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정병국 작가] 선배 언니의 아랫배는 뱀 껍질 같았다. 팽팽했던 피부도 탄력을 잃어 쭈글쭈글 했다.

애 날 때 정말 죽는 줄 알았어.

심하게 튼 피부는 원상회복이 어렵다나 봐.

허리도 굵어지고… 정말 미치겠어.

수라는 울상 짓던 선배 언니의 결혼 전 모습을 떠올렸다. 시원한 눈과 각선미로 어디를 가나 시선을 끌어 모았다. 패션 감각이 남다른 언니는 몸의 굴곡을 육감적으로 돌출시킨 채 출근하기 예사였다.

홍보실 소속의 언니는 회사 내 총각들의 타깃이었다. 수라는 언니의 인기에 언제나 기분이 상했다. 언니보다 키 작은 것 말고는 얼굴과 몸매는 자신 있었기 때문이었다. 피부는 오히려 더 희고 고왔다.

언니가 사장 둘째 아들과 결혼하자 수라는 시원섭섭했다. 그녀에게 피해 의식을 느끼고 있었던 탓에 섭섭함보다 오히려 기쁨이 더 컸다.

“오빠! 우리 평생 연애만 하면서 살자.”

수라는 선배 언니의 생각에서 벗어나며 낮게 말했다.

“또 발작이니? 어디 아파?”

“결혼? 무서워.”

“내가 널 뜯어먹기라도 하니?”

“차라리 그게 나을지 몰라.”

수라는 선배 언니의 끔찍하게 변한 몸매를 다시 떠올리며 진저리쳤다.

기호는 수라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갑자기 결혼을 기피하는 이유를 몰라 전전긍긍이었다. 몸과 마음을 다 허락했고, 양가 부모에게 인사한 지금 결혼 못할 까닭이 하나도 없었다.

“안 되겠어. 날짜를 서둘러 잡아야지.”

“그럼 죽어 버릴 거야.”

“갑자기 결혼이 두려워진 이유가 뭐야?”

수라는 입을 다물고 앞만 주시했다. 가슴을 조인 안전띠가 불편했다. 차의 속도를 느끼며 묵묵히 바라보는 산과 들녘이 썰렁했다. 시야에 들어왔다가 산에 걸려 사라졌던 강물이 차갑게 되살아났다. 휴게소로 들어갔다. 수라는 승용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그가 커피를 마실 거냐고 물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가슴이 바위에 깔린 듯 답답했다.

언제까지나 날씬한 몸매와 고운 피부를 갖고 싶었다. 선배 언니처럼 아이 하나 낳고 폭삭 무너지는 몸매는 상상조차 싫었다.

너 결혼하지 마.

왜?

내 꼴 보고도 모르겠니?

수라는 숙이고 있던 얼굴을 들었다. 한 몸처럼 달라붙어 고속버스에 오르는 남녀를 바라보며 선배 언니의 말을 또 떠올렸다.

옛날로 돌아가고 싶어. 며칠 전에는 처녀 시절의 꿈까지 꾸었어.

선배 언니의 말끝에 흘린 웃음은 아픔이었다. 몸매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리지 못한 신음이었다.

결혼, 그거 영원히 하지 마.

수라는 심호흡을 했다.

기호의 성격은 급했다. 봄을 넘기려 하지 않을 것이다. 신혼 아파트까지 마련한 그가 결혼을 연기할리 만무했다. 그의 고집대로 서둘러 결혼을 하면 그 다음에는 아이를 빨리 갖자고 할 게 뻔했다. 넷은 많고 둘은 부족하고 아무래도 셋은 낳아야 한다는 자식 욕심을 굽히지 않을 것이다.

“마셔.”

그가 캔 커피를 내밀었다. 캔은 따뜻했다. 얼굴에 대고 살살 굴렸다. 숨 막히던 가슴이 순간적으로 풀어졌다가 다시 답답해졌다.

“얼굴색이 안 좋다. 차 돌릴까?”

기호가 시동을 걸며 물었지만, 수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차는 춘천이 아닌 서울로 방향을 잡았다.

“정말 애를 낳아야 해?”

수라는 그의 옆얼굴을 쳐다봤다.

“한 녀석은 우리 두 사람을 섞은 모습으로, 두 놈은 너와 나를 각각 빼닮아야 해. 이건 내 간절한 소망이야.”

“끔찍해라.”

수라는 정말 끔찍했다. 셋을 낳다보면 내 몸은 너덜너덜 걸레가 되어 있을 것이다. 여자의 아름다움은 깨끗이 사라지고 늙은 암퇘지로 변해 힘겹게 꿀꿀거릴 것이다.

하나로 족해. 또 낳자고 하면 나 이혼할래.

선배 언니는 눈물까지 글썽였었다. 아기에게 물린 젖무덤이 팅팅 불어 커다란 늙은 호박 같았다.

이건 아예 젖소 우유 통이지 뭐니.

땀띠까지 번져 있었다. 염증이 있는지 환부가 벌겋게 상기돼 보기에도 흉했다. 선배 언니의 모습이 자신으로 비춰지자 눈이 절로 감겼다.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결혼은 우리 두 사람의 행복한 삶을 뜻해. 모든 걸 내게 맡기고 따라오기만 하면 돼.”

기호는 여섯 살 위였다. 스물두 살의 수라를 애기처럼 대했다. 수라는 그것이 좋았다. 포근했다. 그와 같이 있으면 언제나 기뻤다. 재잘재잘 수다 떨며 깔깔거렸다. 그

그러나 선배 언니의 출산 후 모습을 목격하곤 모든 생각이 달라졌다. 결혼이 무서웠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에 거부감이 밀려왔다. 사랑의 새 생명을 잉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아름다움을 파괴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선배 언니의 팅팅 불다 못해 헐은 젖가슴, 항아리처럼 부푼 허리, 스멀스멀 흘러내리다 축축 처진 피부…….

수라는 결혼을 포기하고 싶었다. 지금처럼 사랑만을 나누며 살고 싶었다. 그의 앞에 언제나 섹시한 몸매와 피부로 남고 싶었다.

“꼭 결혼해서 아길 낳고 그렇게 살아야 해?”

수라는 퉁명스럽게 물었다.

“자식 없는 부부는 불행해.”

“아닐 수도 있어.”

수라는 곧바로 부정했다.

“절대로 없어.”

그가 단호하게 말했다.

수라는 입을 다물었다. 그와 티격태격할 필요가 없었다. 임신하는 것은 여자이다. 여자가 원하지 않으면 얼마든지 임신을 피할 수 있다. 결혼도 하기 전에 임신 문제로 서로의 기분을 망칠 필요가 없었다.

일단 결혼은 하기로 한다. 그러나 아이는 낳지 않을 것이다. 결혼하면 반드시 출산해야 한다는 주장은 잘못이다. 결혼 전에 불임수술을 못할 이유도 없다. 난 정말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

만약 그가 끝까지 아이를 고집한다면 이혼을 요구할 것이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단 둘이서 섹시한 몸매를 유지하며 살고 싶다.

임신이 여자의 가장 큰 행복이라고? 너 그 말 믿지 마. 사기야. 사기!

수라는 탄식하듯 쏟아놓은 선배언니의 말이 온 몸으로 파고들자 진저리를 쳤다. 수라는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숨을 죽이다가 빠르게 물었다.

“오빠! 여자의 가장 큰 행복이 무엇인지 알아?”

“뻔한 질문을 왜 해?”

수라는 눈웃음을 꽃잎처럼 뿌렸다. 눈웃음의 진의를 몰라 의아한 표정의 그에게 속삭였다.

“영원히 섹시한 몸매야!”

정병국 작가｜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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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병국은
도서출판 ‘지식과사람들’ 및 문예계간 ‘시와 수상문학’ 발행인. ‘문예창작아카데미’와 스마트폰 전자책문학 ‘파란풍경마을’을 운영하고 있다. 정병국 性풍자 콩트는 매주 화요일 연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