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는 야구나 테니스를 할 만큼 활동적이지 않은 사람들, 또는 그런 운동을 하기에는 너무 뚱뚱한 사람들을 위한 운동...

[골프타임즈=안문석 작가] 윌리엄 태프트는 1905년 가쓰라·태프트 밀약의 미국 측 서명인으로 당시 육군장관을 맡고 있었다. 1905년 7월 8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증기선 만추리아(Manchuria)호를 타고 미국의 아시아 순방 외교사절단이 출발했는데, 단장이 태프트였다.

태프트는 하와이를 거쳐 일본에 내렸다. 여기서 일본 외무대신 가쓰라 다로(桂太郞)와 비밀조약을 맺었다. ‘미국은 필리핀을 점령하고, 일본은 조선을 지배한다’는 내용이다. 태프트는 필리핀, 중국을 들러 같은 해 9월 19일 인천에 도착했다.

뚱뚱한 몸에 카이저수염을 기르고 중절모를 쓴 채 지팡이를 짚고 인천항에 내리는 태프트의 모습이 지금도 사진으로 남아 있다. 그의 옆에는 당시 미국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딸 앨리스 루스벨트도 있었다. 밀약의 내용을 몰랐던 고종은 이들을 칙사 대접했다. 미국이 일본의 침략을 막아줄 것으로 기대했다. 황실의 악단을 동원해 미국 국가를 연주해줬고, 황실의 가마도 태워줬다. 이들이 지나가는 길을 고치기도 했고, 일정을 마치고 가는 날에는 대신들이 남대문 정거장까지 전송을 나가기도 했다. 선물로는 고종과 황태자의 사진을 주었다. 앨리스는 나중에 이런 고종의 태도를 “황제다운 존재감은 거의 없었고, 애처롭고 둔감한 모습이었다”고 회고했다.

루스벨트 후임으로 1909년 태프트가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본래 대통령이 되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었다. 대법원장을 하고 싶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에게도 그렇게 말했다. 그럼에도 루스벨트가 그를 후임 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 현직 대통령이 밀어주니 어렵지 않게 공화당 후보로 선출되었다.

루스벨트와 더불어 그가 대통령이 되기를 강력하게 원한 사람은 그의 부인 헬렌이었다. 헬렌은 부지런하면서 그만큼 욕심도 많은 사람이었다. 태프트와 루스벨트가 부부 동반으로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태프트는 대법원장을 원한다고 말했는데, 옆에 있던 헬렌이 “남편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태프트는 그렇게 루스벨트와 헬렌에게 떠밀리다시피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

그러다보니 선거운동에 전력투구하지 않았다. 태프트는 절제력도 없었다. 먹고 싶은 대로 먹고 놀고 싶은 대로 노는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엄청 뚱뚱했다. 그런 그에게 재미없는 유세 일정을 소화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참지 못하고 가끔 사라져 한적한 데서 골프를 쳤다. 골프를 한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연설도 했다.

“골프는 야구나 테니스를 할 만큼 활동적이지 않은 사람들, 또는 그런 운동을 하기에는 너무 뚱뚱한 사람들을 위한 운동입니다.”

자신처럼 뚱뚱한 사람은 골프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의 정치적 대부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골프를 하는 것은 모양새가 안 좋으니 끊든지 절제를 하라”고 충고했다. 실제로 루스벨트 자신은 테니스를 좋아했지만 그것도 절제했고, 신문에 사진이 나지 않도록 조심했다. 당시 테니스는 아무나 하는 운동이 아니었다. 대신 말을 타고 사냥하는 사진을 싣도록 했다. 강한 이미지를 주기 위해서였다.

태프트는 대부의 말을 듣지 않았다. ‘떨어지면 어때’ 하는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부의 영향력은 컸다. ‘태프트는 어떤지 몰라도 루스벨트가 밀어주는 사람이라면 괜찮겠지’ 하는 게 당시 미국인들의 인식이었다.

태프트는 무난히 대통령이 되었다. 대통령이 되어서도 그의 태도는 별로 달라진 게 없었다. 평일에도 오후에는 골프를 치는 날이 많았다. 일에는 많이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한 나라의 국정이란 것이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신경을 안 쓰면서도 잘 하기는 매우 어렵다. 신경을 많이 안 쓰면 중심을 잡고 정책을 펼 수 없다. 태프트가 신경을 크게 안 쓰니 상원의원들이 많이 나섰다. 대기업을 지원하는 법안들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을 가진 공화당 보수파들이었다. 태프트는 여기에 휘둘렸다.

대기업을 일정 정도 규제해서 경쟁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 루스벨트의 입장이었다. 그는 그런 정책을 폈다. 그런데 후임 태프트는 반대로 갔다. 공화당 보수파의 의견을 들어 대기업 편에 섰다. 갈등이 생겼다. 루스벨트는 골프나 치면서 정책 고민을 안 하는 태프트가 못마땅했다. 태프트는 대통령이 끝나고도 계속 간섭하려는 루스벨트가 마음에 안 들었다. 여전히 자신보다 각광을 받던 루스벨트를 시기하기도 했다. 둘 다 참석하는 자리가 있을 때 사람들은 루스벨트의 말을 듣고 싶어 했다. 태프트의 동정보다도 루스벨트가 아프리카 콩고에서 코뿔소를 몇 마리 잡았다는 소식이 신문에 더 크게 보도되었다. 태프트는 임기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면 그럴수록 루스벨트는 태프트를 미덥지 못하게 생각했다.

1912년 대선이 다가오면서 두 사람의 갈등은 커졌고, 루스벨트는 진보당을 만들어 따로 대선에 출마했다. 결과는 둘 다 낙선. 승자는 또 다른 골퍼 대통령 윌슨이었다. 골프에 빠져 있던 태프트는 정치적 스승도 잃고, 대통령 자리도 잃은 채 4년 만에 백악관을 나와야 했다.

안문석 작가｜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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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대통령과 골프에서 발췌, 저자 안문석 / 도서출판 인물과사상사 발간