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연재44] 충무로별곡

보훈지청은 자신들이 한번 추천하면 반드시 채용해야 한다며 용기를… 박하 작가l승인2016.12.01l수정2016.12.01 22:50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골프타임즈=박하 작가] 그런 이후 함봉호는 이대로 가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될 경우를 생각해 스스로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기로 했다. 우선 그래도 자신이 보훈유가족이라는 장점을 내세워 일단 보훈지청에 구직을 신청했다. 그런 다음 나름대로 화려한 이력을 이용해 구인광고가 나온 대기업의 홍보실에 이력서를 보냈다.

그 당시 대기업은 사보 창간을 많이 했다. 함봉호는 문예창작과 출신으로 대학 학보사 편집장과 전국대학생현상문예 소설 당선 경력 때문에 웬만한 경쟁자들보다 유리한 형국이었다. 마침내 대기업 두 곳에 동시 합격돼 면접을 앞둔 상태에서 공교롭게도 보훈지청에서 신문사 입사를 추천했던 것이다.

그런 와중에 시위하며 출근했던 월간지는 끝내 문을 닫기로 하고 그만두었다. 그 무렵 잡지사 편집장과 계속 통화했던 은사는 함봉호가 퇴사한 것을 알고 출판사로 찾아오라고 전화했다. 함봉호는 은사를 찾아가 자신이 편집장으로 근무하라는 것을 정중히 거절했다. 보훈처를 통해 신문사에 추천됐다는 말까지는 하지 않고, 신문사 입사가 결정됐다고 하자 은사는 오히려 내 일처럼 반가워했다. 결국 함봉호는 신문사 입사 추천 때문에 세 군데의 입사를 거절했다.

한편 출판사의 여자 편집장은 함봉호가 내정된 것을 통보받고 다른 곳에 이력서를 낸 결과 일류대학의 출판부 입사가 결정이 난 상태였다. 오히려 그녀에게는 더 잘된 셈이다. 그 여자 편집장으로서는 황당한 경험이었을 터이다. 함봉호가 이미 시인 교수와 합의한 상태에서 출판사로 입사할 줄 알았는데, 거절하는 것을 보고 당연히 놀랄 수밖에 없었으리라. 게다가 함봉호를 의심하고 미워했던 그런 마음도 동시에 거둬 갔으리라.

실제로 그 여자 편집장은 나중에 함봉호에게 자신의 친여동생을 소개시켜 줄 정도였다. 과연 누가 감히 함부로 친동생을 타인에게 이성교제 상대로 소개시켜 줄까. 그만큼 그 사건 이후 함봉호를 신뢰했다는 뜻일 게다. 그러나 함봉호는 일류여대 물리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여동생을 한번 만난 후로 더 이상 만나지 않았다. 사귀기가 부담스러웠던 이유는 그녀가 너무 똑똑했다는 사실뿐이다.

아무튼 함봉호는 그를 그렇게 키워준 은사를 결정적으로 배신했다. 아무 것도 모르고 오직 자신밖에 모르는 촌놈에게 내로라하는 일류 소설가들과 시인을 소개해 주며 후계자로 쓰려고 키웠건만…. 그런 엄청난 은사에 대한 공을 하루아침에 헌신짝 버리듯이 내팽개쳤으니 은사로서는 얼마나 심한 배신감을 느꼈을까. 시인 교수는 그래서 부득불 함봉호의 대타로 다른 편집장을 급히 수소문해 채용했다. 그와 함께 함봉호의 불행한 신문사 취업 사투는 시작된다. 주변의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던….

마침내 등신같이 촌놈처럼 착하고 멍청한 함봉호는 보훈지청의 추천을 받고 신문사의 총무부를 찾아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총무부장이나 인사과장은 콧방귀도 꾸지 않고 엉뚱한 인물이 함봉호의 이력서를 보고 면접을 했다. 그러나 그런 사실이 합당한지 부당한지 함봉호로서는 알 수 없었다. 신문사는 어딘가 달라도 다른 모양이라고 바보같이 인정하는 꼴이 되었다.

함봉호와 처음 대면한 이동수 참사는 그에게 판매국에서 근무해야 한다고 말했다. 함봉호는 절대로 판매국에서 근무할 수 없다고 거절했다. 아무리 착하고 어리석더라도 함봉호로서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신문사의 행태를 묵과할 수 없었다.

함봉호는 그대로 신문사를 나와 버렸다. 그리고 보훈지청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신문사에서 자신의 적성과 맞지 않는 판매국을 권유해 거절했다고 통보했다. 그랬더니 보훈지청 담당자는 더 기다려 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함봉호로서는 심한 좌절감을 맛보았다. 대기업의 홍보실 면접도 마다하고 은사의 출판사 편집장도 뿌리친 자신에게 맞부닥뜨린 현실이 야속하기만 했다. 아무래도 자신을 키워준 은사를 배신한 대가인 듯싶어 괴로울 만큼 하루하루가 힘들었다. 그러는 동안 보훈지청은 자신들이 한번 추천하면 반드시 채용해야 한다며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시골 출신으로 대학을 졸업해 생활비조차 없다며 읍소한 데 따른 답신이었다.

신문사에서 첫 대면한 지 한 달이 지나자 이동수 참사가 또 불러 찾아갔다. 이번에도 그는 판매국에서 일해야 한다고 말했다. 함봉호는 또 다시 그럴 수 없다고 거절했다. 그리고 한 달 후 세 번째로 찾아가자 이동수 참사는 함봉호에게 판매국 근무이지만 사무직이라고 회유했다.

함봉호는 졸업한 지 5개월이 지나면서 수중에 가진 돈도 메말라 가는 와중이라 그 말만 믿고 입사를 결정했다. 장돌뱅이로 근근이 살아가는 어머니에게 더 이상 손을 벌릴 수 없는 현실이 결정적이었다. 물론 그런 가운데에서도 총무부장과 인사과장의 얼굴조차 보지 못하고 오직 이동수 참사만 접한 결과였다.

마침내 7월 1일자로 판매국 발령이 나면서 총무부에 근무했던 이동수 참사는 과장으로 승진하면서 똑같이 판매국 수도권1부 과장으로 근무하게 됐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당시 이동수 참사가 총무부에서 맡은 업무는 인사가 아닌 잡무였다. 단적으로 신문사는 함봉호를 철저하게 속이고 유린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함봉호를 관리하는 직속 과장으로 공교롭게 외나무다리에서 만났다. 그러나 함봉호는 그동안 3번씩 총무부를 방문하면서 소설가적인 날카로운 시선으로 총무부장과 인사과장의 눈빛과 눈초리를 슬며시 각인했다. 그것은 소설가로서의 기본적인 관찰 능력에 따른 어쩔 수 없는 필살기이다.

그러나 판매국 사무직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이동수 과장은 첫 날 판매국장과 관리부장 등에게 인사를 시키더니 곧장 승용차에 태워 서울역 건너편의 한 보급소로 함봉호를 끌고 갔다. 그리고 이곳이 앞으로 함봉호가 매일 출근할 장소라고 소개해 주었다. 함봉호와 함께 입사일자가 똑같은 동기인 강재구는 이쪽 분야에 베테랑답게 차분하게 응대했다. 이미 강재구는 사고가 난 지역의 보급소장으로 가기로 내정된 상태였다.

함봉호는 뒤통수를 단단히 얻어맞았다. 그저 자신을 쪼다라고 꾸짖을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 이제 와서 보훈처를 찾아 항의할 수도 없는 입장이 되었다. 그럼에도 함봉호는 등신처럼 순진하게 자신을 회사에서 테스트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판매국 현장에서 그 어떤 어려운 일도 참고 견디면 다시 본사로 들어가리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분명히 함봉호를 떠보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 어떤 난관도 헤쳐 온 자신인데 이까짓 정도는 우습다고 스스로 타일렀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불행의 시작이었다. 적어도 함봉호가 이런 사실을 주변에 털어놓을 만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마치 알고 있다는 듯이 신문사 놈들은 아주 집요하게 함봉호의 목을 서서히 조르기 시작했다. 결국 견디지 못하고 퇴사하면 장부정리로 신문사에서 의무적으로 채용해야 할 인원을 썼던 것으로 기록될 터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총무부 직원의 증언에 의하면 보훈지청 취업 담당자가 이따금 회사로부터 촌지를 받는다고 귀띔해 준 적이 있었다.

드디어 이틀째 되는 날부터 함봉호는 판매국의 판촉사원으로 변신했다. 솔직히 군에 가기 전 먹고 살기 위해 신문배달을 했던 함봉호는 극적인 현실에 웃음만 나왔다. 수중에 가진 돈이라도 많다면 모두 다 때려치우고 소설이라도 쓰며 느긋하게 다른 직장이라도 알아볼 텐데 그럴 형편이 아니었다.

그의 아버지는 군대에 있을 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셔 집안형편이 안 좋아 고학하면서 대학을 다녔다. 다행히 보훈자녀로 대학 등록금을 면제받고 학보사 장학금과 어머니의 적은 도움으로 근근이 버텼던 그다. 사실 그때만 해도 솔직하게 시인 교수인 은사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더라면 다시 받아들이거나 그 어떤 해결책을 제시해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함봉호로서는 그만한 용기도 없었고 더러운 자존심만 지킬 줄 알았다.

이동수 과장은 함봉호에게 동자동 보급소로 매일 아침마다 출근해 조회를 마친 후 혼자 나가 신문구독을 받아 오라고 명령했다. 특히 말재주가 없는 함봉호는 그래도 그것을 지키기 위해 빌딩과 사무소를 돌아다니며 신문 구독을 권유하며 다녔다. 어떤 날은 재수가 좋아 2부를 확장하면 바로 보고하지 않고 있다가 다음날 공칠 경우를 위해 아껴두는 요령도 터득했다.

그렇게 자기 구역에서 신문을 확장하면 그 공과는 그곳 보급소로 돌아가는데도 소장은 그에게 자장면 한 그릇도 사주지 않았다. 온전히 첫 달 월급을 받기 전까지는 최대한 돈을 절약하면서 수중에 있는 돈으로 버텨야 했다. 결국 가진 돈이 적었으므로 그런 바보 같은 삶을 살면서도 그 어떤 반항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마치 그들은 그런 함봉호의 사정을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그래서 3개월 동안 아무 일도 못하게 묶어두고 사무직이라면서 속였던 것이다.

동자동 보급소에서 일주일 정도 버티면서 매일 1부씩이라도 신문을 확장하자 이번에는 가좌보급소로 출근시켜 똑같은 일을 하게 했다. 그 대신 동자동으로 매일 출근하지 않는 특혜를 주었다. 그러나 그것도 알고 보면 더 이상 직원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일 수도 있었다. 그곳 보급소장은 판매국 관리부장의 조카로 함봉호를 불러들이는 데도 백이 필요한 것을 가늠할 수 있었다. 이동수 과장은 이런 모든 일을 혼자서 한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위로부터 조종을 받은 것이다.

가좌보급소에서 보름 정도 버티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일하자 이번에는 동교동 보급소로 출근시켜 매일 신문배달을 시켰다. 사실 신문 확장 일은 그런 대로 품위가 있지만 신문배달은 마지막 자존심을 깔아뭉개는 것이었다. 특히 동교동에서 신문배달을 하다가 우연히 만난 고등학교 동기생 앞에서는 무슨 말을 할지 암담한 상황까지 부딪친 적이 있었다.

급기야 함봉호가 버티기 작전으로 나오자 이동수 과장은 스스로 그만두게 하려고 가장 힘든 신문배달을 시켰다. 이른바 함봉호를 지국장으로 뽑았다면 관리하는 기술이나 확장 훈련을 시켜 관리 능력을 키우면 될 것을, 굳이 배달 직원이나 아르바이트 학생들에게 시켜야 할 신문배달을 함봉호에게 맡긴 것은 최후의 일격이었다.

하지만 함봉호에게는 무지막지한 참을성이 숨겨져 있었다. 어릴 때부터 숱하게 당해 온 신체적인 조건에 따른 멸시와 조롱을 아주 슬프게 잘 참아온 그였다. 그에게 가해지는 고통이 크면 클수록 더 잘 견뎌내는 함봉호였다. 그는 비록 키가 작았지만 그에 비해 강단과 뚝심이 있었다. 그 정도로 힘든 배달 일을 하면 웬만한 놈들은 며칠 참지도 못하고 백기를 들 텐데, 어느 정도 상황을 간파한 함봉호는 오기로 버틴 것이다.

그러는 동안 입사 동기인 강재구는 이따금 전체 회의로 만날 때마다 함봉호가 겪는 상황을 알면서도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지 못한 채 쓴 소주만 사주었다. 이미 그는 입사 보름 만에 보급소장으로 들어가 제대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강재구는 보급소장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특정지구에서 신문 확장 캠페인을 할 때마다 신의 경지를 보여주는 프로였다. 다른 사람이 고작 1~2부를 확장하는 반면 그는 자신의 지역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10부에 달할 만큼 그 분야에는 도가 튼 전문가였다.

강재구는 혼자 자취하는 함봉호에게 이따금 술도 사주고 보급소에서 자게 했다. 그 역시 홀몸으로 보급소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그럼에도 그는 함봉호가 당하고 있는 현실을 알면서도 그 어떤 해결책이나 속내를 털어놓지 않았다. 그 역시 어려운 조건을 이겨내고 보급소장을 쟁취한 당사자인데 감히 그 누구를 배신할 수 없었던 것이다.

드디어 8월 한여름에 접어들면서 무더위는 극성을 부리기 시작했다. 신문배달은 오후 1시부터 시작해 저녁 무렵이면 대개 끝났다. 아무리 함봉호가 밉다 하더라도 그를 부려먹는 보급소장들로서도 양심에 털이 난 이상 지나치게 괴롭힐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무더위가 최고조에 달한 8월 초순이 지나자 함봉호는 이동수 과장의 관할 구역이 아닌 엉뚱한 곳으로 차출됐다.

이번에는 5층짜리 저층 아파트가 무수하게 많은 개포동 아파트촌으로 출근 명령을 받았다. 그곳은 30가구가 1동인 아파트촌에 1~2부의 신문을 넣다 보니 다른 어느 곳보다 몇 곱절 힘이 들었다. 그야말로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오후 1시에 시작한 신문배달은 밤 11시가 지나서야 끝났다. 그곳 소장은 죽을 만큼 힘들게 신문배달을 한 함봉호에게 죄를 지은 심정으로 소주잔을 기울였다. 녹초가 된 함봉호는 소주를 몇 잔 들이키면 마치 마약에 중독된 사람처럼 살아났다.

그야말로 함봉호에게 소주는 마약 같은 존재였다. 이 정도로 힘드니까 아르바이트 학생들이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면서 배달 펑크가 나 결국 함봉호에게까지 구원 요청을 한 것이다. 물론 함봉호에게 서울에서 가장 배달하기 힘든 개포동 아파트 지역을 맡기면 너무 힘든 나머지 두 손을 번쩍 들고 포기할 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함봉호는 여기서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견뎌냈다. <계속>

박하 작가|master@thegolftimes.co.kr
<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인기기사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신문사소개골프장TF전략사업기사제보광고문의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2가 50-5 태호빌딩 505호  |  발행·편집인 : 문정호  |  청소년보호책임자 : 문정호  |  전화 : 02-2277-7371  |  팩스 : 02-2277-1480  |  이메일 : master@thegolftimes.co.kr
제호명 : 골프타임즈  |  문광부등록번호: 서울 아 02033  |  사업자등록번호 : 202-16-92335  |  통신판매업사업자번호 : 제2012-서울중구-0827호  |  출원번호 : 40-2012-0016887
골프타임즈는 상표법에 의거하여 특허청에 상표(국,영문)등록이 되어있습니다.  |  골프타임즈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법 보호를 받으며 무단복제 및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Copyright © 2016 골프타임즈.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