께서 한국 대사가 골프를 잘 친다는 소문을 들으셨습니다. 그래서 신임장 제정하러 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웬만하면 진짜 신임장은 나중에 전달하기로 하고 우선 골프채나 싣고 와주시죠.”

유종현 대사는 그럴 수 없다며 정중하게 거절했다. 1988년 4월이 되어서 신임장을 가지고 감비아로 갔다. 세네갈의 수도 다카르에서 감비아의 수도 반줄까지는 아프리카 서부 해안 도로를 따라 6시간 정도 가야 했다. 당시만 해도 비포장도로가 많아 시간이 꽤 걸렸다. 게다가 감비아강을 배로 건너야 했다. 유종현은 산 넘고 물을 건너 반줄까지 갔다.

먼 길을 가서 골프를 했다. 반줄 골프클럽에서 18홀을 한 것이다. 잔디가 없는 특이한 사막 코스였다. 그린이라는 것도 모래 위에 석유를 뿌려놓은 것이었다. 그래서 ‘그린’이라고 하지 못하고 ‘브라운’이라고 했다. 핀도 제대로 된 것이 아니라 그냥 나무 막대기를 꽂아놓은 것이었다. 그런 골프장에서 자와라는 핸디캡이 12, 부인은 17이라고 했다. 그렇게 골프를 하면서 88서울올림픽 참가 문제, 감비아에 한국 명예영사관을 개설하는 문제를 성공적으로 논의했다고 한다.

유종현은 같은 골프장에서 1990년 11월에 자와라와 한 번 더 골프를 했다. 그 자리에서는 과거 유엔총회에서 결의안을 두고 북한과 표 대결을 벌일 때 한국을 지지하기로 했던 감비아 대표가 북한에 매수되어 기권했던 일을 이야기하며, 추후 한국을 지원해달라는 이야기를 했다. 골프로 기분이 좋아졌는지 자와라는 우호적으로 대답했고, 다음 날 대통령궁에 있는 골프장에서 또 한 번 라운딩을 하자고 제의했다. 시간에 쫓겨 하지는 못했지만 독재자는 오랜만에 괜찮은 골프 상대를 만나서 아주 기분이 좋았던 모양이다.

그러고 몇 년 뒤 자와라는 쿠데타를 당해 권좌에서 축출되었다. 자신은 앞마당에 골프 코스까지 만들어놓고 즐기면서 민생을 돌보지 않고 국민의 여론을 무시하다가 망명객의 신세가 되었다. 사이가 좋았던 세네갈로 도망쳤다가 영국으로 건너가 2002년까지 망명 생활을 했다. 이후 감비아로 돌아가 살고 있다. 그나마 황제가 된 보카사나 수십 개의 별장과 대통령궁을 가진 콩고의 모부투 같은 지독한 독재자는 아니어서 8년 만에 본국 귀환이 허용되었다. 1994년 그를 무너뜨린 야햐 자메는 22년째 대통령을 하고 있다.

안문석 작가｜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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