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국 性풍자 콩트 제26화] 스물 두 살의 인애

그 남자에게 애기처럼 작고 가냘픈 여자가 있다 정병국 작가l승인2016.11.29l수정2016.11.29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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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타임즈=정병국 작가] 유인애는 도시 변두리의 한방 찻집 생활이 싫었다. 쌍화차 냄새만큼이나 견디기 어려웠다. 나이 든 손님들의 느글느글한 음담패설에는 구역질까지 났다. 슬금슬금 종아리와 엉덩이를 만질 때는 소름이 끼쳤다. 돈이 급해 한 달 치 월급을 선급 받은 탓에 어떻게 하든 날짜는 채워야 했다.

“인애야! 저기 창가의 손님이 찾으신다. 빨리 가봐라.”

마담 언니의 넉살은 고단수였다. 무료하게 앉아 있는 손님이 있으면 그 앞에 앉혔다. 핑계가 좋아 말벗이지, 속셈은 인삼차 한 잔이라도 더 팔겠다는 욕심이었다.

“또 마셔요?”

“이것아! 돈이 어디 하늘에서 떨어지니? 적당히 녹여서 쌍화차를 사게 해.”

마담 언니의 성화에는 대처방법이 없었다. 차라리 알아서 기는 게 편했다. 그래야 군말 안 듣는, 제시간에 하루의 일을 마치고 퇴근할 수 있었다.

인애는 한학자로 통하는 김 영감의 건너편 자리에 앉았다. 친구들이 모두 한학 김 영감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인애도 그렇게 호칭했다.

“너 사내 있더구나. 결혼할 상대냐?”

인애는 김 영감의 말에 눈을 흘겼다. 마담 언니의 귀에 들어가는 날에는 잔소리가 바가지로 쏟아질 것이다. 돈 없어 선급 받는 주제에 사내놈이나 만나려 다니느냐고 눈총께나 줄 것이다.

“남자가 어디 있어요? 헛소리하지 마세요.”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어. 키가 훤칠한 녀석이 듬직하더구나.”

인애는 피식 웃었다. 김 영감의 말이 맞았다. 조인성은 키가 크고 덩치도 컸다. 목소리도 걸걸해 언제나 힘이 넘쳐 보였다.

인애는 그와 만남을 필연적인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그에게 여자가 있었지만, 그녀를 버리고 자신에게 성큼 다가선 것이 그 증거라고 믿었다.

조인성은 일식집에서 일할 때 만났다. 단골은 아니었지만, 심심찮게 들러 늦게까지 술을 마시곤 했다. 그에게는 여자가 있었다. 아기처럼 작고 가냘픈 여자였다. 그녀는 그의 곁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술자리의 온갖 수발을 하며 까르르 까르르 웃었다. 술값도 대부분 그녀가 지급했다.

어느 날이었다. 그가 혼자 늦은 시각에 나타났다. 기분이 좋지 않은 얼굴이었지만, 불쾌한 행동은 하지 않았다.

“오늘은 왜 혼자세요?”

인애는 회 접시를 먹기 편하게 놓아주며 물었다.

“나도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어. 아주 편안하게.”

그의 독백처럼 낮게 말하는 목소리에 인애는 유혹의 충동을 느꼈다. 그의 발길이 뜸할 때는 은근히 기다려지곤 했었다. 그의 옆에 작은 여자가 매미처럼 붙어서 들어와도 반가움이 앞서는 남자였다. 반드시 내 남자로 만들고 싶은 사람이었다.

“난 혼자 있으면 불안해요. 여자 친구라도 항상 옆에 있어야 안심이 돼요.”

인애는 거짓말했다. 어릴 때부터 줄곧 혼자 있기를 좋아했다. 여자 친구와 함께 있어도 불편했다. 그러나 스무 살이 넘으면서 조금씩 나아졌지만, 혼자 보내는 시간이 여전히 많았다.

“난 혼자 있고 싶은데 넌 누군가와 같이 있어야 한다? 우린 궁합이 맞지 않는군.”

그는 말재간이 없었다. 거기에다 말수도 적었다. 이쪽에서 농담이라도 던져야 마지못해 몇 마디 받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나 혼자 나타난 오늘은 아니었다. 적당히 작업멘트도 날렸다.

“시간 나거든 전화해. 여자 몸이나 탐하는 남자는 아니니 안심하고.”

그가 내민 명함에는 이름 석 자와 전화번호만 적혀 있었다. 인애는 다음날 곧바로 전화했다. 그의 직업이 궁금해서였다.

“조인성 씨 직업이 뭐예요?”

“그것 때문에 전화했어?”

그가 웃었다. 인애는 웃음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난 직업이 없어. 그래도 그냥 먹고살 만한 총각이야.”

인애는 총각이란 말에 피식 웃었다. 앙증스러운 작은 여자는 어디에다 버렸냐고 물으려다 참았다.

그와 만남은 부담이 없었다. 일식집에서의 퇴근이 비번일 때는 초저녁부터 함께 돌아다녔다. 그것도 귀찮을 때는 아무 모텔이나 들어가 뒹굴었다.

그와의 첫 밤은 싱겁게 이뤄졌다. 복잡한 거리가 지겨우니 어디 조용한 데 가서 쉬자. 입이 심심할 테니 술이나 서너 병 가지고 들어가자. 그렇게 해서 이루어진 첫 밤이었다.

스물두 살의 인애는 그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질식하듯 까부라졌다. 이미 그에게 매료된 그녀는 그와의 잦은 섹스를 거부하지 않았다. 순간순간 키 작은 여자의 자지러지는 웃음소리가 환청으로 다가왔지만, 오히려 그럴 때마다 더욱 몸이 뜨거워졌다. 이젠 내 남자라는 희열에 몸을 내던졌다.

“그 총각 직업이 뭐냐?”

인애는 김 영감의 말에 조인성의 늪에서 빠져나왔다.

“직업이 뭐냐니까?”

“화가요.”

“환쟁이다 이 말이지?”

“환쟁이가 뭔데요?”

“그림쟁이라고 말하면 알아듣겠냐?”

인애는 조민성의 직업이 정말 화가였으면 싶었다. 예술가의 아내, 상상만으로도 기쁨이 넘쳤다. 정말 그렇게 살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았다. 그림 그리기에 몰두한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의 행복, 평생을 그렇게 살고 싶었다.

“그 총각 그림 잘 팔려? 먹고 살 만큼 팔려?”

김 영감은 심심하던 참에 말꼬리 한번 잘 잡았다는 식으로 능글능글 물고 늘어졌다. 인애는 김 영감의 비아냥거리는 말투에 쐐기를 박 듯 쏘아붙였다.

“벌써 개인 전시회도 여러 차례 가졌어요. 작품도 고가에 팔렸고요.”

“그거 잘 됐구나. 그런데 너랑 결혼은 하겠다던?”

“결혼 안 할 거면 왜 만나요? 가을에 할 거예요.”

인애는 내친김에 거짓말을 계속했다. 서울 변두리의 한적한 곳, 정원이 있는 하얀 집에서 그는 그림을 그리고, 자신은 차를 끓이며 과일을 깎는 모습을 상상했다. 온몸이 새털처럼 가볍게 날아오르며 짜릿한 희열이 밀려왔다.

“그놈에게 완전히 미쳤구나.”

김 영감의 혀 차는 소리에 인애는 정색했다.

“김 영감님! 기분 나쁘게 혀는 왜 차세요?”

“몰라서 물어? 이것아!”

김 영감은 머리를 가까이하라고 하더니 알밤을 먹였다. 또 혀를 찼다.

“이것아! 여자가 남자에게 미치면 팔자 사나워. 정신 차려!”

“또 잔소리! 쌍화차 안 사주실 건가요?”

인애는 쌍화차 타령을 하면서도 그의 얼굴을 떠올렸다.

멋진 남자 조인성.

그는 갑자기 며칠째 연락이 없었다. 스마트폰도 연결이 되지 않았다. 불안했다. 키 작은 여자의 간드러진 웃음소리가 자꾸만 비웃음으로 날아들었다.

정병국 작가|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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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병국
도서출판 ‘지식과사람들’ 및 문예계간 ‘시와 수상문학’ 발행인, 문예창작아카데미와 스마트폰 전자책문학 파란풍경마을을 운영하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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